향토사 60

칭찬하는 유전자가 넘치는 용호동(龍湖洞)

2014년 용호동 전경 칭찬하는 유전자가 넘치는 용호동(龍湖洞) 동내 중앙의 큰 호수에 용이 살아 용호동이라 하였다는 구전이 있었으나............... 용호동은 북쪽의 용호만과 동, 남, 서쪽은 나지막한 산으로 병풍처럼 감사고 있다. 산세가 용이 똬리를 틀고, 아늑한 용의 품안에 인가가 자리를 틀었다 입으로 십대전부터 바르게 전해오기를 수장산앞바다에 비친 동산의달에 용이 감춰져 있어 용호라 하였다. 산세의 이름도 용의 눈자리 동산(瞳山)과 목너머, 장자산과 주작을 닮은 백운포의 비룡산(飛龍山), 신선을 모시는 대붕산(大鵬山)과 용의자궁터 신용산, 그리고 수장산(水藏山)이며 그 끝이 수장 끝이라 임진왜란후 수미산이라고 기록되기도 하였다. 수리섬 또한 오륙도 설화의 중심에 있으며 옛날부터 용대(龍臺..

향토사 2014.09.11

용호동의 산이름

용호동(龍湖洞)산이름 용의 머리쪽부터 동산(瞳山)-본래 동산(童山 아기산)이라하였다. 임진왜란후 분개를 용호(龍湖)라 개명하면서 용의 머리며 용의 눈자리라 하여동산 (瞳山)라 하였다. 묘터로 쓰면 가산(家産)이 기운다 고함. 일제침탈기 구리광산이 많아 동산(銅山)이라고 도 하였다 목너머-동광산에 종사하는 일꾼들이 용의 목을 넘나든다고 목너머길이라함. 목너머 창(艙)바위는 용호 동광석을 일본으로 운반하기위한 임시 선착장을 창바위라하여 화물선이 정박할만한 깊이와 바위의 높이가 선착장으로 만족하였다고한다. 장자산(長子山)-용호동의 주봉이며 오해야항 봉수대가 1942년까지 1대가 원형보존 된곳 꽃밭등 (花田山 나나까(7처고사포진지)-너덜겅이 많고 진달래꽃이 유명 하였음./골짜기에 재석곡(齋釋谷)의 재석암(齋釋庵..

향토사 2014.08.24

용호동 3광산까지 터널이 있었다.

이기대 구리광산 갱도 관광자원화 나서 해안 산책로 부근 2호 갱도, 폐광산 흔적 볼 수 있어 인기 - 붕괴 가능성 낮아 개발 가능 - 남구, 내부공간 정밀조사키로 - 사유지라 동굴주인 협조 관건 부산 남구 이기대에 있는 구리광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하지만 동굴 출입구 주변과 내부가 모두 사유지여서 땅 주인의 협조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남구는 과거 구리광산이었던 이기대 공원의 갱도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기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구리를 채굴하던 ‘용호 광산’이었다. 갱도의 흔적은 모두 7곳에서 발견되지만 대부분 폐쇄됐고 해안 산책로 부근에 있는 2호 갱도만 개발이 가능하다. 이기대 해안 산책로를 걷다 ..

향토사 2014.02.03

용호동의 지명

지명 1). 거미섬(거무섬)나암 오륙 도 와 비용개(백운포) 사이에 거미처럼 생긴 나지막한 섬이 있다, 이 섬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오륙도에 포함된 섬이었다. 사투리로 거무섬 이라 하여 검은 섬으로 비쳐 흑석도(黑石島)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 고을 용이 옥황상재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승천하려 하였으나 뇌물로 바칠 불로장생수를 손에 넣지 못해 거미 섬을 밟고 약이담긴 수리병을 잡으려 하였으나 거미섬이 자리를 옮겨 버렸다. 용은 있는 힘을 다하여 잡으려다 엎질러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용은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로 남아 남해바다 깊은 곳에서 다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화가 난 이무기는 우식도를 솔섬과 방패 섬으로 자르고 거미 섬을 오륙 도에서 쫓아 버렸다. 용왕님의 심부름꾼 거북이 거미 섬을 ..

향토사 201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