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수리섬(비석섬)에 만세덕의 비는 없었다

아지빠 2014. 1. 14. 19:44

 

 

 오륙도의수리섬의 전경(2014년1월14일)

 오륙도 수리섬 선돌측면

 

 수리섬 선돌측면 근접촬영

수리섬의 선돌 정면

      선돌 정면의 근접촬영

수리섬(비석섬)에 만세덕의 비는 없었다

 

만세덕의 기공비(釜山平倭碑銘. 釜山子城碑銘)는 만세덕 장군이 많은 문무 장리를 거느리고 조선에서 왜적을 물리친 다음 그의 공적과 휘하 장병 59인 이름을 각명해 놓은 것으로 전 병부 직방사 낭중(兵部職方司 郎中) 가유약(賈維鑰)이 비명을 짓고 돌에 새겼다.

그후 비가 양단 파손되어 초간에 넘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肅宗(숙종)35년 서기1709년 동래부사 권이진이 이 사실을 조정에 아뢰어 자성대 위에 만세덕(萬世德)의 공을 기리는 만공단(萬公壇)과 자성비각(子成碑閣.記功碑)을 세웠다.

그러나 만세덕에 대한 비는 흔적도 없다.

영양 천씨 중시조 천만리 장군의 비만 있다.

1861년 대동여지도에 오륙도 옆에 만세덕비 라는 글자가 있어 만세덕의 비가 있을 것 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비석처럼 돌이 높이 서있는 수리섬을 지나는 선박에서 보면 비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세덕의 비는 어느 곳에도 없다 비처럼 생긴 돌도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었다.

그러나 왕석호 옹께서는 1936년경 수리섬의 넓은 반석위에 약1m 정도의 작은 비석을 봤다고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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