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비룡산 동백곳

아지빠 2013. 6. 23. 08:48

 

 



동박새

동박새

동박새

동박새


비룡산의 동백곳

 

백운(白雲)이 오륙도 허리를 휘감고 비룡산 자락 동백곳(址)에서 춘복(春服)의 맛과 향을 담아 승천하는 용이 되어 하늘에 닿은 집터를 넘어간다.

무명 적삼에 어머니 젓 내음이 안개 되는 양지바른 곳 동백 따는 손길이 멈추고 동박새 보다 먼저 춘복을 따 허기진 배를 채운 그곳에 장신의 큰 포 4문을 설치하여 부산항을 방어한곳이었다.

비용개(龍臺) 서편자락 대붕산(大鵬山) 앞 파도가 하얀 포말을 품어내는 작은 바위를 고래 등이라 하여 고래가 놀고, 신선이 무재등 유하수(流霞水)로 목을 축이며 파도소리가 몽돌을 깎아 보석으로 다듬어 봄 햇살에 빛이 넘치는 곳이 지척에 있다.

치어(穉魚)들이 거미섬(娜岩)을 고향삼아 어린 시절을 보내고 먼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나면 바다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가 된다 .

신(神)이 다듬어준 관문이요, 경제의 곳간이 된 이곳 부산항을 안내하는 오륙도 하얀 등대 불빛을 된바람에 실어 남해바다에 뿌려 길을 만든 공덕으로 2007년10월1일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27호로 지정되었다.

용(龍)의 전설 용호동

불로장생수(不老長生水)를 담은 수리병(호리병의 옛말)이 누워있는 섬을 수리섬 이라고 한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나고 부산진 지성(枝成)인 자성대 (子成臺)에 전쟁을 끝낸 명(明)나라장수 만세덕이 주둔하였다. 肅宗(숙종)35년 서기1709년 만세덕(萬世德)의 공을 기리는 만공단(萬公壇)과 자성비각(子成碑閣)을 세웠다. 그 후 일제강점기 만공단은 없어지고 매몰되었던 자성비 는 오륙도 수리섬으로 옮겼다고 하여 비석(碑石)섬이라고 하였다. 용호동 주민은 자성 비를 목격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으며 일본국이 자성비의 규모가 어느 정도 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리 섬에는 배를 접안할 장소도 없는 곳에 굳이 달갑지 않은 비석을 운반하여 재설치 하였을까?

7월이면 원앙새도 혼자 자지 않는 붉은 신의 붓처럼 아름다운 합환수(合歡樹)자귀나무(소 찰밥나무)가 피고, 벌 나비가 모여들어 가장 아름다운 섬 소풀섬(솔섬)은 장자등 포진지를 찾아 헤매든 미군이 1945년7월 소이탄(燒夷彈)을 투하하여 섬을 불태웠다 . 흉물스러운 바위섬으로 오랜 세월 버티다 1970년 경 바람이 실어준 곰솔의 씨앗이 하나둘 자라 이름도 솔 섬으로 개명하였다.

오륙도 앞 잘록개(승두말)에도 일제강점기

동서로 10cm급의 다양한 유탄포(메이지곡사포)4문을 설치하여 부산항방어용 포진지를 구축하였지만 동백꽃이 울창한 동백곳에 15cm급 포를 설치하면서 곡사포는 철거 하였다.

(동백곳1934년5월~1935년년12월 1938년1월개축)

용호동 구남의 포진지에는 장거리 통신으로 쓰시마(豊토요)간 불빛통신과 화려한 비둘 기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전서구 (傳書鳩 Homing pigeon 훈련시킨 비둘기) 로 진해 사령부와 쓰시마 토요 포대 간 군용통신 연락망을 운영하였다.

일본해군의 전함 카가와 아카기의 주포를 육군이 헐값으로 구입하여 육상에 움직이지 않는 군함을 운영하고 장자등 큰 고개 위에 7cm(나나까 7處)고사포4문으로 대공을 감시하는 완벽한 군사기지를 갖추었다 그러나 일본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일본이 신으로 믿은 천황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한 전쟁은 천황의 항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한반도 전역으로 공급하는 구남의 화약고에서 재조한 포탄은 이 땅의 주인을 내쫓는 일에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낚시꾼을 실어다 나르는 선착장이 일본군의 군사부두로 레일을 깔고 수 많은 군수품이 드나든 곳이었지만 부두는1959년9월17일 사라(Sarah)호 태풍으로 파손 유실 되었다.

410cm(18.5m 108ton)포의 운명은 일본이 폐망하자 1945년10월 미군이 진주하여 폭약을 설치하여 폭파시켰다. 쓰시마 토요포대(豊砲臺)의 포신두개는 미군 감독 하에 1945년 10월에 철거하여 야하타(八幡) 제철소로 옮겨 전후 경제 부흥의 재료로 활용하도록 특혜를 배 풀었다고 한다.

이키섬 뒤편 사이까이(相崎)섬 북단 쿠로사키 (墨崎)포대에 설치하였든 410cm포는

히로시마현(廣島縣)구레시(吳市) 해상 자위대 연병장에 전시하고 있다 .

용호동 동급 포대 쓰시마 토요포대도 미군이 일부 폭파하였으나 1984년12월에 복원하여 관광 상품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용호동 장자등 해수표와 구남 포진지도 고철 수집으로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복원하여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일부라도 새로운 인식의 전환으로 독도를 넘보는 그들의 속내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싶다.

우리는 속으면서도 이웃사촌에 후한 민족이었다. 그들이 새로운 항복문서를 읽는 연습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포기의 동백나무도 없는 동백 곳에도 동백나무를 심어 선조들이 아끼고 사랑한 부산항의 명물로 거듭 태어나는 기쁨을 나누는 노력이 절실하다

 

동백나무의 춘복-꽃에 생기는 충영(蟲廮)의 일종으로 꿀샘이 있어 먹음직하다.동박새가 즐겨먹는다

동백곳-오륙도 중학교 맞은편에서 거미섬 앞까지의 지명

 

남구 향토사 연구위원 왕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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