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오륙도 (환경문화)

아지빠 2013. 5. 3. 17:28

 

1장 오륙도 (환경문화)

 

 

 

1. 오륙도의 유래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 22호 그리고 2007년10월01일 국가지정 명승지 24호로 지정된 곳이다. 부산항을 오가는 배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호적 없는 바다의 외로운 무인도 섬이었다. 이 무인도 섬 오륙도가 유인도 섬이 된 것은 1927년 오륙도 끝에 있는 밖 섬에 등대가 세워진 후 등대섬으로 부르면서 부터이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고 나서 부산의 관문인 오륙도 앞으로 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항구를 알리는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오륙도의 밖 섬(일명 등대섬) 위에 등대를 세웠던 것이다. 오륙도 임야(20,542㎡)를 측량하여 1978년 5월 30일 호적을 부여받으면서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2동 936번지에서 941번지까지의 지번이 주어졌다.

1740년 동래영지 도서조에 기록한 오륙도의 어원에서 “오륙도는 본영(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 절영도의 동쪽에 있다.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에는, "五六島(오륙도) 在絶影島東(재절영도동) 峰蠻奇古(봉만기고) 列立海中(열립해중) 自東觀之(자동관지) 則爲六峰(칙위륙봉) 自西觀之(자서관지) 則爲五峰(칙위오봉) 故名之以此(고명지이차) 第三峰(제삼봉) 有唐(유당) 將萬世德碑(장만세덕비)" 즉, "오륙도를 絶影島(절영도) 동쪽에 있다고만 하고 峰蠻(봉만)이 奇古(기고)하여 바다위에 나란히 섰는데 동쪽으로 보면 여섯봉우리가 되고 서쪽으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그리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절영도(영도)나 대붕산 정상(신선대)에서 보면 우식도(牛食島 방패 섬과 소풀 섬))와 수리 섬. 송곳 섬. 굴 섬. 밖 섬(등대섬) 그리고 거미 섬으로 구성하여 여섯 섬으로 보이나,

서쪽인 해운대에서 보면 잘록개에 가려 거미 섬이 보이지 않아 다섯 섬으로 보인다고 기록한 것이었다.

1850년내영지에서도 같은 기록이 있어 그 후

어느 때부터 가까운 곳에서 세분(細分)하여 거미 섬을 재외하고 우식도의 두 섬인 방패 섬과 소풀 섬(솔섬)을 분리하여 밀물일 때는 방패 섬과 솔 섬으로 나누어지고 썰물일 때는 바닥이보여 하나로 되어 오륙 도라고 하고 있다.

동래영지 도서조의 기록에서도 각 섬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아 거미 섬은 오륙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외로운 섬으로 남아 이름마저 부산사투리 거무 섬이라 하여 흑석도(黑石島)로 불렀다. 근래에는 나암(那岩)이라 하여 어찌하겠는가? 서운함을 달래고 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아리따워 娜岩이라고도 한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차례로 방패 섬(936번지, 2,166㎥), 소풀 섬(솔섬937번지, 5,505㎥), 수리 섬(938번지, 5,313㎥), 송곳 섬(939번지, 2,073㎥), 굴 섬(940번지, 9,716㎥), 등대 섬(941번지, 3,416㎥)으로 나눠진다.

육지(잘록개)에서 가장 가까운 방패 섬은 전쟁터에서 창과 칼을 방어하는 방패와 닮아 그리

하였다.

다음이 소풀 섬이다 .소가 좋아하는 자귀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7월이면 붉은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라드는 가장 아름다운 섬이었다.

자귀나무를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로 합환수(合歡樹)라고하며 소 찰밥나무 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식도(牛食島)라고도 한다.

아름다운 소풀 섬은 일제 강점기 1945년7월경 미군의 정찰비행기가 일제의 군수품으로 오인하여 소이탄을 투하 하여 불태워버렸다.

그 후 1970년경 육지로부터 곰솔의 씨앗이 바람에 실려와 자생하기 시작하여 솔 섬이라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섬의 상부 좁은 곳에 너무나 많은 곰솔이 오래도록 자생하여 나무의 뿌리가 수분공급의 영향으로 늘었다 줄었다하여 돌 틈이 벌어지고 쪼개져 섬의 원형을 보존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세 번째 섬을 수리 섬이라 한다.

호리병의 옛말 수리병과 닮았다고 수리 섬 이라고 한다.

수리 섬은 독수리가 관찰되어 수리 섬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철새인 수리가 남쪽으로 날아가다 잠시 쉬어갈 뿐 주위의 입지(立地)조건인 먹이가 없어 서식지로 볼 수 없어 구전과정에서 뜻이 와전(訛傳)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리 섬은 용호동의 풍수지리경의 전설에 의하면 용이 승천하기위에 불로장생수가 담긴 수리 병을 잡으려다 성격이 급하여 떨어트려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었으며 수리 병은 넘어져 돌이 되었다고 한다.

네 번째 뾰족하게 송곳처럼 생긴 송곳 섬이다

다섯 번째 섬으로 가장 큰 섬이다. 동서로 굴이 있어 굴 섬이라고 한다, 쇠가마우지가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북쪽에서 날아와 굴 섬에서 한겨울을 보내고 고향으로 날아간다. 겨울을 보내면서 굴 섬과 송곳 섬에 하얀 배설물을 덕지덕지 남겨 놓고 간다.

마지막으로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밖에 있다고 밖 섬 이라고 하였는데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 한다.

 

 

 

                                          굴섬에자리한 쇠가마우지

 

 

    밖섬 등대가생겨 등대섬

                        굴섬  해식굴이 있어 굴섬 초겨울부터 러시아캄차카반도에서 겨울나기위해 남쪽 바다에서 겨울늘 보내고 4월말부터 5월사이 돌아감 그동안 송곳섬과 굴섬에서 한겨울을 지냄

                            뾰족한 송곳섬

용호동 지리경과 풍수와 관련있는 수리섬은 호리병의 옛말 수리병과 닮아 수리섬이라고 한다

수리섬에 비석처럼 생긴돌이 수리병의 손잡이가 뿌러져 받침대만 남았다

2 만세덕의 자성비

명나라 군은 1597년 12월 22일부터 다음해 정월 4일까지 연 13일 동안 전투를 하다가 스스로 퇴각을 결정하여 많은 병력상의 손실을 보고 실패한 전투를 승전으로 조작하려다가 명나라 장군 양호(楊鎬)는 명나라 황제 신종에게 경질을 당하고 대장의 자리를 만세덕(萬世德)에게 물려주고 말았다.

양호는 천여명이 죽고 수천여명이 부상당한 실패한 울산성 전투를 100여명만이 죽은 승전으로 조작하려한 엉터리 명나라장군 양호를 따라 다니디가 결국엔 조선병사들도 다 죽고 인심도 잃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울산 전투에서 조선군은 사망 298명. 중상자 876명. 도망자 4,982명. 현재인원 3,813명으로 도망자가 50% 를 능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고 기록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나고 부산진 지성(枝成)인 자성대 (子成臺)에 명(明)나라장수 만세덕이 주둔하였다.

肅宗(숙종)35년 서기1709년 만세덕(萬世德)의 공을 기리는 만공단(萬公壇)과 자성비각(子成碑閣)을 세웠다

그 후 일제강점기 만공단은 없어지고 매몰되었던 자성비 는 오륙도 수리섬으로 옮겼다고 하나

용호동 주민 한사람도 자성비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 고 한다

 

  왼쪽이 소풀섬(牛食島 우식도) 소찰밥나무 자귀나무가 많아 그리하였슴 지금은 솔섬과 방패섬

 

7) dung의 원래 뜻은 부화호의 화석으로 구아노라는 인산비료이며 남미 페루 지방에 산재하는 화석으로 변한 암석이다.

◆ 수리섬(비석섬)과 송곳섬

당나라 장수 만세덕비가 있었다하여 비석섬이라고도 하는 수리섬과 송곳섬 사진

◀ 굴섬과 등대섬 사진

 

3. 오륙도의 자연생태 환경

 

       게바닷말

                                                  해면동물

오륙도 섬에도 생명력을 가진 동, 식물들이 있다.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지표 식물로부터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바닷물 속에서 오륙도 섬들과 함께 노니는 수많은 바다 고기들이 있어서 결코 외롭지만은 않은 오륙도 섬이다.

먼저 오륙 도가 멀리서 보면 제일 위쪽이 검게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생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수직적으로 6m정도의 조간대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 조간대 위에 검은 색깔을 띠면서 살고 있는 남조류 들이 바위 표면에 깔려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섬들이 검게 보이는 것이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좁쌀고둥(일명 총알고둥)과 삿갓조개 들이 바위에 붙어 있으며 중간부에는 40cm정도의 띠를 형성한조무래기 따개비와 검은큰따개비 그리고 대수리(맵다리고둥)가 바위에 붙어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조간대에는 거북손과 말미잘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돌미역과 개모자반 그리고 게 바다말과 진두말이 파도 따라 춤을 추듯 살아 움직인다.

큰 따개비들은 한 번 붙으면 그 자리에서 일생을 살다가는 생물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좋은 장소에 붙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되는 생물인데 해양의 오염으로 점차 이들의 모습이 줄어들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12년 1년동안 조사결과 수중에는 동물플랑크톤 73종, 조간대생물 209종, 해조류 53종, 유영생물 73종 등이 발견됐다. 육상에는 솔섬 섬향나무7포기를 포함한 식물 70종, 조류 17종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호대상 해양생물'인 게바다말과 주요 조간대생물인 부채뿔산호 및 딱지군부, 조무래기따개비 등의 서식을 확인했다. 방패섬과 솔섬 일부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게바다말은 백운포에도 일부 서식하는 등 현재 생육 및 발육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고 오륙도 선착장에서 부유토가 흡착된 게바다말이 관찰됐다. 청정해역 생물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부채뿔산호도 오륙도 뿐만 아니라 백운포 해역에서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2000년도 조사에서는 전국에서 잡히는 어류 중에서 60% 정도가 부산에서 잡히는 어류로서 460여 종이였으나 신선대와 백운포 매립으로 조류의 흐름이 원활치 못하고

외향성 플랑크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오륙도 앞바다에도 해양 오염의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현상은 곧 어류의 생산량 감소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산의 자랑이며 상징인 천연의 조각품 오륙 도가 있는 앞바다가 생활오폐수로 서서히 황폐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더해진다.(부경대 생태공학과 이석모 생태학 )

그리고 솔 섬과 수리섬 사이 해역에는 초당 3~4m인 강한 조류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해역은 교역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을 하기 위해 사용한 항로이며, 현재에도 울산으로 가는 작은 배들이 이 해역을 통과하여 항정을 좁혀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륙도를 왕래하는 유람선도 이 해역을 돌면서 관광객들에게 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오륙도 굴섬과 송곳섬의 암벽에 배설물인 dung의 회색물질을 덮고 있는 바다가마우지가 있다. 많을 때는 200여 마리가 오륙도에서 겨울을 난다 크기는 민물가마우지의 2배 정도 되며 겨울철새로서 11월경에 남해 일원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서식지인 러시아 캄차카 반도로 올라간다.

가마우지의 특징을 살펴보면 몸길이는 84cm, 온 몸이 검은색, 부리는 흑갈색이며 구부러진 모양, 다리는 검은 색으로 4개의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다.

그 외에도 괭이 갈매기의 휴식처이며, 바다 쥐방울 새가 번식하고 있다. 붉은 빰매새, 노랑 할미새, 빨강 할미새 등 12~13종의 새들이 먼 바다를 날아가다 잠깐 쉬어가고 있기도 한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관찰된조류의 현항은 2009년에 14종 2010년에 19종.2011년에 20종으며 법적보호종으로 솔개와 황조롱이, 매가 관찰되었다

국립수산 과학원이 생태보호지역 오륙도의 육상생태계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국11곳에서만 확인되는 측백나무과의 섬향나무가7개체 분포하고 있다.

각섬의 식생은 다음과 같다(2013년 수산과학원조사서)

가)방패섬은 녹지 식생이 거의 없는 암반지역이나 사철나무와 갯고들빼기, 왕밀사초, 보리장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갯기름나물, 억새 군락지가 분포하고 있다.

나)솔섬의녹지 식생이 정상부분에만 관찰되는 암반지역이다,

1943년까지 자귀나무와 섬향나무 눈향나무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내이팜 폭격으로 소실되고 순차적으로 육지로부터 유입한 식생이 군락을 이루며 있다

자생식물은 곰솔군락과 보리장나무,송악,왕밀사초, 사철나무, 참나리, 산부추, 돌가시나무, 갯강아지풀,바랭이, 억새군락지,그리고 섬향나무가 소수 자생하고 있다.

다)수리섬의 식물상은 녹지식생은 거의없는 암반지역이다 .자생식물은 보리장나무, 사철나무, 왕밀사초, 갯기름나물, 땅채송화, 갯고들빼기, 해국, 억새, 돌가시나무와 쇠무릎이 자생하고 있다

라)송곳섬의 녹지식생이 거의 없는 암반지역으로 보리장나무와 사철나무 왕밀사초, 돌가시나무, 갯기름나물, 갯고들빼기, 담쟁이덩굴, 바짜루, 참나리, 명아주,쇠무릎,비쑥,번행초, 닭의장풀군락이 확인되었다.

마)가장큰 굴섬도 녹지식생은 거의 없는 암반지역이다. 그러나 식생은 보리장나무,사철나무,돌가시나무,왕밀사초, 갯고들빼기, 갯기름나물, 명아주, 담쟁이, 계요등, 왕모시대, 해국과 억새군락이 확인되었다.

바)밖섬인 등대섬의 녹지식생은 거의 없고 암반지역이다, 등대섬에서 확인된 관목은 ,보리장나무, 개머루, 돈나무, 인동, 사철나무, 담쟁이덩굴, 댕댕이덩굴이자생하고 초본으로 쇠무릎,왕밀사초,미국자리공,억새, 갯기름나물, 비짜루,참나리,산국,며느리배꼽,도깨비바늘,둥굴레속의 진황정이 발견되었다.

인간의 간섭이 많은 등대섬은 식생보전등급은 하급이나 그 외5개섬은 식생보전상태가 상급에 속하였다

계속적으로 오륙도의 식생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2013.02 오륙도 육상생태계 조사 (참여연구진 주식회사 엔에이피)자료인용

8가마우지는 겨울철 새로서 영문명은 Temminck_s Cormorant이고 학명은 Phalacrocorax filamentosus TEMMINCK %

SCHLEGEL이다.

 

 

◀ 가마우지이미지

 

 

 

4. 오륙도의 형성 과정

 

 

 

오륙도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오륙도는 12만년 전까지는 육지에 이어진 하나의 소반도였다. 그런데 부산만에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유구한 세월동안 거센 파도의 강한 침식작용으로 조그만 반도 곳곳에 해식동굴이 형성되고 이 해식동굴이 점차 커지면서 해식아치가 되었고, 육지에서 섬으로 분리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육지인 잘록개(승두말)와 인접한 방패섬과 솔섬은 그 지질의 구성이 동일하다. 즉,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지층이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옛날에는 이어져 있었던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식도의 형성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수심 1m에 있는 해식대 위에 폭 98cm, 높이 9m의 해식동에 의해서 솔섬과 방패섬으로 분리된 2개의 해식이암이다. 즉 우식도의 수직형 해식애가 절리면을 따라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수직적 파식작용으로 해식동이 형성되고 이것이 해식이암으로 분리되었다. 한편으로는 우식도의 선단부는 암석의 경연에 따른 차별침식이 가해져 역암의 층리면을 따라 수평적 파식작용이 동시에 작용하여 수평적으로 분리되면서 고도를 달리하는 4단의 비교적 넓은 파식대가 형성 되었는데, 이 파식대들은 대부분이 융기 파식대이다. 따라서 오륙도는 파식대 형성 후 최종 간빙기와 해퇴의 일시적 정체기 사이에 각각 3번의 간혈적인 융기운동으로 인한 지반상승기와 해면안정기 사이에 생성된 화석지형과 해성지형이 동시에 존재하는 파식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식도를 제외한 4개의 섬들도 수직적, 수평적 파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미지형이 지반상승운동인 융기운동으로 형성된 3단의 융기파식대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결국 현재의 오륙도는 12만년전에는 반도였던 것이 오랜 세월동안 지질 형성 시대를 거치면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수직적 해식동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해식이암으로 분리되었으며, 여기에 수평적 파식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간헐적인 융기운동으로 지반이 상승하여 4단의 계단이 있는 천연의 자연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부산만에 조각작품으로 자태를 뽐내며 부산의 자랑이자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 오륙도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단면도 사진 537p

▲ 오륙도 선착장 주변 전경 사진 538p

 

 

가. 남구 농.어촌계 변천사(경제)

 

 

 

 

 

 

 

 

 

남구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포구를 중심으로 어업생활을 하여 왔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읍지에 수록된 동래현(부)의 貢賦 토산조 에 나타난 이 지방 수산물의 종류는 후기로 내려올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업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포획 또는 가공이 가능한 수산동식물의 종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수산물을 어 ․ 패 ․ 조류별(魚 ․ 貝 ․ 藻類別)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어 류 : 상어, 대구, 청어, 방어, 은어, 복, 홍어, 전어, 고기, 고등어, 넙치, 도미, 숭어, 전어, 농어

② 패 류 : 전복, 생포, 굴, 홍합, 소라, 백합, 해삼, 모시조개

③ 해조류 : 미역, 김, 청각, 오해조, 곤포, 다시마

100년전 일제강점기 용호동에 조선해수산조합 본부를 두면서 새로운 어업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본 조합은 조선 연해에 출어하는 일본 어업인 들의 단체이었다.

1897년에 재 부산 영사 이슈인히코키치(伊集院彦吉)가 재 부산 일본 유지와 함께 관리자의 편리를 꾀하기 위하여 동 영사관 감독 하에 조선 어업협회라는 것을 설립하였다.

사업이 확대되면서 지원 자금을 국고보조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사업은 일본 정부의 문제가 되었다.

1899년6월에 수산 국장 마키보쿠신(牧朴眞)이 현장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각 부. 현 마다 관리자조합을 조직토록 하여 1900년5월에 연합회를 조직하여 부산주재 영사의 감독에 속하게 되었다.

이것이 조합의 전신이었다, 1902년3월 일본정부는 법률 제35호로 외국영해 수산조합법을 발포하였다.

조합조직이 필요하여 1903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조선해수산조합이 발족하였다.

대한제국 순종융희원년 1907년4월부터 조합은 통감부가 관리하게 되었다

조합본부는 용호동에 두고 지부를 청진,원산,마산,목포,인천,진남포등의이사청 소재지에 두고, 출장소를 울산,거제도,통영등의 각 요지에 두고 조장,부조장,평의원 등의 임원 및 지부장,기사,이사,기수,서기,의사 등의 직원을 두고, 어장에는 순라선7척을 파견하여 각종 업무를 관장 하였다.

조선어민에 대해서도 1909년부터 조합원과 동일하게 취급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일본 해안선의 총길이는 약 8,000해리이며 그 수산 액은 무려 1억 만 원(圓)을 웃돌았다,

한국의 해안선의 총길이는 약6,000해리 이지만 수산 액은 6~700만원에 불가 하였다. 비슷한 거리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데도 1/10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연해는 한류와 난류 두 해류가 분기되는 곳이며 , 이곳에 서식하는 어종은 계절 따라 회유. 왕래하는 바가 대단히 많았다. 토착 어패류 및 수조류와 함께 어업경영에는 가장 적합한 지세를 가지고 있어 어장으로서의 가치는 일본의 연해와 비교하면 오히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며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일본은 믿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은 수산 조합이 주도적으로 행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방 후 우리의 연안의 어업은 발전하고 풍부한 어자원은 고갈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나마 바다가 점차 매립되어 부두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이제는 수려하였던 바닷가 해안의 정취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용호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안은 매립하여 현대화된 컨테이너 부두가 되어 버렸다.

2001년에 발행한 남구민속과문화조사결과 1962년3월에 전국적으로 어촌계가 조직되었다고 한다. 감만동은 1965년에 조합원24명 준조합원 20명으로 어선은 약30여척으로 어촌계를 구성 하였다 용호어촌은 어선은 1950년대 19척, 1960년대 35척, 1970년대 40여 척, 1980년대 60여 척, 1990년대는 100여 척이었다

용호동도35명으로 어촌계조직하고 연안 미역양식업을 주로 하는 외지인 14-15명을 유입시켰다고 한다. 2001년 용호동 조합원 수는 123명이라고 한다.

2012년 현재 용호동 어민은 116명이며 이중 어촌계원은 77명이 등록되어 있다

박정석 어촌계장은 용호동 어선보유는 59척이며 통발이18척, 주낙(Long line延繩)이23척, 유자망이 18척 조업하고 있다.

연간 총 어획량은 340톤 정도이고 금액으로 환산하면 8~9억이라고 하지만 경매 어획량 이아니라 어민들의 주장대로 기록한 자료라고 수산업 협동 조합측의 답변이다.

용호어촌계는 어획량의 통계는 불가하다고 한다. 해양경찰 용호초소에 신고한 어선 입출항 자료에 의하면 년6,345회출 항하고 6,312회 입항한 것으로 입출항 일지에 기록 되어 있다. 월평균 528회 입출항 한 것이다

이기대와 오륙도 앞 바다에는 1969년에서 1998년 사이 140ha의 미역 양식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17~18명이 종사하였다. 내수로 판매하고 일부는 일본에 수출하였다

용호하수처리 방류수를 이기대 앞바다에 방류함으로 미역 양식어장이 폐쇄(1990년 40억 정도의 피해보상을 받음)되었다고 하였다.

우암, 감만동, 용당 연안은 매립되어 항만부두로 새롭게 발전하면서 각 어촌은 보상청구하고 어업권을 반납하였다

감만 어촌계는, 1985년 에 용당 어촌계는 1994년에 폐업하였다. 용당 보유어선 5~6척은 용호어촌계에 편입되었다.

용당의 어업에 대한 결정적인근거가 되는 사료가 있다. 340여 년 전인 1671년 경, 파평 윤씨(坡平 尹氏)의 용당 입향조 윤성룡(尹成龍)씨는 어민들이 잡아오는 생선을 받아서 말리거나 염장하여 5일마다 열리는 동래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고 윤랑근씨증언)

용호동의 농업은 1973년 정책이주로 실질농업은 종지부를 찍었다

농민들은 지금의 남부산 농협 조합원으로 남구687명중 가장 많은 320명의 대연동 다음으로 294명의 용호동이다. 농민의 농업종사는 미미한 상태다 .용호동 나잠 어업에 종사하는 해녀들도 용호주변 해역에서의 해산물채취가 줄어 제주도 등에서 구입하여 판매하는 실정이며 용호연안에서는 말똥 성게와 대수리 삿갓 조개류 그리고 철 따리 해조류 체취로써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바다의 오염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어느 한가지의 오염원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고 하겠다.

부산광역시 해양농수산국, 수산정책과는 부산 앞바다 이기대에서 약 1km부근 해상과 낙동강 하류 해안에 인공어초 (물고기 아파트) 단지 조성 사업, 국비 및 지방비지원으로1987년부터 조성해 오고 있다. 해상기상 급변(태풍)으로 유실 및 파손 분 보강 작업2012년11월19일부터 11월23일까지 작업 마무리하였다., 2개단지 32헥타에 4각형 435개 를 한국 수산 자원 관리공단 생태환경실에 위탁하여 매년 시행중이다.

국가 수산자원 확보와 생태 복원 사업으로 이기대 앞바다는 수심 약30m 지점의 어자원 보존차원으로 현장에 담당 공무원을 상주 시켜 관리감독하고 있다.

목적 : 연안 해역에 인위적으로 수산생물의 산란 및 서식장을

조성하여 수산자원 증강을 통한 어업생산력 증대 하기위하여 인공어초를

강제와 콘크리트조를 시기에따리 조성하고 있다.

○ 부산지역 시설시기 : ’87 ~ 계속

 

 

 

 

  어초운반

 어초 운반 설치작업

 

 

 

 

 

이기대 도시자연공원(환경)

도시계획시설 (이기대 도시 자연공원)조성계획 부산광역시 고시 1997-192호 1997년 7월30일 인가되었다,

조성계획은 부산 남구 초대민선 이 영근 구청장의 조성계획 현안은

1), 동산말지구. 2) 이기대 지구 3)장자산 중앙지구. 4) 오륙도 앞 용호지구등 4개권역으로 계획하였다

총부지 1,934,800㎡(586천평)의 자연녹지 지역이다

1차 2006년6월 이기대 지구에 (주)배금당이 총부지 58만6000평 중 1109평에 박물관을 건립하여 소장하고 있는 전통공예품3000여점과 함께 부산시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스포츠센터 및 휴게음식점 사업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잠정 포기하기로 하였다.

 

2차 동생말지구의 산업폐기물조치에 관한 환경단체와 주민 폐기물반출요구

이기대 도시자연공원 동산말 지구는 용호동 5-3.5-4번지 일대에 부지 37,658㎡중 폐기물 황토포함 약 18만 톤 매립한 부지면적 19,850㎡(6,015평)으로 1980년8월부터 1986년12월31일까지 매립한곳이다

매립한 동국제강(주)은 폐기물의 처리계획을 2001년04월27일 (청소67510-2682)남구청 청소행정과에 제출한 바에 의하면 용호만 매립지에 유 경험 처리업체로 하여 반출하겠다고 하였으나 폐기물 및 토양검사만 하고 지금까지 존치하고 있으며 폐기물 적치장에 동산말지구 조성계획을 여러 차례 변경하여 건축물 허가를 득하여 건축물 공사를 끝내고 사용 준공검사까지 득한 상태이다.

그간의 동산말 폐기물에 관한 사업으로 2002년5월27 국립경상대학교 정밀조사 .

2006년10월16일 부산 녹색연합의 감사원 감사 청구에 의한 2007년 3월5일부터 3월13일까지 감사실시

2007년10월17일 국회 국정감사에 따른 동산말 환경영향조사를 부산지역 환경기술 개발 센터에 의뢰하여 2008년 10월에 종결하는 등 주민들의 지역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속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단체와 주민들로부터 특혜에 의한 건축허가와 폐기물 처리를 적법절차에 따르지 않아 많은 의혹을 사고 있다

3차 오륙도앞 용호지구(해맞이공원과 잘록계)

해맞이공원에 꽃동산 계획으로 유체와 루드베키아 금계국등의 꽃을 파종하였으나 토양이 척박하고 잡초의 선점으로 2013년부터 친환경 생태광장과 잘록게 상부에 스카이워크 설치중이다

남구을지구 김무성 국회의원은 동산말 진입 도로공사를 위해 2004년5억원 2007년에10억원 총 15억원의 국비를 지원하여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의 갈맷길 조성 사업이 원만히 이루어 지도록 하였다.

 

 

골목시장과 용호시장 (경제)

 

 

 

 

 

대형마트에 밀려 골목시장 상권이 무너져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와 골목시장 현대화를 서두르고 있다

용호시장과 용호3동 골목시장 길 건너에 휴마트 2개의 매장이 영업하고 있다

용호1동 삼성시장 에도 탑마트가 자리하고 있어 골목시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진화 대형마트에 못 미치는 어류나 패류의 위생 관리가 골목시장의 고민이며 골목시장의 판매대의 정리가 되지 않아 들쑥날쑥하여 손님들의 보행이 불편한 실정이다

어패류 판매점은 패류의 껍질이 널브러져 썩는 냄새가 나며 어류를 장만하고 물을 아무렇게나 버리는가하면 채소를 장만하고 떡잎의 처리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어수선 하다

손수레에 과일이나 채소를 싣고 길을 막고 노점상을 하는 것도 재래시장을 기피하는 한 예일 것이다.

손님들이 코를 막고 장보러 오게 했어도, 옷을 버릴까봐 신경을 쓰면서 쇼핑을 한다면 구매하고 싶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필요한 것을 고르고 흥정하는 재래시장의 전통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

본래의 전통시장과 골목시장 다운 모습이 풍기는 그런 시장이 되기 위해 용호시장과 골목시장을 연계한 재래시장 현대화로 상권이 활성화되고 질 좋고 값싼 먹거리 제공으로 서민들이 살기 좋은 주거 환경을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반딧불이 체험행사 (환경)

매년6월 초순이면 용호동 이기대 도시 자연공원 장자산 큰 고개 쉼터에서 학생과 지역주민이 참석하여 반딧불이 체험행사를 가진다.

남구청과 아름다운 남구21추진협의회는(2012년6월) 제9회 이기대 반딧불이 체험·환경사랑 글짓기 및 사생대회를 시작으로 전자 바이올린 공연과 반딧불이 생태 설명 및 체험 행사가 이어진다.

이 날 행사는 반딧불이의 서식지로 잘 알려진 이기대공원의 보존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개최되고 있다. 반딧불 이는 반딧불이 과 딱정벌레를 통칭하는 말로 1년을 유충 형태로 땅에서 지내다 다 자란 후 1~2주 간 수풀을 날아다니다 생을 마감한다. 유충이 다슬기나 달팽이 진액을 먹고 살기 때문에 깨끗한 하천과 습지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이기대공원은 전국에 몇 안 되는 청정 해안이자 분 지형 자연습지지역으로 반딧불이 등 다양한 희귀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

초여름 밤의 축제가 오후 8시부터 팀별로 나뉘어 숲길을 걸으며 진행되며 반딧불이 를 관찰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남구청 관계자는 "반딧불이 관찰을 통해 어른들에게는 반딧불이 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자연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이기대 공원에서 관찰되는 반딧불이 는 파파리 반딧불이 와 늦반딧불이 두종이 있다 .

개똥벌레라고도 하는 반딧불이의 꼬리 부분의 발광세포에 있는 루시페린(luciferin) 이라는 화학물질이 반딧불이가 호흡하면서 들어 마신 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형광 빛을 내는데 이빛으로 짝을 찾거나 자신을 방어 하는데 이용한다.

이기대 장자산 해안 송림공원에서 치마바위 민물개와 밭골새 계곡을 따라 넓은 지역의 약수터 유수(流水)와 지하수가 땅에서 쓰며 나와 적절하게 습도가 유지되므로 많은 수의 반딧불이가 관찰 되었다.

그러나 2011년 7월27일 폭우로 개울이 유실되고 산사태등으로 지형이 변하여 복구 작업을 수행 하면서 시멘트 와 자연석등으로 유수 유도 관로 형 수로를 설치하여 2012년부터 일부지역에서 반딧불이가 관찰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딧불이의 생존 생태 환경 복원이 절실하다

50년 동갑내기 송림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빼곡한 이기대 공원에서 6월의 반딧불이 와 도둑게의 생존 환경을 지켜야할 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남구문화 예술회와 오륙도 환경사랑걷기 (체육문화)

 

오륙도 사랑걷기 대회

 

남구문화예술 전시회, 봄꽃나들이축제, ‘오륙 도사랑 걷기대회’, ‘오륙 도의 날’ 선포식 함께 열려.

부산남구생활체육회 주관으로 오륙도 사랑 걷기대회를 매년 용호동 부산환경공단 남부사업소에서 개최한다.

걷기대회 코스는

부산환경공단 남부사업소~이기대공원 순환도로~오륙도 입구~백운포체육공원에 이르는 5.5킬로미터 구간으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걷기 후에는 최종 도착지인 백운포 체육공원에서 주민장기자랑과 함께

수십 점의 경품이 추첨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주어진다.

한편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오륙도 사랑 걷기대회‘는 걷기 운동을 통해

지역민들의 건강과 화합을 지원하는 한편 오륙도와 이기대공원 등 남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됐다.

남구문화예술회’ 개막식을 시작으로 매년 더 색다른 공연과 전시회, 그리고 올해는 오륙도의 날 선포식도 한다

부산문화회관 중전시실에서는 부산남구문화원과 부산남구문화 예술회 주최. ‘남구문화예술회’도 열린다. 진행되는 전시회는 사진을 비롯해 서예, 수석 작품이 전시되기도 한다

올해부터 ‘오륙도 축제’가 봄에 개최되면서 올해로 21회째를 맞는 남구 문화 예술 회와 함께 열린다.

이번 예술회를 통해 평소에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정서를 뛰어난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성재영 남구문화원장은 우리들이 예술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예술가들이 이런 작품전시회를 21회째 개최하고 있다며 앞으로 매년 확대를 해서 더 큰 전시회를 열어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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