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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못할거라 했지만 반도체-철강-포나차 보란듯해냈다

아지빠 2019. 12. 9. 08:58



세계는 못할거라 했지만… ‘반도체-철강-포니차’ 보란듯 해냈다

 

[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1> 위기 때마다 등장한 리더십(이미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 청진에 가자. 어디 가서 어떤 노동을 해도 지금보다야 못하겠는가.”(정주영 동아일보 에세이 ‘나의 기업 나의 인생’ 중)

1931년 강원 통천군 시골마을의 배고픈 열여섯 살 소년은 구장집이 받아보는 동아일보에 실린 구인광고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드릴 땔감 값을 1, 2전씩 빼돌려 가출 자금을 모았다. 첫 번째 가출은 아버지에게 덜미 잡혀 실패로 끝났다. 세 번째 가출도 동아일보에 난 부기학원 광고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소를 판 돈을 훔쳐 서울로 야반도주해 부기학원을 다녔다. 몇 달 뒤 아버지가 찾아와 “종손은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하소연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네 번째 가출은 성공이었다. 서울 쌀가게의 배달원 정주영은 특유의 바지런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주인과 손님의 신용을 얻었다. 주인이 쌀가게를 넘겨준 1937년, 22세의 청년 정주영은 서울 신당동 일대 ‘경일상회’ 사장이 됐다. 이 쌀가게는 오늘날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을 탄생시킨 사업 밑천이 됐다.

○ 기업가 정신으로 일군 한국 기업 100년

동아일보가 자문위원 30인과 함께 100개를 선정한 ‘한국 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중 상위 20개 가운데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장면만 6개였다.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승용차 포니’(1976년·3위), ‘현대차 설립’(1967년·6위), ‘현대중공업 1호선 진수 및 인도’(1974년·8위) 등이 해당된다.

1915년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19년 3·1운동 이후 등장한 신문, 철도, 산업화 등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조선·자동차·건설 강국을 일궈낸 정 회장의 삶 자체가 한국 경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위 중 삼성과 관련된 장면도 6개다. 1위인 ‘이병철 도쿄 선언’(1983년)을 비롯해 ‘삼성전자 설립’(1969년·4위), ‘이건희 신경영선언’(1993년·7위) 등이다. 포항제철 건설과 관련된 ‘포항제철 첫 쇳물 생산’(1973년·2위), ‘박태준의 하와이 구상’(1969년·15위)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에서 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차관을 얻는 데 실패한 박태준 당시 포철 사장이 하와이에서 목 놓아 울다가 대일청구권 자금 활용 아이디어를 떠올려 오늘날 포스코를 만든 그 장면이다.

정구현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정부가 먼저 중화학산업 육성책을 내놓았고 기업이 이에 발맞춰 경제성장을 이뤘다. 당시 한국으로서는 불가능한 과제를 가능케 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들의 출현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1919년 첫 근대식 주식회사로 꼽히는 경성방직(경방)이 등장한 이후 창업가 정신으로 뭉친 기업인들이 농업 한국을 경공업 한국으로, 이어 중화학공업 한국, 첨단 전자산업 한국으로 퀀텀점프시키는 주역이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이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세계는 비웃었다. 투자나 기술 자문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현대차 설립이 1967년인 것은 마침 미국 포드가 1966년 한국에 진출할 목적으로 사업 파트너를 찾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회사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포드가 기술 이전이 가능한 합작사 설립에는 발을 빼자 현대차는 독자 생존밖에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포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포철 용광로에서 쇳물이 나오자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창립요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1968년 세계은행이 “한국의 제철공장은 엄청난 외환비용에 비춰 경제성이 의심되므로 종합제철 건설을 연기하고 노동 및 기술 집약적인 기계 공업 개발을 우선 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 5년 만의 쾌거였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한국에 전자산업을 뿌리내린 혁신적 기업인이었다. 한국 최초의 라디오, TV, 세탁기, 냉장고는 모두 금성사(현 LG전자)에서 나왔다. 한국인의 일상을 바꾼 화장품(럭키크림), 하이타이(최초의 합성세제) 등도 LG의 작품이었다.

▼ “불가능을 가능하게… 기업가 정신이 오늘의 한국 일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