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교육부, “민중은 개돼지” 나향욱 정책기획관 ‘파면’ 결정(2016-7-12)
“과음 상태로 기자와 논쟁 벌이다 실언” 교육부 해명, 사실 왜곡
ㆍ기획관 발언으로 논쟁 시작…실언할 정도로 과음도 안 해
ㆍ본사 방문 때 보도 내용 인정국회선 “기억 안 난다” 발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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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나향욱 정책기획관(47)의 망언에 대해 내놓은 해명은 주요 사항들을 왜곡했다. 나 기획관도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왜곡된 교육부 해명의 연장선에서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교육부는 지난 9일 설명자료를 내고 경향신문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문제 발언은 “해당 공무원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음한 상태로 기자와 논쟁을 벌이다 실언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나 기획관은 국회에서 ‘1% 대 99%’ ‘신분제 공고화’ 발언에 대해 “과음과 과로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개·돼지’ 발언에 대해선 “본심이 아닌 영화에 나온 대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 기획관은 비이성적인 실언을 할 정도로 과음을 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병원 치료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던 기자의 기억으로 교육부 참석자들은 오후 10시30분경 기차로 세종시에 내려갈 예정이어서 과음 분위기가 아니었고, 특히 나 기획관은 자리를 여러 차례 비워 술을 가장 적게 마셨다.
나 기획관은 자신만의 논리를 가지고 차분한 어조로 주장을 이어갔고, 녹음기를 켠 이후에는 이를 의식하며 민감한 발언은 피해 갔다. 여러 차례 발언 취지가 뭔지를 물어봤고, 해명을 위한 시간도 충분했지만, 발언을 수정하거나 철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문제 발언은 논쟁을 벌이다 하게 된 것도 아니다. 나 기획관의 발언이 논쟁의 시작이었다. 당일 나 기획관은 “국정 역사교과서 여론조사 결과가 당초 찬반이 5 대 5였다가 고시 발표 후 7 대 3으로 바뀐 것을 두고, 찬성하는 사람이 30%라도 있는데 수구꼴통으로 몰아붙인다”고 말했다. 이에 경향신문 기자가 사회의 양극화가 심한데 토론 문화가 부족하다고 상황을 정리하려 하자 나 기획관은 갑자기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이후 영화 <내부자들>을 언급하며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와 같은 망언이 이어졌다. 만남 후반부 이 발언이 나오기 전까진 원만한 분위기였다.
지난 8일 오후 경향신문 편집국에 해명차 찾아온 나 기획관은 “본인이 하지 않은 말이 기사에 한 문장이라도 들어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돼지···신분제 공고화해야”
ㆍ교육정책 총괄 나향욱 정책기획관, 기자와 식사하며 ‘망언’
ㆍ“출발선상 다른 게 현실…상하 간의 격차를 인정하자는 취지”.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47·사진)이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며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와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에서였다. 자리에는 교육부 대변인, 대외협력실 과장이 동석했다.
나 기획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무원 정책실명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신분제’ 얘기를 꺼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수차례 해명의 기회를 주었으나 나 기획관은 처음의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 경향신문 기자들과 기획관은 이날 처음 만나는 상견례 자리였다. 교육부 정책기획관(고위공무원단 2~3급)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대학구조개혁 같은 교육부의 굵직한 정책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주요 보직이다. 나 기획관은 행정고시 36회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고 교육부 대학지원과장, 교직발전기획과장, 지방교육자치과장을 거쳐 지난 3월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했다.
경향신문은 사석에서 나온 개인 발언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간부의 비뚤어진 인식, 문제 발언을 철회하거나 해명하지 않은 점을 들어 대화 내용을 공개하기로 했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나향욱 정책기획관)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해 웃음)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 <내부자들>이다.
“아, 그래 <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 그게 무슨 말이냐?(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 1% 대 99% 할 때 그 99%?
“그렇다.”
- 기획관은 어디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기획관 자녀도 비정규직이 돼서 99%로 살 수 있다. 그게 남의 일 같나?
(정확한 답은 들리지 않았으나 아니다, 그럴 리 없다는 취지로 대답)
-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 지금 말한 게 진짜 본인 소신인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 이 나라 교육부에 이런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다니…. 그래도 이 정부가 겉으로라도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아이고…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경향신문 기자들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따라온 교육부 대변인과 과장이 “해명이라도 들어보시라”고 만류, 다시 돌아가 앉았다. 이때부터는 휴대폰 녹음기능을 틀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 기획관은 “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을 편하게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조금전 발언 실언이냐, 본인 생각이냐.
“(휴대폰을 가리키며) 일단 그거 꺼라.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린 것도 있고. 내 생각은 미국은 신분사회가 이렇게 돼 있는데, 이런 사회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이런 얘길 한 것이다. ‘네 애가 구의역 사고당한 애처럼 그렇게 될지 모르는데’ 하셨는데, 나도 그런 사회 싫다. 그런 사회 싫은데, 그런 애가 안 생기기 위해서라도 상하 간의 격차는 어쩔 수 없고… 상과 하 간의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사회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냐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 사회안전망을 만든다는 것과 민중을 개·돼지로 보고 먹이를 주겠다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이 사회가 그래도 나아지려면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냐라고 얘기한 거다.”
- 정식으로 해명할 기회를 주겠다. 다시 말해 봐라.
“공식적인 질문이면… 그거 끄고 하자.”
- 본인의 생각이 떳떳하면 왜 말을 못하는가. 개인 생각과 공무원으로서의 생각이 다른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데… 지금은 말 못한다.”
나 기획관은 8일 저녁 대변인과 함께 경향신문 편집국을 찾아와 “과음과 과로가 겹쳐 본의 아니게 표현이 거칠게 나간 것 같다. 실언을 했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민중은 개·돼지” 교육부 고위간부 대기발령···교육부 “깊이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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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식사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해야” 등의 발언을 한 교육부 고위관리가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교육부는 9일 보도자료를 내고 “문제 발언을 한 나향욱 정책기획관에 대해 7월9일 대기발령 조치를 하였으며, 경위를 조사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사건을 교육부의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향욱 정책기획관(47)은 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와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며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돼지···신분제 공고화해야”
당시 경향신문 기자들은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수차례 해명의 기회를 주었으나 나 기획관은 처음의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 교육부 정책기획관(고위공무원단 2~3급)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대학구조개혁 같은 교육부의 굵직한 정책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주요 보직이다. 경향신문은 사석에서 나온 개인 발언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간부의 비뚤어진 인식, 문제 발언을 철회하거나 해명하지 않은 점을 들어 대화 내용을 기사화했다.
교육부는 9일 “기사에 언급된 내용은 해당 공무원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음한 상태로 기자와 논쟁을 벌이다 실언을 하게 된 것”이라며 “소속 공무원의 적절치 못 한 언행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민중이 ‘개·돼지’면 혁명과 항쟁은 누가 했나
[김종철 칼럼] 인구 5150만 명이 짐승? 선민의식·우월감 사로잡힌 공직자 나향욱 뿐일까
교육부 고위관리라는 사람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망언’을 남겼다. 주권자인 국민의 99%를 ‘개·돼지’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이 황당무계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언의 주인공은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이다. 그는 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무원 정책실명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 ‘신분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미디어오늘 9일자 기사에 간략히 소개되었지만, 경향신문 인터넷판 7월 8일자 기사에 나오는 대화 내용을 더 자세히 보기로 하자. 나향욱이 말하고 경향신문 기자들이 질문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음)”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내부자들>이다.” “아, 그래 <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그게 무슨 말이냐?(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1% 대 99% 할 때 그 개·돼지?” “그렇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지금 말한 게 진짜 본인 소신인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나향욱은 8일 저녁 교육부 대변인과 함께 경향신문사 편집국을 찾아가서 “과음과 과로가 겹쳐 본의 아니게 표현이 거칠게 나간 것 같다. 실언을 했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피로한 상태에서 한 말이라 하더라도 그의 ‘민중 개·돼지론’과 ‘신분제 고정화론’은 너무나 조리가 ‘정연’하다.
교육부는 9일 “소속 공무원의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나향욱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렇게 끝낼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이번 ‘망언’만 토해낸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고시 36회 출신으로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을 거쳐 지난 3월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한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대학 구조개혁 등 교육부의 주요 정책들을 기획하고 다른 부처와 조율하는 핵심적 보직을 맡고 있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국정화 등 교육의 앞날을 좌우할 정책 개발과 집행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명백할 것이다.
나향욱의 생각처럼 국민의 99%가 ‘개·돼지’라면 5200만에 가까운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52만 여 명을 뺀 나머지 5150만 명은 모두가 ‘짐승’이 되어버린다. 나향욱이 보기에 ‘민중’은 누구인가? 인구의 99% 가운데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 중소기업인, 문화예술인, 각 부문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두 들어 있다. 넓은 의미의 민중은 유형, 무형의 가치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총체적 명칭이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온갖 재화와 지식, 정보는 민중의 노동을 통해 창출된다. 나향욱의 ‘민중관’에 따르면 그는 ‘개·돼지들’이 만든 쌀과 반찬을 먹고 그들이 생산한 자동차를 타고, 문학과 음악, 미술 등을 향유한 셈이 된다.
민중은 1919년 3·1운동부터 1960년 4월혁명,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항쟁까지 겨레의 독립이나 민주화에 앞장선 주역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강행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민중을 역사 발전의 주체로 보지 않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그런 인물들과 나향욱이 ‘밀실’에서 어떤 ‘협업’을 했을지 우려된다. 이 부분은 세 야당이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 극소수 기득권층의 권력 독점, 학벌과 족벌에 따른 신분제 고착으로 자유나 평등과는 동떨어진 비민주적 체제로 굳어져 버렸다. 오죽하면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같은 말들이 상용어가 되었을까? 나향욱은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이상 더 굳힐 신분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선민의식과 우월감에 젖어 있는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나향욱 같은 인물이 더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반역사적 엘리트나 시대착오적 관료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에 역행하는 지배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media@mediatoday.co.kr
신분제, 오만한 욕망
귀를 의심했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계급도, 계층도 아닌 신분제 사회? 지난 7일 저녁 교육부 고위 간부의 입에서 느닷없이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 500년의 신분제 체제가 사라진 후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낡은 단어를 일상 속에서, 그것도 우리 사회의 미래와 연관지어 다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부는 좋은 정책을 펴고, 언론은 이를 잘 전달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자며 화기애애했던 자리. 일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분과 계급의 가장 큰 차이라면 계급은 노력으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세습이 원칙인 신분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며 최근 우리 사회에선 계급 고착화와 격차 확대 문제에 대한 울분과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흙수저, 금수저론의 핵심은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상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흙수저 안에서도 또다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층층이 계층구조를 이루며 갈등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각 지역 19~69세 7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가능성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45.3%로 전년의 43.8%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사회를 우려하며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고 계층이동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계층도 아닌 신분제를 공고화하자는 주장은 어떻게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날 저녁 더욱 큰 충격이었던 것은 이런 말이 너무도 당당하게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석에서의 발언이지만 기사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작 발언 자체보다 발언 이후의 상황이었다.
기사가 부를 파장을 알기에 여러 차례 해명 기회를 줬다. 발언을 철회할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반역사적이고 위헌적인 발언을 하고서도 개인 생각이라는 것만 강조할 뿐, 실언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녹음기를 켠 이후엔 이를 의식해서인지 발언 수위만 훨씬 낮췄을 뿐이다. 정말 우리 사회는 이미 ‘신분제 사회’가 돼 있고, 그래서 이런 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귀가 후 충격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사이, 세종시로 돌아가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보내온 문자메시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가웠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저녁시간 내내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후배 기자는 너무 충격적인 내용에 모든 발언과 참석자들의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당사자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을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면 크게 논의가 필요한 사안도 아니었다. 발언을 보도하기로 결정하는 데 편집국 차원의 망설임은 없었다.
교육부는 보도의 파장이 심상치 않자 지난 9일 해당 간부를 대기발령하고, 취중 실언이었다는 취지로 사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의 일탈 이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이 간부는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놨다는 점에서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선 신분제 고착화를 고대하면서 말로만 격차 타파를 외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들이 시행하는 정책들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 것이며, 결국은 얼마나 정반대 방향의 효과를 낳을 것인지….
고교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고교 서열화,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로스쿨 파동,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더욱 확대할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대학구조개혁, 국회 보좌관 친·인척 채용 특혜 등은 따지고 보면 ‘신분제 부활’을 꿈꾸는, 스스로 귀족층이라 생각하는 상위 1%의 은밀한 욕망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계층이동의 주된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이 점에서 국민들은 어떤 분야보다도 교육만큼은 작은 차별, 불공평에 민감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과연 불평등 완화와 격차 해소를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사태로 시민들의 분노를 목도했다면, 교육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신분제 사회는 결국 99%가 1%를 위해 복무하는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신분제는 공고히 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아무리 1%가 99%의 먹을거리를 마련해주더라도 그렇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지면에서까지 되새겨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다. 경향 송현숙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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