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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거 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아지빠 2012. 10. 1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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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거 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민병욱 칼럼]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대선 핵심기구 캠프 위원장의 큰 감투를 씌워주며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게 웃기고, 멋진 쇼로 기획했던 영입이 쇼는커녕 망신만 사며 당의 '콩가루 집안 꼴'을 선전한 것도 웃기는 일이다.

수사자와 암호랑이가 교배해 나온 2세가 라이거(liger)다. 갈기, 무늬 등 양쪽 특징을 고루 타고나지만 이 변종은 자연 상태에선 생기지 않는다. 사자는 아프리카, 호랑이는 아시아가 '서식 무대'여서 원초적으로 교배 자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강제교배를 시켜 태어난 변종이란 얘기다.

라이거는 유럽 서커스단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백수의 왕과 황제가 합쳐지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쇼' 용도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는 합방시켜도 서로 물어뜯어 죽이는 등 2세 탄생이 어려워 호기심어린 관객이 라이거를 보러 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가 김대중 전대통령비서실장 한광옥씨를 영입한 걸 보고 라이거가 생각났다. 박 후보 주장처럼 "'국민통합을 위한 큰 발걸음'으로 한씨를 영입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선거판에 흔한, 상대방과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쇼' 차원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 씨의 정치이력을 보면 새누리당과는 그야말로 '서식 무대'가 다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민주당(새천년)의 대표를 지낸 경력만 봐도 생각, 이념, 행동이 새누리당과는 전혀 딴판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런 그를 당에 들이니 아니나 다를까, 서로 물어뜯는 일이 생겨났다.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이 "한씨를 데려오면 나부터 옷을 벗고 나가겠다"고 반발한 것이다. 말로는 그의 '비리전력'을 내세우지만 '호랑이가 사자 꼴을 못 보는 경우'와 같다.

끼리만 어울리다 쓸쓸하게 생 마감

안 위원장에 동조하는 당내세력이 많은 것도 생장무대가 딴판인 정치인을 명분 없이 들이는데 대한 반대가 크다는 뜻이다. 박 후보가 "한 씨는 정치하려 모셔오는 게 아니다. 대통합을 위해서다"라고 설득하지만 이것도 우습다.

대선 핵심기구 캠프 위원장의 큰 감투를 씌워주며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게 웃기고, 멋진 쇼로 기획했던 영입이 쇼는커녕 망신만 사며 당의 '콩가루 집안 꼴'을 선전한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라이거는 탄생이 어려운 만큼 출생 후 따르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우선 수컷은 번식능력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한다. "인간이 만들어줘 당대에만 존재할 뿐, 과거도 미래도 없는 동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발육도 비정상적이고 수명은 호랑이나 사자보다 훨씬 짧다.

그뿐인가. 라이거는 사자나 호랑이들이 그 세계에서 따돌리고 경원시해 평생을 왕따로 살아야한다. 어렵사리 태어났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모습의 변종'과 어울리려는 사자나 호랑이가 있을 리 없고 결국 적은 수의 라이거끼리만 어울리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라이거 딜레마'다.

이미 한광옥씨는 새누리당에서 따돌림을 경험하고 있다. 누구도 어울리려 하지 않고 경원시한다. 박 후보가 "정치와 정당이라는 것이 아주 하자 없는 분들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다 아우르면서 가는 것"이라고 감싸지만 당내 통합과 화합에서부터 거센 브레이크가 걸렸으니 한씨가 위원장을 맡아 '국민대통합'까지 가야할 길은 그야말로 요원하고 또 험난해 보인다.

이러니 그의 영입이 "선거 때만 존재할 뿐 '과거도 미래도 없는 불임(不姙) 영입'이 돼버렸다"는 한탄이 당내에서 나온다. 박 후보는 어떤 절차도 없이 상대당의 전 대표이자 비리의혹까지 있는 사람을 끌어와 '이도 저도 아닌 변종 당'을 만들려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여전히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남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는 '불통 이미지'만 고착화시킨 꼴이 됐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비윤리

라이거는 요즘 "인간의 욕심이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빚어낸 변종" 취급을 받으며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한다. 미국 영국의 수족관 동물원 협회는 "자연 상태에서 생길 수 없는 생명체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비윤리적"이라고 규정했다.

2010년 타이완정부는 라이거를 생산한 농장주에게 벌금형을 내렸다. 자연법칙과 야생동물보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1989년부터 라이거를 탄생시켜 한때 수출까지 했던 한국도 이젠 더 이상 라이거를 만들지 않는다.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라이거 딜레마에 빠진 박 후보가 한광옥씨 문제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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