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으로 돌아온 남편,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다”
[인터뷰] 인혁당 사형 이수병씨 부인 이정숙씨
남편 주검 고문 흔적 역력 손톱·발톱은 찾아볼수도 없었고
발뒤꿈치는 시커멓게 움푹 들어가 “당국이 화장해 재로 만들어버린
다른 피해자들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신 아기 얼굴 좀 봐요, 얼굴. 이만큼 컸어요. 얼굴 좀 봐요.’
돌을 갓 넘긴 어린 딸을 등에 업은 28살의 젊은 아내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1975년 4월1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구치소 안마당. 멀찌감치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아내는 등을 돌려 필사적으로 딸의 얼굴을 보였다. 1년 만에 본 남편이지만 소리내어 말을 걸 수는 없었다. “남편을 만나게 해준 것이 알려지면 내 목이 달아난다. 아는 척도 말을 걸지도 말라”고 교도관은 신신당부했다.
속으로만 외친 아내의 말을 들었을까. “많이 컸네. 많이 컸네.”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여 변호인 접견실로 끌려가던 남편이 말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아내가 들은 남편의 마지막 육성이 됐다. 학원강사였던 남편 이수병(당시 38살)씨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이튿날인 9일 새벽 형장에 끌려가 세상을 떴다.
“그렇게 빨리 죽일 줄 알았으면, 그때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했을 텐데….” 이수병씨의 아내 이정숙(65)씨는 12일 <한겨레>와 만나 37년 동안 쌓인 한을 토해냈다.
구속 뒤부터 남편 얼굴 못봐 교도관 도움으로 먼발치서 잠시
두돌 안된 딸 들어보이고말한마디 못했다 교도관 다칠까봐
“그렇게 빨리 죽일 줄 알았으면무슨 말이라도 했을텐데…”
생전의 남편은 통일운동가였다. 1961년 5·16 쿠데타가 있기 사흘 전인 5월13일 서울에서 열린 통일촉진궐기대회에 참석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유명한 연설도 했다. 이 일로 쿠데타 직후 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 수립 이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이씨를 비롯한 8명을 사형에 처했다.
그들을 구속한 직후부터 1심·2심·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유신 정권은 단 한 차례의 가족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다. 교도관의 도움을 받은 덕에 오직 이씨만 수감중인 남편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보았다. 사형당한 나머지 7명의 유족은 그런 행운조차 누리지 못했다.
“법정에서도 뒷모습밖에 못 봤어요. 아빠들 옆에 선 헌병들이 뒤도 돌아보지 못하게 했어요.” 환갑이 넘은 아내 이씨에게 죽은 남편과 그 동료들은 여전히 ‘아빠’다.
사형은 새벽에 집행됐지만, 시신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넘겨받았다. 죽은 이의 몸뚱이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어요. 손톱 10개, 발톱 10개는 모두 빠져 있었고, 발뒤꿈치는 시커멓게 움푹 들어가 있었어요.” 그날을 회고하던 아내 이씨는 “당국이 시신을 화장해 재로 만들어버린 다른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며 치를 떨었다.
박정희가 내 남편 죽였고 박근혜는 우리 자식들 죽이려 하는 것 같아…
자기 아버지 때문에 이만큼 됐지만 자기 아버지 때문에 결코 대통령 될 수 없을 것”
이후 37년이 넘도록 매년 4월9일이 되면 이씨는 경남 의령에 있는 남편의 산소에 갔다. “박정희 살인마, 내 남편을 살려내라”며 울었다. 남편이 죽을 때 5살도 채 되지 않았던 어린 아들 둘과 딸도 엄마를 따라 이유도 모른 채 울었다.
그에게 ‘박정희’와 ‘박근혜’는 같은 이름이다. “(박근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볼 수가 없어요. 꺼야 해요. 한동안 텔레비전에 안 나올 때는 살 것 같았어요. 요즘은 텔레비전을 거의 못 봐요.”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남편이 사형당했던 그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지금껏 언론에 나선 적 없는 이씨가 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한겨레>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심 무죄 판결로 조금이나마 위안받나 했는데, 대통령 나온다고 우리를 들먹여도 되는 건가요? 또 우리를 이런 데까지 나오게 해야 하는 건가요?”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한 심경을 묻자 이씨는 그만 울어버렸다. “아아, 박정희가 내 남편을 죽였고, 박근혜는 우리 자식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손에 쥔 휴지로 눈물을 닦아낸 이씨는 “이 말은 꼭 하고 싶다”며 꼭꼭 힘주어 덧붙였다.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 때문에 이만큼 됐지만, 자기 아버지 때문에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인혁당 발언 수습 난맥상…박근혜는 ‘사과없다’ 요지부동
홍일표 당대변인 “박쪽 참모와 상의…논평 전문 줬다”
박근혜에 전달 안돼…최경환 실장 “나와 상의 없었다”
당직자 “최실장 보고 받은건 맞아”…“너무 꼬인다” 한숨
홍일표 당대변인 “박쪽 참모와 상의…논평 전문 줬다”
박근혜에 전달 안돼…최경환 실장 “나와 상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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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인혁당 관련 발언 사과를 둘러싼 12일 당 내부 혼선은 이 사안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준다.
박 후보가 ‘인혁당 파문에 대한 출구전략’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당내 의견을 수렴해 마련된 당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을 전면 부인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홍일표 대변인의 이날 브리핑은 박 후보의 인혁당 표현에 일부 오해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하는 형식을 취했다. 홍 대변인의 논평은 “두 개의 판결”(10일),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의 여러 증언”(11일 오전), “재심 판결 존중”(11일 오후)으로 이어진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발언이 유족들의 반발을 넘어 ‘국민대통합 행보’에 대한 진정성을 허물어뜨리는 상황으로 치닫는 데 대한 새누리당 내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 재심 결과를 부정하고, 1차 인혁당 사건과 2차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까지 혼동하면서, 박 후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당직자들이 박 후보의 역사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공감했고, 박 후보에게 이런 뜻을 전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홍 대변인 논평도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 시대의 사법살인인 인혁당 사건에 대해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박 후보의 인식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차이가 커 하루빨리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홍 대변인도 이날 저녁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로서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추진한 것”이라며 “당의 다른 의원들과 상의했고, 그런 것이 좋겠다는 중지가 모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 안에서는 박 후보의 최측근인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도 함께 논의한 사안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최 실장과 가까운 한 당직자는 “최 실장이 홍 대변인으로부터 사과 논평을 내겠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맞다”며 “다만 그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고, 후보에게도 사전에 이를 전달하지 못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부에서 추진한 이런 ‘출구전략’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꺼리는 박 후보의 완고한 벽에 부닥쳐 일단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날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견에서 열린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 워크숍에 참석한 박 후보는 홍 대변인의 사과 브리핑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후보를 수행한 이상일 대변인은 “홍 대변인 개인 생각”으로 규정했다. 최경환 비서실장도 “홍 대변인 혼자 이야기한 것”이라며 사전 논의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안팎에선 이번 사태로 박 후보의 ‘자기 중심적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친박 진영의 한 인사는 “박 후보의 역사 인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최근 박 후보에게 ‘유신 문제가 나오면 미화하면 안 된다. 또 유신의 최악이 인혁당인데 사과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며 “그럼에도 저렇게 나오는 건 그 보고서를 안 봤거나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당내 의견을 수렴해 홍 대변인이 총대를 멨으면, 박 후보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호응했어야 하는데, 일이 크게 꼬였다”며 “이제 박 후보의 진정성만 더 의심받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상일 대변인은 이날 밤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오늘 홍일표 대변인의 발표는 후보와 상의한 적이 없다”며 “후보의 생각은 과거 수사기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사례가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승근 성연철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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