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스크랍

MB 외교·안보 난맥상

아지빠 2012. 7. 4. 01:33

 

MB 외교·안보 난맥상

한·미동맹에 올인… 북한과 단절, 중국과 불통, 일본과 긴장

“만에 하나 지금 와서 서명식을 연기한다면 그날로 대한민국 외교는 ‘개판’ 되는 겁니다.”

지난달 29일 일본과 비밀정보보호협정 서명식을 2시간쯤 앞두고 한 외교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잠시 후 주일대사관 이경수 정무공사는 일본 외무성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명식 연기를 통보했다. 이 당국자는 그 후로 언론 보도를 보기 겁난다고 한다. ‘한국 외교의 재앙’이 현실이 됐다.

이 재앙은 이명박 정부 취임 초 잉태됐다. 정권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은 주한 미대사관과 활발히 접촉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대사관의 서울발 외교전문을 보면, 참모들 관심은 온통 대통령의 첫 외교 행보인 2008년 4월 미국 방문에 가 있었다.

▲ 천안함 사건 등 대응 미숙  동북아를 신냉전 구도로  정작 미국과도 과제 산적

미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안보의 기축으로 삼고 있는 나라로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좀 유별났다. 전 정권에서 ‘훼손’된 한·미동맹을 회복하는 것을 외교의 최우선 순위로 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8년 2월21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대사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이명박, 한·미관계 개선 약속’ 전문에 이명박 정부와의 약속·요구가 요약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쇠고기 문제 해결,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력 강화, 한반도를 넘어 지역·세계 여타 지역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한·미동맹,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등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클린턴 장관에게 “(이명박 당선자의) 신선할 정도로 강경한 (대북) 스탠스를 환영하라”고 권고했다.

이 제언들은 이행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해결됐고, FTA도 타결됐다. 비자면제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명분으로 한·미관계가 표면적으로 나빠진 적도 없다. 2009년 6월 ‘동맹미래비전’ 채택 이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확산하는 미국의 ‘가치동맹’ 파트너로 활약 중이다.

긴장된 남북관계는 한·미를 더욱 밀착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현 정부는 비핵화를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앞세운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표방했고 북한은 반발했다.

하지만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미국은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미국이 선택한 것은 ‘연합방위태세 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동북아에 더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김정일 사망과 북한 핵·미사일 실험은 오바마 정부가 구상한 대중국 견제와 ‘아시아·태평양으로 회귀’의 중요한 한 축의 구성을 추동했다.

 

한국과 중국은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부터 “외교적으로 ‘막말’을 주고받는 관계”(송민순 전 외교장관)가 됐다. 연평도 사건과 김정일 사망을 거치면서 ‘불통 외교’는 한·중관계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았다. “양국은 노무현 정부 때처럼 진심 어린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외교안보 당국자)고 한다. 현 정부 들어 한·중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는 평가는, 정부 당국자들도 쑥스러워하며 말한다.

지난달 워싱턴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에서 미국이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강조한 모습을 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한·미·일 군사협력을 하라고 저렇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은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여기저기서 ‘동북아에 신냉전구도를 불러들이는 장본인’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구한말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한반도가 미·중의 충돌장이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라며 “한·미동맹을 물신화하여 미국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맹목적인 친미 정책은 단기적으로 국익을 증진한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민의 반미감정을 유발해 우의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미·중관계를 갈등관계로만 갈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맞지 않다. 냉전 때 미·소관계처럼 갈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미·중관계가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지 않는 한 한국이 갈등의 불꽃이 튀는 지점이 된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두 잃고, 한·미 양자관계의 영속성만이라도 건졌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회의적인 견해가 정부 내에도 있다. “치열하게 싸워야 할 과제들이 슬슬 드러날 것이다. 2015년으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 기지 이전, 방위비분담 협상, 원자력협정 개정협상, 미사일 사거리 문제 등은 철저히 따져서 결론내야 하는 사안들이다. 다행히 이 과제들을 다음 정부에 넘겨버려, 다소 한가하게 ‘가치동맹’을 얘기할 수 있지만 내년쯤이면 가치동맹 얘기가 쑥 들어갈지도 모른다.”(정부 당국자)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최종수정 2012-07-03 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