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붕산 망고개
신선대가 있는 대붕산(大鵬山 침탈시 용마산) 남쪽해안은 일제 침탈 기에 부산 외항 방파제 공사를 하다 멈춘 곳이다 . 동쪽인 남항까지 조석(潮汐)현상으로 조류(潮流)가 빠른 곳이다.
숭어는 조석이 발생하는 곳을 좋아하는 어류이며 집단으로 연안을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용호동 대붕산 남쪽 끝 탕건(宕巾) 돌(石)이 있는 곳에 육소장망(六艘張網)을 설치하고 대붕산에 망루를 만들어 숭어의 이동을 살펴보고, 해안가에서는 망루의 지시에 따라 그물을 올려 숭어를 잡았다. 낚시꾼들도 합세하여 그물을 올리는 작업에 동참하여 숭어를 얻어 가기도 하였다.
현재의 백운포(비용개 飛龍개) 매립지의 고래 등(고래처럼생긴돌) 남쪽 끝 지점이다.
망루가 있는 곳은 동쪽은 용호동에서 올라오는 고개이고 서쪽오름길은 용당동이다, 두 곳이 만나는 곳을 망 고개라 하였다.
그러나 1935년에 용당에서 출생한 윤랑근 씨가 생전에 메모한 자료에 의하면
적의 동정을 살피는 망을 뜻한다고 하였으며. 갑오경장 이전까지 이곳에서 망대가 있었는데, 그 표적은 대마도를 거점으로 하는 왜구의 동정을 살폈다고 기록하였다.
고기를 잡기위해 약50여 메타의 바위에 만든 망루가 그런 역할을 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또한 용당의 앞산 신룡산(용당주민 봉우리산 또는 보오지산)에 봉화를 지피던 화덕 터가 해방되는 무렵까지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용호동 주봉 장자산과 비룡산에 가려 남해 바다를 조망하기 어렵고 1942년 미군이 일본본토에 공습을 하기 시작하자 장자산 오해야항 봉수대에 탐조등을 설치하면서 원형을 유지한 봉수대(3개)를 철거하였다.
봉수대 는 대나무 숲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약10여 메타 아래에 약수터와 오래된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봉수 터에 백자의 파편과 담치나 조개류의 껍질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백자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은 사금파리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다.
역사의 자료를 개인의 추측만으로 단정하여 기록한 메모를 향토의 역사처럼 미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한번쯤 현장을 답사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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