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분개염전

아지빠 2014. 12. 19. 01:40

 

 

 

 

 

분개염전

 

 

옛날부터 분포리 또는 분개라 하여 용호동으로 기록하면서 분개라는 지명은 잊을수 없었다.

분개(盆浦)의 어원에서 분(盆)은 사전에 소금을 굽는 그릇이며, 동이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염전의 형태를 확인하지 못하고 글의 어원에 의해 소금을 굽는 염부 옥으로 잘못이해하고 있는 학자들이 많아 안타깝다.

그러나 소금을 굽는 그릇은 토부(土釜)와 철부(鐵釜)이다, 즉 쇠 가마를 만들 기전에는 대형의 굴 껍질을 배열하고 그 양면에 굴 껍질 재나 굴 껍질가루에 함수나 간수를 섞어서 이긴 것을 칠하여 만든 토부가 철판이 생산되기 전까지 사용하였다.

분을 염정(鹽井.沼井)이라 기록하고 섯등이라 하였다

섯등은 염전의 면에 개흙(살토撒土)을 살포하여 여기에 해수를 흡수시켜 햇빛이나 바람으로 수분이 증발, 건조되어 염분이 개흙에 부착되면 이것을 끌어 모으는(채함 採鹹)곳이다. 염정의 채함에 해수를 부어 함수를 채취한다.

그래서 분(盆)은 섯등이다. 분은 염전의 넓이와 관계없이 한 뙈기에 한 개만 있었다. 일재 침탈 기부터 대형염전으로 개발하고 섯등의 형태는 조선식으로 하고 수량(일본염전)을 늘여 생산량과 작업조건을 개량하였다.

개는 포(浦)라 기록하며 바닷가라는 뜻이다.

분개는 소랑(小浪)강 좌우에 유재 염전이 있고 그 염전의 중앙에 섯등(盆)이 있는 곳이라 분개(盆浦)라 하였다.

함수를 굽는 집은 연료목이 풍부한 해안가에서 원시적인 해수직자법(海水直煮法)으로 바닷물을 퍼 올려 끓여 만든 소금(자염)과 같이 가마의 불을 지피는 여망(焒盳.炃夫)이의 기술에 좌우 되었다.

열에 의해 함수가 증발되면서 소금이 결정되면 불을 줄이고 완전결정이 되도록 담수를 뿌려 촉진시킨다.

결정된 소금을 미레로 끌어 모으고 나무주걱모양의 삽으로 소금을 끄집어내어 삼태기나 소쿠리에 담아 간수를 뺀다. 주의할 점은 함수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소금을 끄집어내고 함수를 보충하며 불을 조절하여야한다, 함수가 타면 소금은 철가 마에서는 붉게 되고 토부에서는 가마가 쪼개져 사용할 수 없다.

분개는 작은 규모의 염전이 소랑강(小浪江) 좌우에 약30여개가 있었으며 소금을 굽는 염부옥은 6개정도가 1900년도까지 여러 염전의 함수를 수집하여 자염을 생산하고, 함수의 량과 연료비 그리고 분부의 노임으로 분배하였다고 한다.


 소금을 구하기 힘든 아주옛날 소금을 구하는 방법 

바닷물을 정제한 소금을 구할 수 없을 때 대용으로 염분을 구하려는 우리 선조 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다. 특정의 벌레에서 염분을 얻는 충염(蟲鹽),붉나무 열매나, 신나물을 뜯어 독 속에 재어두어서 얻는 초염(草鹽), 쇠똥이나 말똥을 주워 다가 이를 태워서 얻는 분염(糞鹽) 등 이름만 들어도 소금을 얻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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