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6월10일 광화문 광우병 촛불짐회
4대강 22조는 시작일 뿐, 84조원 더 써야
"구름 같은 이야기" ‘자뻑’ 회고록에 없는 'MB의 비용'… 실패한 자원외교, 부자감세 효과도 불확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 임기 시절 치적에 대한 온갖 자화자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지식협동조합 좋은 나라’가 3일 출간한 <MB의 비용>은 이명박 회고록에 대해 ‘본격 반박’하는 책이다. MB 회고록이 말하지 않은 ‘MB의 비용’에 대해 정리했다.
자원외교 회수율 114.8% vs 회수율 3.4%
이명박 회고록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자원외교’다. 이명박은 “눈에 보이는 전쟁보다 총성 없는 자원 전쟁이 더 무섭다”며 자원외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말만 들으면 자원외교는 성공적이다.
“우리 정부 시절 공기업이 해외 자원에 투자한 26조 원 중 4조 원은 이미 회수됐다. 2014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미래의 이자비용까지 감안한 현재가치로 환산된 향후 회수 예상액은 26조 원에 달한다. 총 회수 전망액은 30조 원으로 투자 대비 총회수율은 114.8퍼센트에 이른다”
MB의 비용 /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알마 펴냄
<MB의 비용>은 360쪽의 분량 중 100쪽을 할애해 자원외교의 성과는 형편없다고 반박한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에 따르면, 에너지 공기업 3사는 MB정부 기간에 해외자원개발 신규 사업으로 60건의 사업에 총 29조 7092억 원을 투자했다. 2014년 6월 기준으로 이 중 1조 1275억 원을 회수하였고 회수율은 겨우 3.8%에 그쳤다.
“공기업 중 해외자원개발에 가장 앞장 선(10개 공기업 투자액의 57.3%) 석유공사는 2014년 6월 기준 17조 8940억 원을 투자해 겨우 6140억 원을 회수하는 데 그쳤다. 회수율은 3.4%다. 석유공사는 탐사, 개발단계 사업보다 생산단계에 있는 사업에 주로 투자했다. 즉 이들 투자는 개발과 거리가 먼 단순 ‘지분투자’다. 이미 생산하고 있는 기업에 투자한 것인데도 회수율은 고작 3.5%에 그쳤다”
“가스공사의 경우 2014년 6월 기준으로 9조 1972억 원을 투자해 약 5112억 원을 회수했다. 회수율은 5.6%다”
“석유공사와 달리 가스공사는 개발단계 사업에 주력했다. 개발단계는 본격적인 생산단계로 가기 위해 탐색과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투자 규모도 크지 않다. 보통 서서히 투자를 늘려가는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가스공사 사례들을 보면 투자액이 1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가 여덟 건, 투자액이 1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사업도 두 건(캐나다 혼리버, 호주 GLNG)이다. 서서히 투자금액을 늘려간 게 아니라 한 번에 거액의 자금을 투입했다. ‘묻지마 투자’가 대형 손실을 자초한 것이다. 개발단계 회수율이 말도 안 되게 낮은 이유는 개발사업 특성 때문이 아니라 리스크를 무시하고 한번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이해할 수 없는 투자를 해서 천문학적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광물공사는 어떨까. “2014년 6월 기준으로, MB정부시기에 약 2조 6180억 원을 투자해 회수한 자금은 단돈 22억 뿐이다. 회수율은 0.08%다”
자원외교 평가 아직 이르다? 이미 실패했다
자원외교는 미래를 내다보는 사업인데, 너무 현재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은 회고록에서 “자원 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라며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 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기영 교수는 “이런 주장은 회수 기간이 길다는 자원개발 일반 속성에 비추어볼 때 그럴듯하게 들린다”며 회고록 내용을 정면 반박한다. 고 교수는 석유공사 투자를 사례로 든다. 회수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탐사 단계부터 투자하기 때문인데, 석유공사는 대부분 생산단계에서 투자했으므로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천문학적 자금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사업도 있다. 새정치연합 ‘국부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위원회’는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 2018년까지 31조 원 이상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광물공사가 추진한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사업의 경우, 부도가 났을 때 1600억 원 정도 손해보고 손을 뗄 수 있었는데 사업을 지속하다 1조 4000억 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명박은 회고록에서 “자원개발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MB의 비용>에는 온갖 비리의혹과 졸속으로 진행된 인수과정, 5일 만에 이루어진 경제성 평가, 내부평가기준과 절차를 무시한 각종 사업들이 등장한다.
자원외교로 인한 MB의 비용은 빚으로 남았다. 2014년 6월 기준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는 161조 9400억 원으로, MB정부 이후 110조 400억 원이 늘어났다. 자원개발 주도한 에너지 3사는 MB정부 5년 동안 40조 원이 늘어났고, 그 후 2조원이 더 늘어나 42조원이 됐다. 공기업 부채의 상당부분은 ‘외화부채’였다.
4대강 22조는 아무것도 아냐! 아직 84조는 더 써야
이명박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4대강이다. ‘5년 대통령이 100년을 내다봤다’는 자찬도 아끼지 않는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을 통해 물을 확보하고(가뭄 해결) 수질을 개선시키며 홍수까지 예방하겠다며 그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2012년 5월부터 6월까지 전국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기록적인 가뭄이 찾아왔다. 그러나 충남, 전남, 전북지역 등 주요 농경지의 가뭄 피해는 전체의 0.5퍼센트 수준에 불과해 그 정도가 미미했던 것으로 판명됐다”
“가뭄 때면 흐름이 멈추고 군데군데 고인 물이 썩어 악취를 풍기던 4대강의 수위도 평년 갈수기 평균수위보다 1.7미터 높아졌다. 전국의 모내기 실적은 99.8퍼센트로 가뭄이 없던 2011년 봄보다도 오히려 0.6퍼센트 높아졌다. 2모작 논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논이 제때에 모내기를 마친 것이다. 과거 가뭄 때면 어김없이 하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의 비상급수도 104년 만의 가뭄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봄 가뭄이 있었던 2012년에는 없었다”
“대가뭄이 끝나자 이번에는 태풍이 몰아닥쳤다. (중략) 그러나 2012년에는 낙동강 유역의 범람 피해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아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성과가 또 한 번 입증됐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홍수와 가뭄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데는 강바닥의 퇴적물을 파내는 준설작업과 함께 4대강에 설치된 16개의 ‘보’가 큰 역할을 했다”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4대강 공사가 끝나가던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까지 집중호우와 대가뭄, 태풍 등 시험대를 거치며 대부분 과장됐음이 드러났다”
<MB의 비용>은 홍수 위험은 더 늘어났고 수질악화로 수질개선 비용은 더 늘어났으며 하천정비비용 역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박창근 카톨릭관동대학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환경부가 2013년 민주당 김경협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3년 4조 400억 원의 예산이 수질개선 사업에 투입될 얘정이다. 수질개선 사업비는 (4대강) 사업 착수 시점인 2009년 처음 3조원 대로 진입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박근혜 정부 취임 첫해부터 집권 5년간 수질관리 비용으로만 총 20조원이 넘게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4대강사업으로 하천의 수질이 악화되자 수자원공사는 댐에 저장된 물을 수질개선용으로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은 연간 3230억 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홍수 예방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4대강 사업 전에 홍수 위험 지역이었던 곳을 살펴봐야 한다. (중략) 약 3,000킬로미터 길이의 국가하천 중에서 홍수예방을 위한 4대강사업의 준설구간은 686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준설구간이 21세기 들어 홍수로 인한 범람 피해가 크게 발생하지 않은 구간이라는 점이다. 지난 10년 간 국가하천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액은 피해액 전체의 3.6%인데 4대강사업 구간에서는 전체의 0.2% 정도에 그쳤다”
“오히려 홍수 위험 지역은 4대강사업의 대상인 국가하천보다 지방하천이다. 불행히도 지방하천은 4대강 사업으로 홍수 위험이 더 커졌다. 4대강에 조성한 자전거길, 공원 등이 홍수 위험에 노출된 것은 물론이고 역행 침식으로 지방하천의 제방이 유실되고 교량이 붕괴됐다. (중략) 4대강사업 이전인 2008년 523억 원에 불과했던 홍수 피해금액은 2012년에는 4167억 원으로 여덟 배까지 늘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을 완료하면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물 문제를 거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예산이 획기적으로 절약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수자원 부문 예산을 4대강 사업이 끝난 2012년에 1조 3359억 원 편성해 하천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의 성과를 위해 ‘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치켜세운다. “심지어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야권의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한강 수중보를 철거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물론 그 후보는 당선이 된 후 시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파리를 관통하는 776킬로미터의 센 강에는 34개의 보와 갑문이 있다. 346킬로미터의 영국 템스 강에도 45개의 보와 갑문이 있다. 선진국의 강들과 비교해볼 때 4대강에 설치된 16개의 보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반면 박창근 교수는 보 철거를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급격한 수질 악화에 의한 녹조 발생으로 식수대란을 걱정해야할 지경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하천에 설치한 보다. 보는 물을 고이게 하고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보 구조물은 오히려 홍수 위험을 증가시키고, 물을 고이게 해 수질을 악회시킨다. 4대강에 설치한 보들은 효용성은 없고 오히려 홍수 위험을 증가시키는 구조물이다. 파이핑 현상, 누수 현상 등 각종 부작용을 발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비용이 지속적으로 들어갈 것이다. 보의 안전성은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4대강 사업 역시 수많은 비용을 남겼다. <MB의 비용>에 따르면 국토부가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면서 건설사들이 담합을 통해 취한 부당이득은 1조 6635억 원, 농수산부 사업에서 건설사들이 담합으로 취한 이득은 2992억 원, 환경부 사업에 담합으로 취한 이득은 4844억 원, 훼손된 습지의 가치는 5조 8712억 원이다. 운하반대교수모임이 산정한 4대강사업의 연간 유지관리비는 5794억 원(국토부가 산정한 유지관리비는 1353억 원). 그 외에도 각종 추가 발생할 비용을 다 합치면 4대강 사업의 비용은 84조 원에 이른다.
부자감세로 경제 살려? 고용 안 늘었다
이명박은 최근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법인세 인하, 부자감세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세계적인 추세였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로 경기 부양이 시급한 상황에서 G20이 선택한 국제 공조 차원의 대응책이기도 했다. ‘부자 감세’라는 왜곡된 단순 논리로 치부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MB의 비용>은 법인세 인하의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와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법인세 인하로 고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국민들도 다 안다. 법인세 깍아주면 일자리가 생긴다고 했는데, 안 생겼다. 대기업은 돈 벌어 쌓아놓고 해외에나 눈 돌리고 국내 투자는 안 한다. 세금만 깍고 규제 풀어준다고 물건 살 가계에 돈이 없는데 국내투자가 이뤄지겠나”
“보유 부동산 100분위 현황을 보니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상위 1%가 소유한 부동산이 서울 면적의 다섯 배나 늘어났다. 공시가격 기준으로 보면 400조 원 이상이다. 5년 동안 세금 깎아주고 환율 방어도 해주고 임금은 적게 주고, 전기 깎아주고 해서 사내유보금이 쌓였는데 그 돈이 전부 다 ‘땅투기’로 쏠린 것이다”
“가계의 소득을 늘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임금이다. 임금이 올라야한다. 그런데 이명박 경제의 특징이 임금 정체다. 김대중 정부나 참여정부 때도 외환위기, 카드위기 등이 있었지만 실질임금 증가율이 3.5% 수준은 됐다. 그런데 MB정부 때는 고작 0.2%였다”
‘구름 같은 이야기’ 실체 밝히기 위한 ‘MB의 비용’
위에 소개한 자원외교, 4대강, 부자감세는 <MB의 비용>에서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것들이다. <MB의 비용>은 이 외에도 롯데와 KT, 포스코 등에 주어진 각종 특혜, 원전 비리, 영부인의 한식세계화 사업 등의 비용을 파헤친다.
이명박은 지난해 12월 18일 측근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러나”고 답했다. 이명박 회고록에는 MB정부 시절 치적들에 관한 ‘구름 같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MB의 비용>과 같은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회고록으로 본 MB의 과대망상과 피해망상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명박산성으로 큰 사고 막아… 광우병 사태로 국제 신뢰 회복”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오는 2일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미 몇몇 언론사를 통해 책의 내용이 알려지고 있다. 무려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 속에는 이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재임시절의 각종 현안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회고록 속에 등장한 이명박의 ‘말’들을 정리해봤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즈음 내 병도 완치됐다”
이명박은 스스로를 ‘경제 대통령’으로 불렀다. 그런 만큼 회고록도 경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각종 경제정책들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차 있다. 책 전체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외교 부분도 사실 FTA, 자원외교 등 경제성과로 치환된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이 아닌 경영자로 인식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통치가 아닌 경영을 하고자 했다”
“(서울시장 때) ‘경영 마인드라는 게 뭡니까? 고객 제일주의 아닙니까? 시민이 광장을 원하는데 교통이 막힌다고 광장 조성을 포기하는 것은 고객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는 서울시 간부들의 의구심에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다. 국가 통치가 아닌 국가 경영의 입장에서 사안에 접근하려 애썼다”
금융위기 때 병을 앓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아마도 취임 후 광우병 사태부터 세계 금융위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국가경제 규모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커져 한 번 넘어지면 임기 내내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울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즈음 내 병도 완치됐다“
광우병 사태 때 ‘원칙’ 지켜 금융위기 극복?
‘경제 대통령’ 이명박은 취임 첫 해부터 큰 위기에 직면한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열린 촛불집회 때문이었다. 지지율은 10%대까지 추락했다. 그는 광우병 사태를 ‘내부로부터의 도전’이라 표현한다.
“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주장엔 문제가 있었다. (중략)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방송에 담았다. 심지어는 오역을 해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부풀리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만 본다면 3억 미국인들과 우리 국민들은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에 가까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셈이었다“
“<PD수첩>이 방영되자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광우병 괴담이 퍼져나갔다. “광우병은 공기로도 감염된다”, “화장품이나 젤라틴 성분이 들어간 생리대, 기저귀로도 전염된다”,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로 수돗물까지 오염된다” 등으로 그야말로 괴담이었다“
“공기업 노조를 비롯해 시민단체 등도 집회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새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대한 논의가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조직을 통폐합하고 정원을 줄이며, 일부 공기업은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공기업 노조를 자극했다”
“집회가 정권 퇴진 주장 양상으로 변하자 일각에서는 17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대선 불복 세력’이 집회를 주도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선 불복 세력이 건강을 염려하는 순수한 국민들의 뜻에 편승해 대통령과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 세력들이 집회에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MBC PD수첩’이 광우병 사태를 촉발시켰다고 보는 것처럼 이명박은 광우병 사태를 통해 언론환경의 문제점을 발견한 듯하다.
“당시 공영방송은 전임 정부가 임명한 경영진과 노조가 좌우하고 있었다”
“이처럼 언론 환경과 정치 환경 모두가 새 정부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정부의 입장을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전달할 통로가 막혀 있었다. 대통령 실장을 중심으로 모든 수석들이 언론사를 분담해 언론사 간부들과 기자들을 만나 이 문제를 설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MB식 불통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박산성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명박산성’, ‘MB식 소통이 이런 것이냐’하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수십만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맞부딪치는 상황에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만일 내가 정치적 이해를 따졌다면 이런 논란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익이 손상되더라도 ‘재협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협상을 파기해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 광우병 집회도 끝나고 정치적 타격도 훨씬 적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17대 대선에서 나를 선택한 국민들은 정치적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일하기를 기대할 것이라 믿었다”
“광우병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중략)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원칙을 지킨 것이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의 국가부도 사태를 막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한국의 G20 참여, 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유치 등 굵직한 외교적 성과의 이면에는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쌓인 국제사회의 신뢰가 있었다”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이명박은 이후 여러 정책사안의 반대에 부딪칠 때마다 광우병 사태 때의 ‘그 세력’을 언급한다.
“9월 위기설이란 그해 5~6월의 광우병 파문이 진정되면서 곧바로 등장했다. (중략) 광우병 사태를 주도하던 세력 중 일부가 9월 위기설을 매개로 인터넷을 이용해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위는 한·미 FTA를 미국에 의한 한국의 종속구조를 심화시키는 구도로 보고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시위의 주동세력은 단체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광우병 사태, 제주 해군기지 건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비롯해 각종 국책 사업 반대 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들이었다”
한미FTA 반대에 “반대를 위한 반대 죄다 모아놔”
이명박은 본인이 하는 일이 반대에 부딪칠 때마다 이를 ‘거짓’ ‘막연한 두려움’ 나아가 ‘정치공세’로 파악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인다.
“(농산, 축산물 종사자에게) FTA가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재앙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막연한 두려움은 곧잘 대대적인 FTA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런 불안 심리를 부추겨 반사적 이익을 얻고자 했다. 그로 인해 FTA 체결은 경제 분야를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미 FTA 12개 독소조항’이란 주장은 그런 수준을 한참 벗어난 내용이었다. 대부분이 사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과장하고 있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명분을 죄다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이 미국과의 FTA에서 ISD 조항을 걸고 나선 의도는 당시 서울 시가지에서 계속됐던 한·미 FTA 반대 시위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진보단체들의 주도로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는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본질이 왜곡되고 정치 쟁점화되는 과정에서, 국익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국제사회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한·미 FTA 결사 반대!’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졌고 반대자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여기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참고 설득하기를 거듭했다. 그러나 거짓이 걷히고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금쪽같은 시간이 헛되이 흘러갔다. 상처도 입고 아픔도 있었지만 결국 한·미 관계를 복원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나의 정책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반대세력에게는 ‘북한’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북한은) 2007년 내내 반(反)한나라당, 반(反)보수 선동을 이어나갔고, 내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자 나에 대한 비방에 집중했다. 17대 대선 과정에서 국내 일부 세력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북한의 주장과 같은 내용으로 나를 비방했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마저도 이에 동조했다”
무상급식은 ‘무차별 복지’, 반값등록금에는 ‘자기 책임의 원칙’
회고록에는 현안에 대한 이명박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2012년 대선 때 등장했던 각종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은 사실 이명박 재임시절부터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것들이다.
“부유층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기보다는 우선 시급한 복지 수요가 많았다. 우리 정부를 ‘부자정권’이라 비난하던 민주당이 부자들에게까지 복지 혜택을 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다. 민주당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를 ‘무차별 복지’, ‘정략적 복지’라 생각했다”
“대학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며, 그 혜택은 인적자본이 축적되는 형태로 당사자인 대학생에게 돌아가므로 자기책임원칙이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또 대학생은 장차 고소득층에 속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도 등록금 부담을 일반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아무리 좋은 복지정책도 안정된 일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결국 최선의 복지는 기업을 육성해 건강한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복지예산도 대부분 기업 활동에서 비롯된 세금으로 충당된다. 기업이 사라지면 일자리도 복지예산도 사라진다. 민생과 복지를 위해서도 기업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운하 반대론자들, 막무가내로 대운하 사업 물고 늘어져”
그가 재임했던 시기 그가 벌였던 일들은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자원외교는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고, 4대강 사업 역시 국정조사 요구를 받고 있다. 법인세, 기업인 특별사면 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2014년 12월 현재, 야당은 우리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실적에 대해 공세를 펴고 있다. 자원 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다.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 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 생각한다.“
“특히 야당의 비판이 사실과 대부분 다르다는 점에 큰 문제가 있다. 과장된 정치적 공세는 공직자들이 자원 전쟁에서 손을 놓고 복지부동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고위험-고수익 구조라는 자원 개발의 특성상 해외 자원 투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어지는 것이다. 실패한 사업만을 꼬집어 단기적인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정치적 반대세력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반대론자들은 막무가내로 대운하 사업을 물고 늘어졌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단일 공사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역사라 할 만큼 공사 규모가 컸다. 따라서 오랜 시간 검토와 계획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할 여력이 우리에겐 없었다”
“감사원이, ‘대운하 위장설’ 같은 것을 발표하는 행위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수많은 하천 관련 전문가들이 공을 들여 기획한 것이다.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감세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소득세 인하의 효과는 고소득자에게 더 크게 돌아가며, 법인세 인하의 효과는 대기업에게만 돌아간다는 주장이었다. 2007년 민노당이 전임 정부를 비판했던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세계적인 추세였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로 경기 부양이 시급한 상황에서 G20이 선택한 국제 공조 차원의 대응책이기도 했다. ‘부자 감세’라는 왜곡된 단순 논리로 치부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나 역시 평창 유치를 위해 이건희 회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은 야권의 대대적인 정치 공세를 불러올 가능성이 컸다. 우리 정부에 ‘부자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비난하던 야권이 이 회장 사면을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국익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섰다. 야권의 공세로 인한 정치적 타격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직은 내 삶의 큰 자산”
800쪽에 달하는 회고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시절 자신에 대한 반대를 ‘정치공세’로 판단하며 이를 밀어붙였고, 더 밀어붙이지 못해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회고록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정직은 내 삶의 큰 자산이었다. 때로는 곧이곧대로 하는 바람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신뢰를 쌓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회고록을 읽는 독자들도 이명박의 시대를 이와 같이 떠올릴 수 있을까?
2015년 02월 04일 (수) 조윤호 기자 ssai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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