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통령 최측근 비서관들 후한말 환관들처럼 국정 농단”
새정치민주연합은 28일 김성수 대변인 국회 브리핑에서 “‘십상시’(十常侍·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 10여명을 일컫는 말)라는 비선실세의 꼬리가 드디어 잡혔다”며 “정윤회씨를 중심으로 대통령 최측근 비서관들이 후한말의 환관들처럼 국정을 농단해왔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들이 매달 두차례씩 만나 청와대 내부정보를 유출한 문제는 공공기록물관리법 등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또한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사실이라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뒷공작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고 주장했다.
비선라인인 ‘만만회’ 인사개입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지원 비대위원은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우리는 이미 (비선실세가)박지만 씨를 미행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언론이)감찰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면 (청와대와 검찰도)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입력 : 2014-11-28 13:39:48ㅣ수정 : 2014-11-28 13:39:48>
朴대통령 측근 행세했던 '3인방', 정씨 '정보원' 노릇
‘문고리 권력’ 3인방은 그동안 정치권 안팎의 ‘뜨거운 감자’였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정보 독점과 인사 개입설이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인 입문 시절부터 보좌진으로 합류한 이들이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최측근 보좌역을 맡으면서 정보·인사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청와대 자체 감찰에 따르면 이들의 뒤에는 정윤회(59)씨가 있었으며, 실제 이들이 청와대 내부 동향에 대해 보고하는 등 정보를 유출한 정황이 확인됐다.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한 10인의 비선라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이들 3인방은 정씨의 ‘정보원’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돼 정보 유출에 따른 실정법 논란, 내부 감찰 중단 과정에 개입 의혹 등이 뒤따를 전망이다.
◆ 문고리 권력의 ‘이중 생활’
본지가 입수한 청와대 감찰보고서에 따르면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3인은 사실상 정씨에게 청와대 내부 동향, 국정 동향을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 겉으론 박 대통령 핵심 측근 3인방 행세를 했지만 실상은 정씨를 떠받들고 있었던 셈이다.
정씨와 이들 3인은 박 대통령이 1998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 보좌관·비서관으로 함께 일한 사이다. 정가에서는 정씨가 당시 이들을 인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씨와 이들이 서울 강남권에서 매달 2회 정도 모임을 하고 있다는 첩보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흘러들어간 때는 지난해 10월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씨는 변변한 얼굴 사진 한 장이 공개되지 않았을 정도로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지난해 7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숨은 실세’ ‘박근혜정권 인사에 관여하는 인물’ 등 자신을 둘러싼 의혹은 모두 거짓이라는 해명을 했던 게 최근 행적의 전부였다.
당초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들 3인방에 주목했던 것은 내부 정보 유출 의혹이었다. 청와대 내부 정보가 외부로 새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이를 규명하려는 차원에서 자체 감찰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과정에서 정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민간인 신분인 정씨를 감찰하는 배경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이 비서관을 비롯해 청와대 안팎에 흩어져 있던 ‘십상시’를 통해 고급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민간인 정씨가 이들과 나눈 논의 내용이 정부 고위 공직자의 기용이나 퇴진, 향후 국정운영 방향 등이었던 점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청와대 내부 정보 보안 의무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 외부 인사에 동향 보고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씨는 ‘비선 라인’ 논란이 한창 확산된 지난 7월 중앙일보 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도 청와대 3인방 접촉설에 대해 “접촉이 없다. 인간적인 정의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연락하는 게 도리인데, 나는 섭섭하다”고 전면 부인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중식당 전경.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정윤회씨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등이 매달 두 차례 정도 이 곳과 강남권 식당에서 만난 것으로 파악했다. 이제원 기자
◆내부 정보 유출 의혹
감찰 보고서대로라면 정씨를 돕고 있는 비선 라인 멤버들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외부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내부 상황과 대통령 국정 운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동향 등 국가 기밀 사항이 유출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혹은 정치권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청와대) 비선 조직의 의혹을 받고 있는 한 사람으로 알려진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종종 청와대 서류를 싸들고 청와대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 비서관은 무슨 이유로 누구와 만나기 위해 청와대 서류를 싸들고 밖으로 나가는지에 대해 분명히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박 원내대표가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 측은 “당시 정보기관을 통해 (박 원내대표가) 그런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김기춘 실장 교체’ 비선라인 동원해 루머 살포
‘문고리 권력’ 3인방 포함 10명 매달 두번 회합
본지, 청와대 작성 감찰보고서 단독 입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속칭 ‘증권가 찌라시’에 떠돌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은 정윤회(59)씨가 자신의 비선라인을 활용해 퍼트린 루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불리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포함된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감찰 결과 확인됐다.
27일 본지가 단독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올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동향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떠돌던 ‘김 실장 중병설’ ‘김 실장 교체설’과 같은 루머의 진앙이 어디인지를 감찰한 결과를 담고 있다.
감찰 조사에서 정씨는 이들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모임에는 소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이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하고 실명으로 언급했다.
정씨는 지난해 이들과의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의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면서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현재 공식 직함이 없는 정씨가 자신과 가까운 청와대·정치권 내부 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세간의 ‘그림자 실세’ ‘숨은 실세’ 의혹이 사실임을 드러낸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들이 내부 동향을 외부 인사에 전달하는 행위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찰 보고서에는 정씨와 이들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 VIP의 국정 운영과 BH(청와대 지칭)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적혀 있다.
이 보고서는 경찰 출신 A경정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로 작성했고, 김 실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감찰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A경정은 원대복귀했고, 조 비서관은 그로부터 두달 뒤 사표를 제출했다. 감찰 후 청와대 비서관 등에 대해 청와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준모·조현일·박현준 기자 jmkim@segye.com
비선실세그룹 ‘십상시’… 국정 정보 교류·고위직 인사 간여
靑 감찰보고서 무슨 내용 담겼나
청와대가 정윤회(59)씨와 청와대 비서관 등에 대해 자체 감찰을 벌인 것은 세간의 ‘비선 실세’ ‘문고리 권력’ 의혹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찰 보고서에 기록된 대로라면 정씨는 자신의 비선라인을 통해 청와대·정부 동향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리는 등 사실상 ‘숨은 실세’ 역할을 했다. 청와대와 정씨 측은 그동안 “비선 라인은 없다”고 해명했으나, 청와대 밖에서 정씨와 10인의 정기 회동은 그간의 ‘비선 실세’ 논란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정씨 등을 감찰한 적이 없다는 청와대의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민간인인 정씨가 청와대 내부 인사와 정보를 교류하고 고위직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이 확인됨에 따라 이들의 실체와 국정 개입, 실정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엄정한 조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감찰 중단 이후 정씨와 ‘내통’한 청와대 비서관 등에 대해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직자 인사에 ‘찌라시’ 동원
청와대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정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비롯한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차례씩 정기적으로 만났다. 모임 장소와 시간에 대한 연락과 준비는 이 모임의 막내인 K 청와대 행정관이 맡았다. 날짜가 정해지면 강원도 홍천 인근에 머물던 정씨는 모임 날짜에 맞춰 상경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들 모임은 대개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 K 행정관이 청와대 내부 사정과 현 정부 인사 동향을 보고하는 식으로 시작됐다. 정씨는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청와대 내부 인력 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며, 안 비서관 등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감찰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청와대 감찰을 불러온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이 나온 과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씨와 비선 세력들은 자신들 의도가 탄로나지 않기 위해 속칭 ‘찌라시’로 불리는 정보지를 이용했다. 서울 여의도 정치권발로 분위기를 일단 조성해 놓은 뒤 적당한 시점에 교체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씨는 당시 “(김 실장은 친박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이 VIP(박근혜 대통령 지칭)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다. (하지만)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인회’는 오랜 기간 박 대통령 주변에서 자문역할을 해온 원로그룹이다. 김기춘 실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용갑 전 국회의원,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7인회 구성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비서실장에 취임한 김 실장은 실제 올해 초부터 사퇴설과 교체론에 시달렸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올해 초에도 (박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이 있은 다음에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후임) 인사 이름까지도 거론됐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퇴설이 흘러나왔지만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 실장까지 교체할 경우 국정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올해 1월6일 작성한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란 제목의 감찰 보고서 중 일부를 촬영한 모습. 보고서에는 현 정부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59)씨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관들로부터 청와대 내부 동향 등을 보고받고 정부 인사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등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 인사에도 개입했나
보고서는 정씨가 지난해 말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검찰 다잡기’라는 표현은 지난해 연말 검찰 상황에 비춰봤을 때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당시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12월 취임한 뒤 올해 1월까지 인사를 단행하며 ‘강성 검사’로 분류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계열 검사들을 한꺼번에 지방으로 좌천인사하던 때다. 정씨가 말했던 검찰 다잡기라는 표현이 ‘검찰 내 자기 사람 심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 시점상 ‘물갈이’ 인사 때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올해 초 인사에서 그간 별로 두각을 보이지 못한 검사들을 주요 보직에 앉히자 조직 안팎에선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청와대 감찰이 보고서를 작성한 A경정의 갑작스러운 원대 복귀로 중단되면서 정씨 등이 실제 김 실장 교체설 확산이나 ‘검찰 다잡기’ 등을 위해 추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련 의혹에 대한 추가적인 진상 규명이 요구되는 이유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씨와 청와대 내부 비서관이 실제 국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들을 보호하는 윗선은 없는지 등에 대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준모 기자 jmkim@segye.com
대통령기록물 유출 7년 이하 징역
靑 정보유출 어떤 처벌 받나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의 내부 정보 유출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될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만약 정보 유출이 사실이라면 이는 상당히 엄중히 다뤄지는 실정법 위반이다.
유출된 정보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선 대통령 직무수행 과정에서 생성된 정보라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이 법 14조는 대통령 기록물은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겨 무단 유출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돼 있다. 유출된 정보가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더라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 성립된다. 이 법 제51조는 공공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 유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127조 공무상 비밀의 누설에도 해당한다.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돼 있다. 아울러 유출된 정보의 용처에 따라 정당법 위반(공무원 정치활동 금지), 형법상 증거인멸, 위증교사, 모해위증 등 여러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이들의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난 1월 갑작스레 중단됐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조계 관계자는 “진행되던 감찰이 중단되는 등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청와대가 이 사안을 다시 점검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특별감찰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보고라인은 옷벗고… 金실장은 침묵
어디까지 보고됐나… 남은 의혹들
정윤회씨와 그의 비선 라인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은 의문투성이다. 실무진의 인사 조치로 갑작스레 중단됐을 뿐 아니라 감찰 이후에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씨 등에 대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결과는 홍경식(63) 당시 민정수석과 김기춘(75)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파악됐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설의 진원지를 파악했던 감찰 보고서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보고됐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면 이는 상식적인 처사가 아니라는 게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정씨 감찰 보고서의 행방과 중단 배경, 사후 조치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통령 보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안의 청와대 보고 체계는 이렇다. 각 비서관실에서 보고서를 만들면 비서관이 수석에게 보고하고, 수석은 이를 비서실장에게 보고하도록 지시한다. 그러면 비서관은 비서실장을 만나 해당 내용을 보고하고, 비서실장은 대통령 보고를 지시한다. 이후 수석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해 해당 내용을 직접 보고한 뒤 지시를 받게 된다.
정씨에 대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동향 감찰 보고서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당시 조응천(52) 공직기강비서관은 경찰 출신 행정관 A경정 등이 보고서를 작성해 오자 이를 직속 상사인 홍 수석에게 보고했다. 이후 조 비서관은 홍 수석 보고를 마친 뒤 김 실장을 만나 대면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부터가 미스터리다. 감찰 보고서는 정씨 등이 청와대 내부 비서관 등을 동원해 김 실장 교체설 유포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도 이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졌다는 흔적은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찰 보고서 작성에 간여한 A행정관이 사실상 좌천성 인사 조치를 당하고 두 달여 뒤 감찰을 지시한 조 비서관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청와대를 그만뒀다. 이 때문에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보고서가 상부 보고 과정에서 유출돼 정씨 측으로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현재로선 감찰 보고서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 중 누군가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올 1월 무렵 ‘수석→대통령’ 절차를 거치는 보고 과정은 없었으며 김 실장이 대통령을 만나거나 이들 3인에게 보고서를 전달해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받는다는 것이 청와대 근무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과 A경정이 청와대를 떠난 뒤 이들이 속했던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됐고 공직자 감찰, 인사 검증 등 공직기강비서관실 업무 중 상당수가 민정비서관실로 이관됐다”며 “정씨 감찰 사건 이후 인적 청산은 물론이고 부서 기능까지 와해됐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정윤회의 ‘막강’ 영향력 문체부 ‘살얼음’
한겨레 보도 정씨 승마협회 영향력 행사…정부부처 국장급 회의 중 경고도
정윤회씨가 딸의 승마 전국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을 둘러싼 특혜 시비가 일자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승마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나왔다.
그동안 청와대와 정씨는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드러난 정씨의 인사개입설을 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보고서 내용을 부정해왔는데 실제 인사 개입 행위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한겨레는 3일자에서 다수의 승마협회 관계자 말을 인용, 딸 문제로 정씨의 부부가 승마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문체부는 지난해 4월부터 청와대의 지시로 지금껏 전례가 없던 승마협회 조사 감사에 직접 나섰다"고 보도했다.
문체부는 청와대 지시에 따라 승마협회 감사에 들어갔고, 조사 결과 정씨와 승마협회 쪽 모두 문제가 많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하지만 청와대는 승마협회를 조사한 노아무개 체육국장과 진아무개 체육정책과장의 좌천성 인사를 요구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담당 국장과 과장의 인사권자인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에게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인사 조처를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노 체육과장과 진 정책과장은 각각 중앙박물관 교류문화단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두 사람은 3일 오후 휴대전화를 모두 꺼 놓은 상태이다.
청와대가 지시하고 승마협회 감사가 이뤄졌는데 결과를 받아든 박 대통령이 조사 담당자인 문체부 간부들의 좌천을 요구했다는 것은 정씨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정윤회씨가 직접 박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했는지 아니면 정윤회씨가 이른바 3인방을 통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당시 승마협회 관련 감사 지시와 인사야말로 (정윤회씨가 국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에서 "정윤회씨 딸의 승마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특혜 의혹이 있는데 승마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검은손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과 접촉한 체육계 인사도 승마협회 감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A씨는 "승마협회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감사에 들어가는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다"며 "청와대에서 승마협회를 조사하라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특별한 게 없다고 보고를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왜 가리키는 손만 조사해 오느냐라고 해서 민정수석실에서 별도 지침이 떨어져 재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면서 "결국 조사를 맡은 간부와 청와대 쪽 사람 모두 '날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후 정부부처 국장급 회의에서 청와대 지시를 명확히 파악하라는 내용의 경고성 메시지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한 정부부처 장소에서 열린 국장급 회의 중 대통령이 지시한 사항을 확실히 해라, 그렇지 않으면 문체부 국장과 같은 일로 날아간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월 청와대로부터 면직통보를 받고 사퇴한 것을 두고도 인사 문제가 얽혀 있다는 분석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 내부에서는 청와대 때문에 유 전 장관이 산하기관장과 국실장 인사를 하지 못한다는 불멘소리도 흘러나왔다. 경향신문은 지난 7월 30일 "문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 실세가 연예인 출신 모씨를 산하기관장에 임명하라고 요청했을 때 유 전 장관은 '(그런 사람을 임명하면) 코미디입니다'라고 반박했다고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유 전 장관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가 반대에 부딪히면서 청와대 갈등설이 불거졌다.
2014년 12월 03일 (수)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박 대통령 ‘수첩 인사’부터 전대미문의 ‘권력 암투’까지
정국 강타한 ‘국정 개입 의혹’…과연 진실은 밝혀질까?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이 일주일째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보도가 나온 지난달 28일 이후 주요 신문들이 1면부터 5~6면(신문사에선 이를 종합면이라고 부릅니다)까지 이 이슈로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는 얘깁니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중앙일보>의 정윤회씨 인터뷰,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이어졌고, 급기야 <한겨레>가 지난 3일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 및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우선 많은 뉴스들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만 스무 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정씨가 국정에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통해 이번 파문의 전말을 A부터 Z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 2탄과 3탄을 이어가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이 기사 url만 가지고 계시면 업데이트된 요약정리를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시작합니다. 꽉 잡으세요.
파문의 배경 ‘수첩 인사’
우선 파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부터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에서 시작했습니다. ‘나홀로 인사’, ‘불통 인사’, ‘밀봉 인사’, ‘수첩 인사’라는 수식어는 늘 뒤를 따라다녔지요. 2012년 12월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조차 모르게 ‘깜짝 발표’한 인사 1호가 바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었습니다. 새 정부 첫 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는 병역, 부동산 논란으로 청문회도 가보지 못하고 지명 5일 만에 전격 사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뒤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며 2기 내각을 바꿨을 때는 ‘인사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가 고액수임료 수수 문제로 물러난 데 이어, ‘깜짝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친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더불어 제자논문 대필 논란의 교육부 장관 후보, 음주운전에 사생활 문제를 빚은 문화부 장관 후보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사람들만 골라오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엔 대체 무엇이 씌어 있나?’ ‘인사’ 권한은 정치인들에겐 ‘예산’과 더불어 초미의 관심사인데요,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불통 인사’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져 갔습니다.
청와대에 인사 검증시스템이 있기는 한 것이냐는 비판도 커졌습니다. 인사 참사를 책임질 배후로는 두 곳이 지적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통령을 바로 곁에서 보좌하는 책임을 맡은 김기춘 비서실장입니다. 다른 한 축은 최근 언론에 부쩍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으로, 박 대통령의 의원시절부터의 오랜 보좌진들입니다.
▷ 관련 기사 : 인수위원을 “형”이라 부르고 의원들이 먼저 다가가 인사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는 이 ‘문고리 3인방’의 움직임을 담은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입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했습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회사로 치면 ‘감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등 측근 관리를 비롯해, 부처 공무원을 감찰하는 등 정권에 악재가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검토하는 일을 했습니다. 공직 후보자의 인사 검증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몫입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는 이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보좌진 그룹 10여 명을 ‘십상시’라고 일컬으며 이들이 실세라고 지목했습니다.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정윤회 씨를 비롯한 외부 인물에게 전달했다는 내용,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정윤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을 찌라시에 흘리는 등으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세계일보 기사 바로가기).
무엇보다 이 보도의 의미는, 세간에 ‘비선 실세’라는 소문이 퍼져 있던 정윤회 씨가 직접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청와대의 공식 문서를 통해 사실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의혹이 그저 사실 여부 판단이 힘든 사람들의 ‘말’로 전해진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문서를 통해 청와대에 공식 보고까지 된 사실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이전의 의혹 단계보다 훨씬 커진 셈입니다. 언론이 <세계일보>의 보도 이후 각종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건 우선 그런 까닭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말보다 공식 문서를 신뢰합니다. 언론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편중된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공식 문서는 작성한 내용이 거짓일 경우 제도적인 책임을 묻게 됩니다. 사실 관계 검증이 더 철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고리 3인방은 누구인가
3인방은 모두 대통령 비서실에 소속된 비서관들인데요.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공식 입문한 이후 줄곧 측근에서 보좌해 온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입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맏형 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인사와 살림살이(재무)를 총괄합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원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최근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한 인사 청탁 사건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개인정보유출에 관여했던 사람도 이재만 비서관 지휘 아래 있는 총무비서관실 소속의 행정관이어서 논란이 된 바 있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 채동욱 ‘혼외 의심 아들’ 정보 유출 개입
정호성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이 각각 소속된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일정 부서입니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은 정무 전반과 대통령의 일정, 보고서를 전담합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려면 우선 정호성 비서관을 거쳐야 합니다.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수행과 경호를 책임집니다. 잦은 민원을 넣으려 드는 사람들을 차단하는 역할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접촉하려면 이 3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해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겁니다.
3인방을 거치지 않고서는 ‘비서실 민정수석조차 대통령을 독대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입니다. 지난해 8월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터졌을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인사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허태열 전 실장과 보좌진 그룹이 나뉘면서 두 그룹 간 마찰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허태열 전 실장과 3인방과의 알력으로도 추측되는 부분입니다.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새로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와 균형을 맞췄다는 평을 듣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관련 조선 뉴스프레스 기사
그런데 <세계일보>의 보도를 보면, ‘3인방’이 직책상으로 상사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을 꾀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구상에 ‘외부 세력’이자 민간인인 정윤회씨가 개입돼 있다는 것입니다. 정씨는 1998년 당시 박근혜 의원의 개인비서실장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3인방을 비롯한 보좌진 체계를 잡은 뒤 2007년 공식적인 직책에서는 물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동향 (파악 차원에서) 보고받았던 것”이라며 보고서에 거론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습니다. 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의 첫 반응은 위에서 말씀드린 ‘공식 문서 신뢰성’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 문서의 내용보다 청와대 공식 문서가 유출된 것에 더 초점을 두는 식으로 프레임 전환을 꾀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중앙일보>는 청와대가 첫 반응을 내놓은 이튿날인 12월 1일, <세계일보>에서 ‘비선에서 국정을 뒤흔든 인물’로 보도된 정윤회씨의 반박 인터뷰를 보도하며 청와대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정씨는 “7년간 야인으로 살며 3명의 비서관과 연락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연락이 없으니 되레 비서관 3명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했지만 이해한다”며 <세계일보>의 보도를 정면 반박했습니다. 연락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만난 적이 없고,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김 비서실장 경질설을 퍼뜨린 일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정씨의 육성으로 공식 문서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세계일보> 보도가 가진 파장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김진 정치전문기자가 칼럼까지 쓰면서 청와대와 정윤회 씨의 처지를 대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흘 만에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문이 이는 사안에 이렇게 빨리 나서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은 루머이며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세계일보>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프레임을 청와대 문건 유출에 맞췄습니다. 비서관 3인방에 대한 ‘무한 신뢰’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후속 보도가 없었다면, 한동안 이 프레임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의 반격
반전은 <조선일보>에서 터져나왔습니다. 12월 1일까지의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문건 유출 책임론 프레임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2월 2일자 ‘정윤회, 지난 4월 이재만과 연락했다’는 제목으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정윤회 씨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직속 선임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첩보가 맞을 가능성은 6할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내용을 지난 2월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구두 보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외부세력과 연계해 비서실장을 음해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를 한 2달 뒤인 지난 4월 10일께 정윤회 씨가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고 합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를 무시하자 다음날에는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며 정씨를 대변하는 말을 전했다는 겁니다.
▷ 관련 기사 : 조응천, 정윤회 정면 반박…“이재만과 4월에도 연락”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7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정씨의 말과 달리 3인방이 정윤회씨와 꾸준히 연락해 왔다는 정황을 드러냈습니다. 또 해당 문건 유출은 조응천 전 비서관 자신의 수하였던 박관천 경정이 아닌 3인방과 관련이 있다는 암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문제의 ‘감찰 보고서’는 찌라시성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가진 보고서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실제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 유출에 대해서는 "관리 책임자로서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문건 유출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직접 부정한 셈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인사 검증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습니다. 검증 임무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해야할 일인데 “어떤 때는 한창 검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 참사’의 책임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3인방에게 있다는 논리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 씨의 전화를 받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중순 경질됐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보고한 뒤 이뤄진 보복성 인사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일개 비서관 출신으로 어떻게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 주류 권력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배경은 이번 파문이 계속 이어지면서 차츰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입니다.
줄줄이 좌천된 ‘박지만 회장 측근’들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으로 박지만 EG 회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 출신으로, 과거 박지만 회장의 마약수사 검사로 인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이 친인척 쪽에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불만을 품은 박지만 회장이 공직기강비서관을 움직여 ‘정윤회 계파’에 대한 저격에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박지만 회장이 측근인 조응천 전 비서관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위험성을 알려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섭하고, ‘정윤회 계파’를 저격하면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히려 이 보고를 ‘청와대를 흔들려는 시도’라고 판단하면서 묵살했고, 오히려 3인방을 공격한 박지만 회장 쪽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역풍을 맞고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윤회 계파’와 ‘박지만 회장 계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처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실제로 최근 박지만 회장 쪽 사람들은 줄줄이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났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 외에도, 박지만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이 지난 5월 옷을 벗었습니다. 청와대 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지난 8월 조응천 전 비서관과 가깝다고 알려진 고위급 인사가 발령 직후 청와대의 요구로 ‘자진 퇴임’하는 형태로 물러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기무사에서는 지난 10월 박지만 회장과 육사 37기 동기인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경질됐습니다. 당시엔 배경이 궁금했던 인사 이유가 뒤늦게 추정이나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일련의 인사 흐름을 아래 표로 정리해봤습니다
정윤회 파와 박지만 파의 싸움인가
그러자 박지만 회장 쪽이 이번에는 여론을 활용해 반격을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평소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은 ‘정윤회’나 ‘십상시’ 등의 단어를 포함한 문건을 유출해 3인방에게 타격을 줌으로써, 권력 싸움에서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밀려나고 있는 사태의 반전을 꾀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널리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파문이 정윤회 쪽과 박지만 쪽의 ‘국정 장악 파워 게임’으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사태의 엄중함과 별개로, 한숨도 나옵니다.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힘겨루기라뇨.
하지만 이 사태를 단순한 힘겨루기로 폄훼하며 외면해선 안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정윤회 씨가 됐든 박지만 회장이 됐든, 국정에 개입해 각종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정윤회 씨나 박지만 회장처럼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사람은 의회나 시민들의 감시를 받을 의무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국정을 휘저었다’고 해도 법적 처벌이 애매합니다. 즉, 대통령까지 움직이는 국정 농단 사건이 벌어지면서 행정부가 흔들려도, 삼권 분립의 핵심인 의회 권력과 사법 권력이 어떻게 제어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시민들이 끝까지 비판의 눈초리를 비끼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이윱니다.
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2탄에서는 정윤회 씨 부부가 실제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한 <한겨레> 보도와 그 이후 보도들을 정리하는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이어가겠습니다. 2탄도 기대해주세요.
정유경 기자 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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