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스크랍

ㆍ경찰의 희생자 가족 ‘사찰’

아지빠 2014. 5. 21. 09:18

 

사고 이후 단원고·분향소에 ‘정보 경찰’ 총 801명 투입

 

 

ㆍ경찰의 희생자 가족 ‘사찰’

경찰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몰래 따라가다 들켰다. 사고 초기에 어이없고 무능한 정부의 구조작전으로 충격을 받은 유가족이 마치 범죄자 정보 수집하듯 자신들의 뒤를 미행하고 동향을 캐온 경찰에게 다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경찰이 피해자를 돕기는커녕 반인권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치안이나 수사 목적이 아니어서 불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찰의 유가족 정탐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정보담당 경찰 간부가 희생자 가족들에게 붙잡혔다. 당시 진도 실내체육관에서는 가족들이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대책본부 발표 내용도 거짓”이라며 “청와대로 가서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자”고 결정했다. 이 간부는 체육관 바깥에서 누군가와 “왜 가족들 청와대로 가는 거 보고 안 했어”라며 통화를 하다가 가족들에게 들켜 승강이를 벌였다. 다른 정보 경찰관은 가족회의에 몰래 들어갔다가 발각돼 쫓겨났다.

19일 밤에는 안산 단원경찰서 소속 정보 경찰관들이 가족들을 미행하다 발각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러 가던 유족들을 차로 쫓아가다 들키자 이들은 경찰임을 부인했다. 가족들은 “우리를 범죄인 취급하는 것인가” “대통령이 사과한 지 24시간도 안 지나 이런 짓을 벌이나”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유가족 대책위 관계자는 20일 “아이들을 억울하게 잃은 부모들을 범죄자로 몰고 있다”면서 “경찰들의 미행은 처음이 아니다.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뒤에서 대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고 밝혔다. 경기지방경찰청장과 안산 단원경찰서장은 이날 직접 분향소로 찾아가 “교통 편의 등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며 “불법은 아니지만, 동의 없이 숨어서 한 것은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숨어서 따라다니는 게 불법 사찰이 아니고 뭐냐”고 따졌다.

희생자 가족들은 경찰의 정보 수집 활동을 사실상 ‘사찰’이라고 보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교통·경비 인력을 제외하고 정보 경찰을 가장 많이 투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실이 이날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16일부터 이날까지 안산 단원고와 합동분향소에 모두 801명(누적인원)의 정보 경찰이 투입됐다. 사고 초기에는 하루에 20명 수준이었으나 지난 2일쯤부터는 30명 가까이로 늘렸다. 단원서와 경기경찰청에다 경찰청 소속 정보 경찰까지 투입됐다. 진도인원까지 합하면 정보 경찰만 모두 1700여명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이 같은 정보 수집 행태는 정권 보위를 위한 첨병 역할에 더 치중해온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높다. 경찰은 다양한 사건·사고 현장에 파견돼 정보를 수집해왔다. 정보 경찰이 상부에 보고서를 내면 정부로 전달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정보 업무는 그동안 정권이 우려하거나 싫어하는 반체제인사 미행 등 사찰에 이용돼 왔다. 이는 ‘법률상 치안이나 수사를 위한 정보 수집’이라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정보 업무와도 거리가 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몰래 동향을 파악하려 했다는 것은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사무차장은 “피해 가족들에게 도움은커녕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라며 “경찰이 정권 보위를 위한 ‘흥신소’가 된 꼴”이라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난 경찰 아니다” 유가족앞 초라한 경찰

20일 오전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최동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유가족들에게 ‘사복경찰들이 진도로 내려가던 유족을 미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경찰 아니라는데 왜 자꾸 물어봐요. 당신 정말 유가족 맞아요?”

19일 오후 7시경 전북 고창 고인돌휴게소.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경찰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한 입장 표명에 앞서 실종자 가족들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안산에서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그때 안산단원서 정보보안과 직원 2명이 뒤따르다가 얼굴을 알아본 유족들에게 들켰다. 이들은 유족들이 “경찰 아니냐?”고 묻자 처음에는 “아니다”라고 발뺌하다가 30여 분이 지나서 신분을 밝히고 사과했다. 이에 분노한 일부 유족은 진도행을 포기하고, 차를 돌려 안산 합동분향소로 돌아왔다. 그러곤 이날 밤 12시, 대기하던 유족 50여 명과 함께 ‘경찰의 사찰 의혹’에 대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모였다. 분향소 앞에는 해당 경찰 2명과 담당 정보보안과장, 구장회 안산단원경찰서장, 최동해 경기지방경찰청장까지 모습을 보였다.

“불법 사찰이 맞나, 아닌가”(유족). “아닙니다. 유족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돕기 위해 갔던 겁니다.”(정보관) “처음에 왜 경찰이 아니라고 했나?”(유족) “그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했습니다. 신분을 밝히면 유족들이 너무 격앙하실 것 같아서….”(정보관) “정말 그런 내용들뿐이었다면 관련된 정보보고 내용을 공개해 달라.”(유족) “그건 어렵습니다. 국회에서도 공개하지 않습니다.”(단원경찰서장)

유족 측은 경찰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끝에 해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경찰은 그제야 “정보활동을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구 서장은 “잘못을 충분히 인정한다”며 여섯 차례 고개를 숙였고, 최 청장은 “앞으로는 반드시 유족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정보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유족은 욕설과 고함을 질렀지만 특별한 돌출행동은 없었다. 유족들은 경찰 간부들을 만나기 전 내부적으로 “폭력은 절대 사용하지 말자. 일단 해명을 듣고 한 명씩 손을 들고 침착하게 말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반면 “우린 경찰이 아니다”라며 거짓말을 하다가 지방경찰청장까지 줄줄이 사과하는 경찰의 모습은 슬픔을 삼키며 의연함을 보여준 유족과는 극과 극이었다. 한 달 넘게 단원고와 분향소 일대의 치안유지와 교통안내, 정보파악 등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유족들과의 긴밀한 협조라인조차 만들지 못한 경찰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홍정수·사회부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