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조선의 창공이 원혼의 피눈물로 물들어
잿빛 같은 암흑을 드리우고 온생명의 분노가 열화같이 치솟아 암흑의 장막을 불태울 때
원망조차 잊어버린 순결한 여린 혼령들은 신단수의 하늘에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 .홍익인간의 천부인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다.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세월호 참사 이후 '조용한 혁명' 시작된다
"이 사건은 해경에 의한 '집단 학살' 사건이다. 대통령을 끌어내려 법정에 세워야 한다."
노동절인 5월 1일, 한밤중에 제게 날아온 문자 메시지입니다. 한 선배 교수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자신의 선배가 보낸 문자라며, 제게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문자를 보고 나니, 세월호 참사는 정부와 사회가 안전을 소홀히 여겨 발생한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한가하다고 느껴집니다. 일부 정치인과 관료와 기업인들의 무능과 탐욕에 따른 비극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진부하다고 느껴집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자행한 '집단 학살'입니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의 나라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나라에서, 국민 행복과 안전을 중시한다는 나라에서, 미래와 과학과 창조를 강조한다는 나라에서, 한류를 뽐내며 문화 강국임을 자부한다는 나라에서, 대학 진학률이 무려 80%가 넘는다는 나라에서 목도한 '야만'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러한 생각이 점점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것이 국가냐, 나라냐, 정부냐'라는 국민의 한 서린 절규는 이미 그것을 간파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집단 학살'이라는 규정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집단 학살'이란 어떤 집단의 멸종을 목적으로 한 대량 살육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 같은 것 말입니다. 특정한 집단 전부 혹은 그 일부를 파괴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저지른 살해여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는 그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집단 학살'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반론에 단지 '메타포'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비추어 보면, 그저 하나의 메타포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치의 '실천-책임·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집단 학살'이 맞습니다. 정치는 국가 정책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행위입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의도성을 띤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우선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하지 않은 것 역시 의도성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동기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정치에서 의도의 있고 없음은 결과에 근거해 판정합니다. 전두환이 광주 시민을 학살할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는 '학살자'입니다.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저항했습니다. 전두환은 광주에 군대를 보내 시민들을 학살하였습니다. 학살보다는 진압이 목적이었다고 할지 모릅니다. 총칼을 들이대면 시민들이 순응할 것이라고, 침묵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할지 모릅니다. 전두환은 인간과 시민에 대해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인간과 시민은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부당함에 저항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오판이 가져온 결과가 바로 학살이었습니다. 오판도 의도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쿠데타를 일으킨 자의 오판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오판하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키지도, 성공시키지도 못할 테니까요. 즉 전두환의 오판은 쿠데타에 필요했던 것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쿠데타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학살을 가져온 오판은 이미 쿠데타에 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쿠데타의 의도와 학살의 의도는 각기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과적을 승인해주고 사고 직후 팽목항을 방문한 해양수산부 장관인지 안전행정부 장관인지의 의전을 위해 잠수사 투입을 지연시킨 해경, 세월호가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는 민원을 무시한 정부 기관, 침몰 위험이 있는 배를 안전하다고 심사한 한국선급, 한국선급과 유착 관계를 맺고 선박 안전 심사 독점을 묵인한 해수부 관료와 공무원들, 재난·재해 대처에 전문성도 없고 무능하기까지 한 국무총리 이하 행정가들로 대책본부를 꾸린 대통령과 정부.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어찌 그리 쏙쏙 골라 했나 싶습니다. 마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기 위한 매뉴얼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럴 정도이니 과연 의도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의도성이 없었으니 학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구조 작업이 가장 긴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착이 부패인 것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칠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의 행정가가 아닌 재난·재해 대책 및 구조 전문가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정반대 선택을 했다면 '다른 목적', 즉 헌법에 명기되어 있는 책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닌 출세와 돈과 치적 쌓기와 시간과 상황 때우기를 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결과로 나타날- 학살의 의도성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것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수백 명의 학생이 죽거나 실종되었으니 집단 학살입니다. 위험성을 알고도 과적은 물론, 침몰 당시 승객 구조가 아니라 과적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했던 청해진해운 역시 마찬가지로 '집단 학살자'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집단 학살'이라고 규정하면, 청와대나 새누리당 등은 종북주의 좌파 세력이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을 획책하고 선동하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짚고 넘어가자면, 저는 사회 불안을 조장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을 획책하고 선동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전 이미 수십 년 전에 카뮈가 1946년 <콩바>에 실었던 '왜곡된 혁명'이라는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오늘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는 혁명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카뮈는 "한 정부의 탄압 장치는 탱크와 전투기의 무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런 정부에 맞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고만 해도 탱크와 전투기가 필요할 것이다. 1789년과 1917년은 여전히 중요한 사건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카뮈는 또 "혁명은 오늘날 전쟁이라는 극단적 위험을 수반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 카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014년인 지금은 1946년 그때보다도 카뮈의 말이 더욱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혁명을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국가가 생때같은 아이들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바닷속에 가라앉아 죽게 만든 것을 본 부모의 심정을 떠올리면 그러합니다. 하지만 카뮈의 또 다른 말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심에서 우러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집단 학살'이라는 것도 분명한 생각이지만,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분명한 생각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집단 학살'이라고 해도 광주항쟁과 같은 식의 저항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다시금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 같은 노골적인 야만 세력이 저항의 모든 통로를 차단했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짜 할지도, 진짜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용어의 선택과 표현도 참 고루하지만 -'국가 개조'와 그것을 위한 '적폐 도려내기'의 칼은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뭘 한 것도 없이 지방선거에서 '안전 대 불안'으로 프레임을 짜야 한다는 식의 소리나 새어나오게 하는 제1야당은 여전히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4월 5주차 여론조사 결과, 세월호 참사 직전 60%를 넘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8%로 떨어졌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24% 정도에 불과합니다. 무당파층만 2주 사이에 10%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안전 대 불안' 구도가 형성되려면 자신이 안전 세력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법정에 서게 해야 한다는 분도 계시고,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정당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 서게끔 하는 것도, 퇴진시키는 것도 모두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운동이 잘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안(정당 혹은 정치세력)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건설적 불신임(퇴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독재 정권 퇴진을 위한 민주화 운동이 가능했던 것도 민주 정부 수립의 주체로서 야당과 야당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족 등 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상처 받은 국민들에 대한 치유,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 개각과 청와대의 참모진 교체, 대형 참사 예방과 대처를 위한 정책과 법제 마련, '해수부 마피아'뿐만 아니라 '원전 마피아' 등의 해체를 포함한 범사회적 차원의 지속적인 정부 쇄신 추진이 가장 시급하게 표방되어야 할 목표이자 과제일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사회적 숙의와 실천의 대오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비롯한 국민적 공감 속에 '뭐라도 하자'며 이미 만들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정치가 사회의 대안적 실천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지금의 정치권을 갖고는 정치를 통한 대한민국 혁신의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그러합니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극에 달해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치는 (기존 정치인들의)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가진 세력으로) 세력을 바꿔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직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68혁명'을 전후로 한 가치관의 변동과 그것에 따른 사회 변화, 특히 반전과 반폭력, 인권, 생명과 안전, 환경 등과 같은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선호의 부각 -그것에 바탕을 둔 국가와 정치와 관료(제) 개혁 운동 등의 사회적 실천의 확산-을 두고 잉글하트라는 정당학자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칭한 바 있습니다. 카뮈가 말한 바와 같이 전쟁과 같은 폭력을 동반하는 전통적 개념의 혁명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68혁명'을 가능케 했던 사회 기저의 '조용한 혁명'은 대한민국에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아니, 가능케 만들어야 합니다. 너무나 뼈아픈 고통으로 삶을 지속할 의지도 힘도 갖기 어렵지만, '집단 학살'에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 이후 '조용한 혁명'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68혁명'을 함께 꿈꾸고 도모해갔으면 합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5.04 15:30:13 | 최종수정 2014.05.04 15: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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