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원고지 28장 ‘깨알 지시’… 사과는 없었다
ㆍ“선장 먼저 대피, 용납 못 할 살인 같은 행위”ㆍ15분 동안 읽고 수석들은 받아쓰기 ‘되풀이’
ㆍ국무총리 포함 당정청 대폭 물갈이 가능성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침몰사고를 놓고 위기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데 대해 여과없이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내각 개편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사고 대응과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난맥상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후 처음 주재한 회의다. 박 대통령은 시종 굳은 표정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사고 전반을 짚었다. 모두발언은 200자 원고지 28장 분량으로 읽는 데만 15분이 걸렸다. 참모들은 여느 때처럼 수첩에 받아쓰기에 바빴다. 이어 진행된 비공개회의에서도 1시간30분 동안 이번 사고만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특별 수석비서관회의’라고 말했다.
참사 후 첫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과 수습 과정에 책임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공무원들을 질책하고 조속한 대책을 주문하는 등 ‘깨알 지시’는 내렸지만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사과는 내놓지 않았다. 실종자·사망자 가족에 대한 위로와 애도만 있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주목되는 것은 책임 소재 규명과 함께 관련자 문책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강력히 책임을 묻겠다”는 표현을 썼다. 허술한 사고 초동대응, 부처 간 혼선 등 세계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이번 사고를 놓고 대대적인 문책 인사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가 안전 불감증과 무능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인재(人災)와 관재(官災)라는 사실이 점차 확연해지면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실종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에 지금 여러분들과 얘기한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가족들이 이 대목에서 가장 크게 박수를 쳤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침몰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는 대로 박 대통령이 관련 부처 장관을 교체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국무총리도 포함시켜 대폭적 개각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동안 교체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현오석 경제팀’까지 포함된다면 ‘제2기 내각’을 꾸리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개각은 성난 민심을 달래고 야당 공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6·4 지방선거 전에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인사청문회를 여는 게 부담스럽다면 선거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
분위기 쇄신용 개각일 경우 청와대 비서진 개편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새누리당에선 7월14일 당 대표를 뽑기로 예정된 만큼 박근혜 정부 출범 1년6개월도 안돼 당·정·청 진용을 새롭게 짜는 셈이 된다. 여객선 사고가 ‘여권 1기’를 침몰시키고 개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지 주목된다.
(사)
<안홍욱 기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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