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 동네에 유서깊은 5개 성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설맞이 차례상 마련에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 남구 용호동은 김녕 김씨, 파평 윤씨, 개성 왕씨, 담양 전씨, 밀성 박씨가 각각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흔치 않은 동네이다. 설을 사흘 앞둔 26일 이곳 5개 성씨 후손들은 마치 설이 내일로 다가온 듯 분주했다.
파평 윤씨 32대손 며느리 김석금(63)씨는 제기를 닦고 또 닦았다. 제기는 김씨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이 났지만 김씨는 손놀림을 그치지 않는다. "놋그릇은 잘 닦였는지 표시가 나는데 나무제기는 원래 광택이 있으니까 제대로 닦였는지 잘 모르잖아. 제사 준비는 정성이니까 계속 닦는 거야." 김씨는 차례를 준비하는 정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조상님께 올리는 예는 개성 왕씨 33대손 왕필석(69)씨도 뒤지지 않는다. 왕씨는 이날 문중 선산인 장자산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쳐내고 묘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내려왔다. 왕씨는 매일 오전 5시면 선산을 찾는다. 덕분에 개성 왕씨 선조 24위의 묘는 항상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개성 왕씨 선산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곳에 선산이 있는 파평 윤씨 문중도 이날 선산을 다듬었다. 벌초기계도 많지만 조상님 묘는 항상 손으로 다듬는다.
개성 왕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조선왕조가 세워진 1392년 무렵이다. 지금 63세대가 살고 있는 개성 왕씨 동래파의 시조는 머슴의 등에 업혀 이곳까지 숨어들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비해 300여년 전 집성촌을 이룬 파평 윤씨는 현재 400여세대에 이른다. 이와 함께 뿌리를 내린 지 13대째인 김녕 김씨는 70여세대, 300여년 전 터 잡은 담양 전씨는 53세대, 280여년 된 밀성 박씨는 80여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왕필석씨는 "부산의 끝인 이곳은 다른 곳과 격리된 느낌이 강하다"며 이처럼 5개 성씨의 집성촌이 어울려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왕씨는 "집성촌 이웃들과는 나이에 관계 없이 종중에서의 지위를 존중해 준다"며 "예전 마을 운동회에서는 항상 용호동 출신들이 우승을 도맡아 할 정도로 단결력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설을 맞는 '뼈대있는 가문'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용호동 입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주변 상권이 재편됐고 주민들의 생활 패턴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인근 대학들의 영향으로 청년층 유입이 늘어나 용호동은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는 상점과 시설이 많이 들어서 '용포동(용호동과 남포동을 섞은 조어)'이 된 지 오래다. 파평 윤씨 32대손인 윤명학(53)씨는 "우리끼리 살자는 건 아니지만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진 후 이웃간의 따뜻한 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성촌 후손들은 조상을 기리고 정성껏 모시는 과거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만큼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왕정문(60)씨는 "지역 학생들을 위해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며 "지역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데도 각 문중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수진기자 sujins@kookje.co.kr
[굿모닝] 도심 5개姓 집성촌 설준비 "가문의 경쟁" 부산 남구 용호동 거주 파평윤씨·개성왕씨 등 "성묘하고 음식 장만 간소하지만 정성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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