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포토이야기

기자는 6G서 4초만에 기절…전투조종사들의 세계

아지빠 2022. 6. 22. 09:33

기자는 6G서 4초만에 기절…전투조종사들의 세계

전투기가 급선회하면서 지구 중력가속도(G)의 몇 배가 되는 힘이 사람에게 가해지면 피가 다리로 쏠리고, 머리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정신을 잃게 된다. L1 호흡법이라 불리는, 하반신에 힘을 주고 "윽" 하는 소리를 내며 성문(聲門)을 닫아 피가 다리로 쏠리는 것을 막는 호흡법을 배울 때만 해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공군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선 6G에서 20초를 버텨야 한다. 기계에 들어가 훈련을 시작하자, 1G(표준 중력가속도)에서 0.1G씩 가속도가 더해지기 시작해 4G까지 올랐다. L1 호흡법에 따라 힘을 주고 호흡했지만 시야가 점점 좁아졌는데, 기계가 다시 천천히 멈추고 잠깐 휴식을 취하자 괜찮아졌다.

(이미지-01)

공군 제공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0.1G씩 올라가 4G까지 체험하는 '워밍업'이 끝나자 중력가속도가 6G까지 상승했다. 분명 연습했던 L1 호흡법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야가 어두워지더니(그레이 아웃) 눈앞이 깜깜해지고(블랙 아웃) 잠시 뒤 놀이동산의 '다람쥐통'을 탄 것처럼 기계 안에서 몸이 뒤집혀 있는 느낌과 함께 버둥거리다 정신이 돌아왔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기자는 6G까지 중력가속도가 가해지고 4.3초만에 정신을 잃고 조종간을 놓았다. 이를 G-LOC이라 한다. 브리핑 때 공군 관계자가 "훈련을 받기 위해 오는 공군사관학교 생도들도 50~70% 정도만 합격한다"고 귀띔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지난 16일 충북 청주의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를 찾아 비행환경적응훈련에 직접 입과, 공군 조종사들이 실제로 받는 훈련 과정 가운데 4가지를 직접 체험했다.

탈출손잡이 당기자 위로 몸 솟구쳤다…현역 조종사도 3년에 한 번씩 훈련

(이미지-02)

공군 제공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날아다니는 일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다. 공군 조종사들은 바로 이를 위해 가혹한 훈련을 거친다. 특히 회피기동이나 급강하 폭격 등의 임무를 기관포탄과 미사일이 빗발치는 가운데 수행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은 임무 수행 내내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강인한 체력을 단련하면서도 지상에서부터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다.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는 비상탈출, 공간정위 상실, 가속도 내성강화, 고공 저압환경 등 다양한 환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미국에서 관련 장비를 수입했다.

이 장비들을 통해 스크린과 기계를 통해 재현된 실제 전투기와 비슷한 환경에서 극한의 상황을 체험하고, 또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현역 조종사들도 이 훈련을 3년마다 빠짐없이 받아야 한다.

준비된 비행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하고 혈압을 잰 뒤 비상탈출 훈련부터 시작했다. 비상탈출은 문자 그대로 전투기가 조종 불능에 빠졌을 때 탈출하기 위해 받는 훈련이다. 탈출 손잡이를 당기면 캐노피(덮개)가 날아가고 좌석은 전투기 위로 튀어나와 자동으로 낙하산을 펼치는데, 이 때 올바른 자세를 숙달하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다.

(이미지-03)

비상탈출 훈련을 위해 기계에 앉아 있는 기자. 공군 제공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며 조종간을 잠깐 조작하자 화면에 'EJECT(탈출)' 문자가 떴다. 그런데 자세를 잡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간신히 좌석에 몸을 딱 붙이고 자세를 잡은 뒤 탈출손잡이를 당기자 몸이 솟구쳐 올랐다. 모 놀이동산에 있는 '자이로드롭'과 비슷하지만 정확히 반대 방향인데, 당연히 놀이기구보다는 더 거칠었다.

좌석에 목을 딱 붙이고 턱을 일정한 각도로 유지해야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아주 강한 힘으로 몸이 위로 솟구치는 만큼, 자세를 잘못 잡았다간 목이 부러지기 때문이다.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너무 고도가 낮으면 낙하산이 펴질 시간이 없거나, 펴지더라도 낙하 속도가 충분히 느려지지 못해 지면에 충돌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도 속이는 인간 감각…비행착각 극복 위해 계기비행 배운다

(이미지-04)

공군 제공

공간정위 상실 훈련기구는 놀이동산에 있는 이른바 '4D 체험' 놀이기구처럼 생겼다. 원리는 대강 비슷하긴 한데, 내용은 전혀 다르다. 사람의 감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하지 않다. 이 기계는 다양한 환경에 따라 공군 조종사들이 실제로 겪을 수 있는 비행착각을 재현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10도 정도 상승각으로 지면에서 떠오른다면, 안에 타고 있는 조종사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가속도 때문에 그보다 더 큰 각도로 떠오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운용자가 "지금 각도가 몇 도 정도라고 느끼시나요?"라고 묻기에 "30~45도 정도?"라고 답했는데, 실제로는 10도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황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낮이냐 밤이냐, 땅 위의 하늘이냐 바다 위의 하늘이냐 등에 따라 자신의 감각을 착각하곤 한다. '비행' 중 운용자 지시대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치 비행기가 왼쪽으로 살짝 틀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운용자는 "계기를 보시면 지금 수평으로 비행하고 있다는 점을 아실 수 있습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정말이었다.

이를 극복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계기비행(IFR)이다. 감각은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조종사들은 자신의 감각이 아니라 계기판만을 믿고 비행하는 법을 배운다. 이밖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을 돌려 양옆을 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직접 체험해 봤다.

고도 7.62km 저산소 환경, 구구단이 생각 안 난다…아찔한 저압실 체험

(이미지-05)

공군 제공

마지막으로 체험한 곳은 저압실 훈련이다.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기압이 내려가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몸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해 지상에서도 기압이 내려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직접 체험하고 적응하는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감압증은 이른바 '잠수병'과 증상이 거의 같은데,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압력이 높은 물 속에서 지상의 정상 기압으로 돌아오느냐, 지상의 정상 기압에서 압력이 낮은 공중으로 가느냐 정도다. 외부 기압이 갑자기 감소하면 혈액이나 신체 조직에 기포가 만들어지는데, 이 때문에 관절과 근육에 통증을 느끼고 호흡곤란, 가슴통증 등을 겪게 된다.

훈련용 '비행기'에 들어간 취재진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먼저 100% 산소를 15분 동안 들이마셨다. 이렇게 하면 평소 몸 안에 1200cc 정도 있는 질소 가운데 약 250cc가 제거된다. 물론 치명적인 감압증을 잠시 막아 준다는 얘기지 저압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완벽하게 예방하지는 못한다.

(이미지-06)

공군 제공

취재진을 태운 '비행기'는 고도를 올려 2만 5천 피트(약 7.62km)에 도달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보다 1km 정도 낮은 높이다. 고공에서는 기압이 낮아져 산소가 부족하게 되고, 그러면 심박수가 올라간다. 산소 100%를 들이마실 때 97~100를 기록하던 혈중산소포화도(SpO2)는 70까지 떨어졌다. 운용자의 지시에 따라 산소 마스크를 벗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옆에 앉은 모 당국자는 악필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그가 '저산소성 저산소증'이라는 글씨를 쓰는 걸 보니 그야말로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했다. 기자는 구구단 9단을 종이에 쓰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9X4'의 답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숫자 앞뒤를 바꿔 '4X9'를 생각하자 그제서야 답이 떠올랐다. '9X5'에서도 '45'가 생각이 나지 않아 '5X9'로 뒤집자 답이 겨우 생각났다. 게다가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도 답답했다.

다시 산소를 들이마시자 몸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자가 '승객'이어서 망정이지, 조종사로서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니 아찔했다. 조종사를 비롯한 공중근무자들이 도대체 어떤 고생을 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지 그야말로 몸으로 알 수 있었던 하루였다.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장 서정민 중령은 "고도가 높아지면 발생할 수 있는 저산소증, 빠른 속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생기는 몸의 변화 등으로 인해 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그런 것들을 체험하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런 훈련들을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