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긴 목, 높은 곳 나뭇잎 먹으려고? 아니다, 짝짓기 때문이다
등록 :2022-06-03 10:29수정 :2022-06-03 16:04조홍섭 기자 사진
중국 신장서 1억7천만년 전 기린 화석 발견, 머리에 헬멧 형태 큰 뿔과 굵은 경추
수컷끼리 철퇴처럼 머리 휘둘러 짝짓기 싸움…높은 먹이 확보는 부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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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린 조상이 커다란 뿔로 박치기하며 겨루는 상상도. 왕유, 궈샤오콩 제공.
기린은 경쟁자 초식동물을 멀찍이 따돌리고 4∼5m 높이의 부드러운 나뭇잎을 뜯어먹는다. 지상에서 가장 긴 2m가 훌쩍 넘는 기린의 목이 진화한 것은 이처럼 먹이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찰스 다윈 이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긴 목이 먹이 경쟁이 아닌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끼리의 싸움 과정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선사시대 기린의 화석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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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긴 목은 높은 나뭇잎을 확보하기보다 수컷끼리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열전에 돌입하기 직전 수컷 기린이 긴 목을 맞대고 있다. 루카 갈루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왕 시치 중국 과학아카데미 고생물학자 등은 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긴 목을 이용한 싸움이 기린의 긴 목이 진화한 주요 원동력이며 높은 먹이를 뜯어 먹는 것은 이 진화의 부차적인 효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가르 분지에서 발굴한 1억7000만년 전 초기 기린 조상의 머리와 목뼈 화석을 분석한 결과 박치기에 최적화한 매우 독특한 모습을 발견했다.
교신저자인 덩 타오 과학아카데미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 교수는 “머리 한가운데 접시 모양의 커다란 뿔(오시콘)이 나 있다”며 “이 화석동물에 신화 속 외뿔 동물인 해치를 따 ‘시치’란 이름을 붙였다”고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 동물은 목이 길고 이와 내이 구조가 기린의 조상임을 나타냈고 전체적인 형태는 숲에 사는 기린 친척인 오카피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머리의 모습은 아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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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린 조상 화석의 두개골과 경추 화석 모습. 왕 시치 외 (2022) ‘사이언스’ 제공.
기린 조상의 두개골은 윗부분을 다리미로 다려놓은 것처럼 납작했다. 연구자들은 납작한 뼈 위에 케라틴이 덮여 있었는데 케라틴층이 자라면서 낡은 부분이 벗겨져 나가면서 돔 모양의 ‘뿔’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헬멧 형태의 이 뿔을 수직 방향에서 지탱하는 건 두껍고 정교하게 연결된 경추였다. 왕 박사는 “현생 기린과 화석 기린의 두개골과 목의 형태는 아주 다르지만 모두 수컷의 짝짓기 싸움과 관련이 있으며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육중한 뿔이 달린 두개골을 2∼3m 길이의 목을 이용해 휘둘러 상대의 약한 부위를 가격하는 건 현생 기린 수컷이 싸울 때도 쓰는 방법이다. 마치 철퇴로 치는 것 같은 이 공격 방법은 목이 길수록 위력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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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기린(앞)과 현생 기린이 긴 목을 이용해 짝짓기 싸움을 그리는 상상도. 왕유, 궈샤오콩 제공.
연구자들은 “수컷 기린은 목이 길수록 지배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짝짓기 경쟁은 긴 목이 진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뿔을 이용한 싸움은 반추동물 사이에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화석 기린의 골격구조로 볼 때 사향소 수컷끼리의 박치기 때보다 2배가량의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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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기린이 살았던 초원 환경의 상상도. 중가르 분지에서 발굴된 화석을 토대로 당시의 동물들을 묘사했다. 궈샤오콩 제공.
연구자들은 화석 기린의 치아를 분석해 이 동물이 메마르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았음을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멍 진 박사는 “치아 에나멜층의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동물은 개방 초지에 살면서 주기적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며 “수컷끼리의 격렬한 싸움은 이런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현생 기린도 700만년 전 동아프리카의 열대림이 초원으로 바뀐 시기에 출현했다” 덧붙였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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