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왕씨 부산파

승려희랑대사

아지빠 2020. 10. 12. 09:31

태조 왕건의 스승이었던 불교 승려 희랑대사(希朗大師)입니다.

바로 부처입니다. 불상이죠. 동아시아 전통 조각을 대표하는 것은 불상입니다. 모든 불상은 원론적으로 다 다릅니다. 석가모니의 모습을 똑같이 새기지 않는 이상, 불상의 형상이 제각각인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차이를 개성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불상을 만든 뜻은 순전히 종교적인 목적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이 다 달라도, 끝내 부처님은 부처님일 뿐. 불상만큼이나 많이 만들어진 보살상이나 나한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조각들은 특정한 인물의 개성을 담은 것이 아니죠.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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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랑대사상, 고려 10세기, 건칠과 나무에 채색, 높이 82.4cm, 합천 해인사희랑대사상, 고려 10세기, 건칠과 나무에 채색, 높이 82.4cm, 합천 해인사

그런 상식을 여지없이 깨는 단 하나의 조각을 대면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지난해 초 ​국립중앙박물관이 야심차게 마련한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 공개된 진기한 조각상이 있었죠. 무려 10세기에, 그것도 나무에 색을 입혀 만든 조각이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과 함께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주인공은 태조 왕건의 스승이었던 불교 승려 희랑대사(希朗大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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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cm로 결코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조각상 앞에 서서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무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놀라움은 더 커집니다. 사실감이 가득한 저 눈동자, 미간과 이마와 눈가와 두 볼 아래 주름 하며, 가만히 다문 입술, 심지어 툭 불거져 나온 성대와 빗장뼈까지도 실재 인물의 그것처럼 놀랍도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조각상의 주위를 빙빙 돌며 앞모습, 옆 모습, 뒷모습까지 샅샅이 눈에 담았죠. 어디서 보아도 가히 충격 그 자체라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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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랑대사는 고려 건국 시기에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힘을 보탠 고승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치던 사찰 해인사를 중심으로 활동했죠. 그래서 이 조각상은 지금까지도 해인사에서 대대로 보관해오고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는 우리 조각 사상 최고의 걸작이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고승 ‘초상 조각’입니다.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입적한 고승을 추모하는 의미로 초상 조각을 활발하게 제작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의 불교 전통에서 <희랑대사상>은 너무나도 독보적이고도 희귀한 사례입니다. 이것 말고 다른 초상 조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희랑대사상의 가슴에 뚫린 구멍입니다. 다재다능한 작가 곽재식이 엮은 《한국 괴물 백과》를 보면,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지은 <가야산기(伽倻山記)>에서 옮겨온 이런 내용이 보입니다.

"희랑은 한 사람의 칭호로 심성이 관대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신비한 힘이 있다. 특히 가슴 한가운데 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이 몸속까지 연결되어 있다. 얼굴과 손은 까맣고 힘줄과 뼈가 유독 울퉁불퉁 튀어나온 모양이다. 원래 머나먼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신라 시대에 신라로 건너왔다 한다. 이 사람은 해인사의 승려로 지냈는데 천흉승(穿胸僧, 가슴에 구멍이 뚫린 승려)이라 했다."

이 구멍이 어떤 연유로 생겼는지는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경로로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인해 희랑대사가 전설 속의 인물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한 것은 그만큼 희랑대사가 한 시대를 넘어서는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박지원, 이덕무, 성해응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들은 어김없이 이 신비롭기 그지없는 인물의 전설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이 조각상의 얼굴과 손이 까맣다고 묘사했다고 하죠. 그래서 지금 보는 사실적인 채색은 그 이후에 새로 단장하면서 입힌 것으로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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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중의 국보죠. 그래서 이 정식 이름이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으로 붙여진 이 조각상은 최근 보물에서 국보로 당당히 승격됐습니다. 우리에게도 자그마치 1,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토록 훌륭한 초상 조각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뿌듯함을 느낍니다. 누군가 우리 전통미술에도 내세울 만한 '초상 조각'이 있느냐고 물으면 우리에겐 <희랑대사상>이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말이죠. 게다가 그 긴 세월에도 조각으로 새겨진 주인공의 모습이 저리도 온전하고 생생하니, 그걸 대대로 고이 지켜온 마음들의 씀씀이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