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동 동산 백련사(문화재)
종 목: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1호 /지정일 2012년5월17일
명 칭:백련사 석조여래좌상 (白蓮寺 石造如來坐像)
분 류: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채색과 도금의 박락 없이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복장물에서 발견된 축원문에는 이 불상을 1906년에 편수 문혜산(文惠山)이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불상은 양손을 배 앞에서 모아진 공수형을 하고 결가부좌하여 고개를 아래로 숙인 자세이다. 공수형 여래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도전리 마애불 등과 조선후기 나한상 등에서 유사한 수인을 볼 수 있으나, 조선 후기에는 드문 도상으로 다양성이 부각되던 근대에 들어 새롭게 표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신체는 어깨와 무릎 너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는 육계와 구분 없이 중앙과 정상에 각각 계주가 있다. 둥글고 납작한 얼굴은 눈이 크고 원통형으로 생긴 코와 입 등 이목구비가 작아 귀여운 인상을 준다. 하반신을 감싼 듯 한 옷자락은 옷 주름 표현이 없이 간략하여 17세기 이후 지속되던 조선 후기 불상 양식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축원문에 적힌 바와 같이 1906년에 조성된 여래상으로 축원문을 비롯해 황초폭자에 싸인 후령통 등 간략하지만 기본적인 복장납입물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즉 양식이나 법식이 전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의 조성자는 혜산당(蕙山堂) 또는 고산당(古山堂)으로 불리는 축연(竺衍)이다. 축연은 금강산에서 불화 수업을 한 후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1885년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삼신도를 그렸으며, 금호 약효와 함께 범어사 나한전 영산회상도와 괘불도 제작했다. 1920년대에는 양산 통도사 응진전 십육나한도와 신중도 등을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가 매우 넓은 불화승으로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까지 당대의 불화승들과 함께 활약하였다.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정확한 조성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시대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불교미술에 한 획을 그은 불화승인 축연이 제작한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자못 크다고 판단된다.
'그룹명 > 나의포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어단어 어원맵 (0) | 2017.12.26 |
---|---|
생리켭 페미사이클 수입 허가 (0) | 2017.12.07 |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과보잉오스프리(mv-22) (0) | 2017.07.01 |
통일훈련 (0) | 2017.06.26 |
일본의 소류 잠수함 (0) | 2017.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