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남구신문 오륙도 칼럼
이기대가 주는 행복
전 상 수(전 국제신문 논설주간)
이기대에 오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천천히 산허리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기대는 나의 친구이며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누이, 연인 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이 내 마음을 다치게 해도 이기대는 언제나 편안함을 안겨 준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해질 무렵까지 이기대에 오르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할 때 우산을 쓴 채 정상을 오르면 어느 미지의 성에 오르는 듯 신비함을 느낀다.
숲 사이 길을 걸으며 갯바위에 부딪치는 강렬한 파도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 이기대가 좋다. 225m 남짓하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길엔 숲 너머 푸른 바다도 해돋이도, 해질녘 불게 타는 일몰도 볼 수 있어 깊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신선대도 황령산도 우리를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어 남구에 산다는 것은 행복하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뉴질랜드 등산가 힐러리 경은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했다. 당연히 이기대도 `거기 있지만' 아침저녁 생각나면 바로 갈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는 것이 여간 고맙지 않다. 아랫마을 김 선생은 이기대를 `종합병원'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생성되는 곳이 여서인지 공기도 맑다.
연녹색 잎들이 싱싱한 6월의 이기대는 더욱 아름답다. 찬 겨울해풍에도 무서운 태풍에도 쓰러 지지 않고 긴 세월 버텨낸 소나무가 꿈꾸는 하늘을 이고 있어 아득하다. 가끔 산길에서 큰 비닐 쓰레기봉투와 긴 집게를 든 문방자 여사를 만난다. 예쁘장한 문 여사는 새벽이면 거의 매일 쓰레기를 주우며 산길을 오르내린다. 내가 알기에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어쩌다 얘기 끝에 집안이 편치 않아 부처님 전에 예불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깨끗한 산길은 그이 덕분이다.
지난 4월 중앙 약수터(큰고개약수터) 가는 길엔 노란 황매화가 한창이었다. 이른 봄부터 맑은 연초록 가지에 물기가 오르더니 사월이 되자 황매화가 찬란한 오솔길을 만들었다.지나가는 사람마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황매화를 심은 이는 김종대 사장. 약수터에서 기 체조장에 이르는 길 양쪽에 7년에 걸쳐 심었다니 보통 의지가 아니다. 어렸을 적 소풍 가서 본 황매화가 너무나 아름다워 기회만 되면 심어야겠다고 한 꿈이 이기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산을 자기 집 뜨락처럼 가꾸는 멋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기대는 그 아름다움을 더해 간다. 자녀들이 용돈만 주면 중앙 약수터에 묘목을 사다 심던 그 어르신은 이제 전설로 남아 있다.
여전히 이기대를 지키고 있는 이는 토박이 왕정문 회장이다. 오랫동안 이기대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며 바닷가 야생 꽃 사진과 얘기들을 인터넷 블로그에 담아 이기대를 홍보하고 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기대 자연의 생태를 확인하고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며 환경보호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기대가 아름다운 것은 이기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임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선종 회장이 중심이 되는 초식회는 남다르다. 푸근한 김회장의 인품으로 많은 산사람들과 교류하며 수구리 집에서 함께 나누는 나물 등 초식 위주의 아침식사 자리에는 나라 걱정도 인정도 넘친다. 초식 회원인 토박이 최대복 새마을금고 이사장, 김대성 회장도 이기대의 큰 지킴이들이다. 이 분들이 힘을 모아 비 온 뒤 패인 산길을 손본다든지 하면서 이기대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한다. 구청은 해마다 산불 예방을 위한다며 가을 들꽃이 피어나 지기도 전에 조상 묘 벌초하듯 오솔길 양 옆 풀들을 깎아 버린다. 얼마전엔 느닷없이 큰고개에 주차장을 없애고 잔디밭을 만들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많이 걸을 수 없는 노약자나 장애인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차들의 접근을 막아버린 것이다. 주민의 건강과 휴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텐데….
이기대를 찾아 대구 의성 등 전국에서 관광버스도 많이 오지만 부근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그대로 지나버린다. 경치만 보고 도로만 이용할 뿐 남구 살림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백운포(白雲布) 내려가는 길옆에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큰 정원을 가진 가든이 성업 중이지만 관광버스가 갈 수 있는 다른 음식점은 거의 없다.
관광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의 3개 요건이 필수다. 남구의 음식점은 지저분한 곳이 너무 많다. 음식점을 깨끗하게 정비하여 외부관광객을 끌어야 지역경제가 윤기를 띨 수 있다. 구청의 관심과 지도, 적극적 지원이 지역의 변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기대의 자연 유산을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실천과제이다. 최근 `공원'으로 지정된 사유지를 2020년7월까지 자치단체가 사들이지 못하면 녹지에서 해제되는 `공원일몰제'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몰제의 민간공원조성특례법에 따라 3개 민간 개발업자가 이기대에 아파트, 호텔을 짓겠다고 나서 시민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늘에 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기대의 손상은 용서 할 수 없다.아름다운 이기대는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
부산남구신문 제257호7면 2017년6월2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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