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왕씨 부산파

공민왕의 노래

아지빠 2016. 10. 8. 19:36





공민왕의 노래



안동청량산 공민왕 사당


사당옆 산신각의 문틈으로 본  산신각내부의모습



(이미지)

최근에 나는 안동 청량산에 있는 공민왕의 사당을 가보았다. 평소 공민왕을 동방의 상처 입은 디오니소스로 마음속에 모시던 나는 며칠간을 정처없이 떠돌 수 있는 특별하고도 우연한 기회를 얻어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문득 작심하야 공민왕당에 가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거기서 청산별곡의 환청을 들었다. 그리고 혹시 청산이 청량산은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해 보았다. 청산별곡은 어쩌면 공민왕의 혼백이 지은 노래인지도 모른다. 고려 31대 왕 공민왕은 즉위 후 10년, 그러니까 1361년에 일어난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깊은 청량산에 들어가 저항과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환도하여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불의의 변으로 저승으로 가지도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백이 되었다. 공민왕이 머물 때 그 기백과 높은 뜻과 인품에 감화를 받은 산성마을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제를 올려 공민왕을 청량산을 지키는 신령으로 모시고 있다. 아직도 그 깊은 산 공민왕당 바로 밑 산성마을에는 민가가 띄엄띄엄 있다. 인기척이 나자 개가 짓고 할머니 한 분은 그 소리도 안 들리는지 양지바른 데 나와 옷에서 뭔가를 자꾸 떼어내고 계셨다.

청량산은 의외로 깊은 산이었다. 쉽게 나올 것 같던 공민왕당은 가도 가도 나오질 않았다. 갈래 길도 많았다. 청량산 축융봉 산성마을을 지나치면 나 있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초라할 만큼 아담한 공민왕 사당이 비로소 나왔다.

인적도 끊겨 적막한 깊은 산중에 흰 버섯 한 뿌리가 홀로 피어 있었다. 독인지 꿈인지를 품고 있는 모시적삼 버섯은 썩은 나무뿌리의 호위를 받으며 이슬땀을 흘렸다. 버섯의 하얀 갓이 빙빙 도는 턴테이블 같았다. 돌고 돌며 왕의 맺힌 넋이 가쁜 숨을 넘기기 직전의 시간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었다. 그 장단의 탄력으로 버섯은 옛 왕국을, 사라진 나라를, 온몸이 불에 덴 듯 뜨거운 연인의 나신을, 아름다운 친구들의 무리진 그림자를 노래의 내용으로 담았다. 구부러진 산길들은 이파리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길이 서로 대화하는 내용을 엿들었는데, 그것은 청산별곡의 가사와 비슷했다. 길은 두런두런 낮은 목소리로 지나간 시간을 걸었던 사람들과 공민왕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었다. 역사의 발자국이 청량산 깊은 계곡 산짐승의 발박자와 겹쳤다. 길은 듣고 있었다. 그 모든 어울림을. 저 절벽에 매달렸던 소나무들의 사연을.

성기완 시인


'개성왕씨 부산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파파묘  (0) 2018.07.01
실재 고려국경선  (0) 2018.04.17
2015년 시제  (0) 2015.11.01
수장산의 선영  (0) 2015.02.01
삼국시대 연호와 왕의 재위기간  (0) 2015.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