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해운대장산을 상살미라고 하였다

아지빠 2016. 9. 9. 18:03




제왕반 바위, 상여바위,영감할매바위


용호동에서 해운대장산을 상살미 라고 하였다

萇山國 건국설화

 

아득한 옛날부터 고씨들이 장산기슭에 있는 장자벌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고선욱(高仙玉)은 홀어머니와 함께 토막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소나기비가 그치자 먼하늘에서 선인이 영롱한 칠색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이곳 마을에 하강하였다. 선인은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분향기에 이끌려 고선옥의 토막집을 찾았다. 선인은 고선옥에게 냉수를 청하자 물그릇에 냉수를 청하여 물그릇에 물을 떠서 주면서 얼굴을 돌려 외면하였다. 선인은 물그릇을 거울삼아 외면한 처녀의 얼굴에 비춰 보았다. 선인은 선녀보다 아름답고 옥처럼 빛나는 고선옥의 모습에 매혹되었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잔치를 베풀었다. 세월이 흘러 이들 사이에는 아들 열명과 딸 열명이 출생하여 장성하여서는 모두 20곳 마을에 흩어져 살았다. 제마다 안씨 정씨 박씨 이씨 김씨 최씨로 창성하여 그 마을을 다스렸다.

 

선인은 마을에 토성을 쌓아 그 씨족들을 다스리는 대족장이 되었다. 선인은 회혼때(결혼 60년)가 되자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등천하였다. 그때부터 고선옥은 고씨족을 다스리는 고씨할매가 되었다. 고씨할매는 날마다 아들 딸을 순산하였던 제왕반에 제단을 차려 놓고 옥황상제께 선인의 하강을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외거리 절에 가서 불공도 드렸다. 또 산정에 있는 큰 바위(영감 할매 바위)에 올라가서 하늘을 바라보며 선인의 하강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고씨할매는 그 바위 밑에서 선인을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가셨다. 20곳 마을에 살던 아들 딸들은 고씨할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그 씨족들을 이끌고 와서 바위를 다듬어 상여를 만들고(상여바위)정상에 큰 묘를 만들어 안장하였다.

 

지금도 그 제왕반 바위, 상여바위, 영감할매 바위가 있고 그 묘가 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고씨할매의 넋을 고을의 질병을 막아 주고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모시고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마을의 후손들은 마을 뒷산에 사당을 세우고 매년 정월 보름날에 고당 할머니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 제사는 마을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망있는 부부를 택해서 제관으로 선택하고 제관은 궂은 일을 보지 않고 당일에는 찬물에 목욕을 하고 제수물은 흥정하지 말고 값대로 치러 마련토록 하였다.

 

제관은 마을에 살고 있는 각 성씨 이름을 봉송하면서 동태민안을 기원하고 재앙과 질병이 없도록 시주종이를 불살라 비는 풍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또 마을 사람들은 들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반드시 첫숟가락에 밥을 떠서 "고시례"(高氏禮)라고 고씨할매에게 예를 올렸다. 그래야만 식후에 탈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아들이 없는 부인이 제왕반에 가서 촛불켜고 기도한 후 외가리절에 가서 공을 드리면 옥동자를 낳고, 영감할매 바위에 가서 공을 드리면 부부의 정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전설에서 선인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장산 넘어 먼 하늘가에서 무술과 지혜가 뛰어난 남자가 왔다는 것을 신격화 하였고 고씨 할매와 그 딸 고선옥은 원시 사회의 제사를 맡은 제관할매와 신딸로서 큰딸(크슬아기=구술아기)의 뜻을 전하고 제왕바위는 신당의 뜻이고, 10남 10녀가 이웃 마을에 흩어져 살았다는 것은 그 선인은 대추장(큰촌장)이 되어 그 씨족들로 하여금 20개 마을을 다스리게하여 씨족공동사회를 형성하였다는 뜻이고 외가리 절은 그당시 이미 금관가야국과 친교하여 불교가 전파되어 있었다는 뜻이고, 상여바위와 고씨묘는 왕비의 석곽묘를 뜻하고 영감할매 바위는 선인과 고선옥을 수호신으로 숭배하였다는 뜻이고, 고씨례는 고수례의 풍습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전설은 장산국(萇山國)의 건국신화로 생각된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동래의 동쪽 십리지점에 장산국의 옛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장산기슭에 있는 재송동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장산국이라는 작은 나라 이름은 이곳에 있는 장산이라는 산 이름과 같고 이산을 상살미, 자류미라는 속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속명은 큰산, 높은산, 동쪽산의 뜻의 옛말로 해석된다.

 

장산국은 동국여지승람 동래현조에서 "옛장산국은 일명 내산국(來山國)으로, 대군을 일으켰는데, 삼십명으로 가야국을 쳤다. 그리고 신라는 이를 쳐서 거칠산군(居柒山國)을 두었다."라고 적혀 있고, 동국사를 살펴보면 신라 4대 탈해왕 23년에 이웃 국경에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있어 신라왕은 이 두나라가 걱정이 되어 거도장군을 변관으로 삼아 항상 장토야(기장)에서 말을 모아 달리게 하여 말타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하여 두나라가 여기에 대비가 없도록 해놓고 거도장군이 습격하여 거칠산국을 멸망시켰다. 거칠산국은 아마 장산군의 일명 일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장산국(래산국)은 거칠산국(居柒山國)의 일명으로 보고 있고 거칠산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망미동에 있는 황령산의 옛이름은 거칠뫼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상살미의뜻 상은 윗의 의미이고

살은 머리꼭대기의 수리 이형이다

미는 뫼의 이형으로 높은 산을 지칭한다.


'향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센인정착촌 감만동과 용호동 상애원  (0) 2017.06.14
용호龍湖  (0) 2017.02.13
조선군사령부(침탈기)  (0) 2016.08.13
조선군 병력배치도(침탈기)  (0) 2016.08.13
부산외항오륙도 방파제 완공 1990년11월  (0) 201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