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스크랍

정윤회파문 스토리텔링

아지빠 2014. 12. 26. 10:00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1탄’ 총정리

 

박 대통령 ‘수첩 인사’부터 전대미문의 ‘권력 암투’까지

정국 강타한 ‘국정 개입 의혹’…과연 진실은 밝혀질까?[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이 일주일째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보도가 나온 지난달 28일 이후 주요 신문들이 1면부터 5~6면(신문사에선 이를 종합면이라고 부릅니다)까지 이 이슈로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는 얘깁니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중앙일보>의 정윤회씨 인터뷰,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이어졌고, 급기야 <한겨레>가 지난 3일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 및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우선 많은 뉴스들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만 스무 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정씨가 국정에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통해 이번 파문의 전말을 A부터 Z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 2탄과 3탄을 이어가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이 기사 url만 가지고 계시면 업데이트된 요약정리를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시작합니다. 꽉 잡으세요.

 

파문의 배경 ‘수첩 인사’

우선 파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부터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에서 시작했습니다. ‘나홀로 인사’, ‘불통 인사’, ‘밀봉 인사’, ‘수첩 인사’라는 수식어는 늘 뒤를 따라다녔지요. 2012년 12월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조차 모르게 ‘깜짝 발표’한 인사 1호가 바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었습니다. 새 정부 첫 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는 병역, 부동산 논란으로 청문회도 가보지 못하고 지명 5일 만에 전격 사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뒤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며 2기 내각을 바꿨을 때는 ‘인사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가 고액수임료 수수 문제로 물러난 데 이어, ‘깜짝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친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더불어 제자논문 대필 논란의 교육부 장관 후보, 음주운전에 사생활 문제를 빚은 문화부 장관 후보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사람들만 골라오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엔 대체 무엇이 씌어 있나?’ ‘인사’ 권한은 정치인들에겐 ‘예산’과 더불어 초미의 관심사인데요,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불통 인사’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져 갔습니다.

청와대에 인사 검증시스템이 있기는 한 것이냐는 비판도 커졌습니다. 인사 참사를 책임질 배후로는 두 곳이 지적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통령을 바로 곁에서 보좌하는 책임을 맡은 김기춘 비서실장입니다. 다른 한 축은 최근 언론에 부쩍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으로, 박 대통령의 의원시절부터의 오랜 보좌진들입니다.

▷ 관련 기사 : 인수위원을 “형”이라 부르고 의원들이 먼저 다가가 인사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는 이 ‘문고리 3인방’의 움직임을 담은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입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했습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회사로 치면 ‘감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등 측근 관리를 비롯해, 부처 공무원을 감찰하는 등 정권에 악재가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검토하는 일을 했습니다. 공직 후보자의 인사 검증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몫입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는 이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보좌진 그룹 10여 명을 ‘십상시’라고 일컬으며 이들이 실세라고 지목했습니다.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정윤회 씨를 비롯한 외부 인물에게 전달했다는 내용,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정윤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을 찌라시에 흘리는 등으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세계일보 기사 바로가기).

무엇보다 이 보도의 의미는, 세간에 ‘비선 실세’라는 소문이 퍼져 있던 정윤회 씨가 직접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청와대의 공식 문서를 통해 사실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의혹이 그저 사실 여부 판단이 힘든 사람들의 ‘말’로 전해진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문서를 통해 청와대에 공식 보고까지 된 사실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이전의 의혹 단계보다 훨씬 커진 셈입니다. 언론이 <세계일보>의 보도 이후 각종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건 우선 그런 까닭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말보다 공식 문서를 신뢰합니다. 언론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편중된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공식 문서는 작성한 내용이 거짓일 경우 제도적인 책임을 묻게 됩니다. 사실 관계 검증이 더 철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고리 3인방은 누구인가

3인방은 모두 대통령 비서실에 소속된 비서관들인데요.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공식 입문한 이후 줄곧 측근에서 보좌해 온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입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맏형 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인사와 살림살이(재무)를 총괄합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원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최근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한 인사 청탁 사건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개인정보유출에 관여했던 사람도 이재만 비서관 지휘 아래 있는 총무비서관실 소속의 행정관이어서 논란이 된 바 있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 채동욱 ‘혼외 의심 아들’ 정보 유출 개입

정호성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이 각각 소속된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일정 부서입니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은 정무 전반과 대통령의 일정, 보고서를 전담합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려면 우선 정호성 비서관을 거쳐야 합니다.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수행과 경호를 책임집니다. 잦은 민원을 넣으려 드는 사람들을 차단하는 역할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접촉하려면 이 3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해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겁니다.

3인방을 거치지 않고서는 ‘비서실 민정수석조차 대통령을 독대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입니다. 지난해 8월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터졌을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인사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허태열 전 실장과 보좌진 그룹이 나뉘면서 두 그룹 간 마찰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허태열 전 실장과 3인방과의 알력으로도 추측되는 부분입니다.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새로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와 균형을 맞췄다는 평을 듣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관련 조선 뉴스프레스 기사

그런데 <세계일보>의 보도를 보면, ‘3인방’이 직책상으로 상사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을 꾀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구상에 ‘외부 세력’이자 민간인인 정윤회씨가 개입돼 있다는 것입니다. 정씨는 1998년 당시 박근혜 의원의 개인비서실장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3인방을 비롯한 보좌진 체계를 잡은 뒤 2007년 공식적인 직책에서는 물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동향 (파악 차원에서) 보고받았던 것”이라며 보고서에 거론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습니다. 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의 첫 반응은 위에서 말씀드린 ‘공식 문서 신뢰성’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 문서의 내용보다 청와대 공식 문서가 유출된 것에 더 초점을 두는 식으로 프레임 전환을 꾀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중앙일보>는 청와대가 첫 반응을 내놓은 이튿날인 12월 1일, <세계일보>에서 ‘비선에서 국정을 뒤흔든 인물’로 보도된 정윤회씨의 반박 인터뷰를 보도하며 청와대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정씨는 “7년간 야인으로 살며 3명의 비서관과 연락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연락이 없으니 되레 비서관 3명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했지만 이해한다”며 <세계일보>의 보도를 정면 반박했습니다. 연락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만난 적이 없고,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김 비서실장 경질설을 퍼뜨린 일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정씨의 육성으로 공식 문서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세계일보> 보도가 가진 파장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김진 정치전문기자가 칼럼까지 쓰면서 청와대와 정윤회 씨의 처지를 대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흘 만에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문이 이는 사안에 이렇게 빨리 나서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은 루머이며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세계일보>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프레임을 청와대 문건 유출에 맞췄습니다. 비서관 3인방에 대한 ‘무한 신뢰’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후속 보도가 없었다면, 한동안 이 프레임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의 반격

반전은 <조선일보>에서 터져나왔습니다. 12월 1일까지의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문건 유출 책임론 프레임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2월 2일자 ‘정윤회, 지난 4월 이재만과 연락했다’는 제목으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정윤회 씨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직속 선임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첩보가 맞을 가능성은 6할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내용을 지난 2월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구두 보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외부세력과 연계해 비서실장을 음해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를 한 2달 뒤인 지난 4월 10일께 정윤회 씨가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고 합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를 무시하자 다음날에는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며 정씨를 대변하는 말을 전했다는 겁니다.

▷ 관련 기사 : 조응천, 정윤회 정면 반박…“이재만과 4월에도 연락”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7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정씨의 말과 달리 3인방이 정윤회씨와 꾸준히 연락해 왔다는 정황을 드러냈습니다. 또 해당 문건 유출은 조응천 전 비서관 자신의 수하였던 박관천 경정이 아닌 3인방과 관련이 있다는 암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문제의 ‘감찰 보고서’는 찌라시성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가진 보고서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실제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 유출에 대해서는 "관리 책임자로서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문건 유출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직접 부정한 셈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인사 검증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습니다. 검증 임무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해야할 일인데 “어떤 때는 한창 검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 참사’의 책임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3인방에게 있다는 논리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 씨의 전화를 받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중순 경질됐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보고한 뒤 이뤄진 보복성 인사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일개 비서관 출신으로 어떻게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 주류 권력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배경은 이번 파문이 계속 이어지면서 차츰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입니다.

줄줄이 좌천된 ‘박지만 회장 측근’들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으로 박지만 EG 회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 출신으로, 과거 박지만 회장의 마약수사 검사로 인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이 친인척 쪽에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불만을 품은 박지만 회장이 공직기강비서관을 움직여 ‘정윤회 계파’에 대한 저격에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박지만 회장이 측근인 조응천 전 비서관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위험성을 알려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섭하고, ‘정윤회 계파’를 저격하면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히려 이 보고를 ‘청와대를 흔들려는 시도’라고 판단하면서 묵살했고, 오히려 3인방을 공격한 박지만 회장 쪽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역풍을 맞고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윤회 계파’와 ‘박지만 회장 계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처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로 최근 박지만 회장 쪽 사람들은 줄줄이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났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 외에도, 박지만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이 지난 5월 옷을 벗었습니다. 청와대 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지난 8월 조응천 전 비서관과 가깝다고 알려진 고위급 인사가 발령 직후 청와대의 요구로 ‘자진 퇴임’하는 형태로 물러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기무사에서는 지난 10월 박지만 회장과 육사 37기 동기인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경질됐습니다. 당시엔 배경이 궁금했던 인사 이유가 뒤늦게 추정이나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겁니다.

▷ 관련 기사 : “누나가 무섭다”던 박지만, 세력 만회 시도한듯

 

이런 일련의 인사 흐름을 아래 표로 정리해봤습니다.

표. 경질된 박지만 회장 측근 인사들

1. 청와대

4월, 민정수석실 조응천 비서관 라인 경질 (민정수석실 파견 경정급 경찰관 5명이 7월까지 원대복귀)

5월,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 사퇴 

2. 국정원

5월, 남재준 국정원장 사임

9월, 1급 간부 Z씨가 인사 일주일 만에 철회 : 청와대 지시로 퇴진 후 국내 정보와 무관 부서로 이동 

3. 기무사 군 인사 건

10월, 이재수 전 사령관 전격 교체  

4.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안민석 새정치 의원 “김 전 위원장 사퇴가 김 실장과 정윤회씨 사이의 암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

정윤회 파와 박지만 파의 싸움인가

그러자 박지만 회장 쪽이 이번에는 여론을 활용해 반격을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평소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은 ‘정윤회’나 ‘십상시’ 등의 단어를 포함한 문건을 유출해 3인방에게 타격을 줌으로써, 권력 싸움에서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밀려나고 있는 사태의 반전을 꾀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널리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파문이 정윤회 쪽과 박지만 쪽의 ‘국정 장악 파워 게임’으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렇게 두고 보면 사태의 엄중함과 별개로, 한숨도 나옵니다.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힘겨루기라뇨.

하지만 이 사태를 단순한 힘겨루기로 폄훼하며 외면해선 안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정윤회 씨가 됐든 박지만 회장이 됐든, 국정에 개입해 각종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정윤회 씨나 박지만 회장처럼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사람은 의회나 시민들의 감시를 받을 의무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국정을 휘저었다’고 해도 법적 처벌이 애매합니다. 즉, 대통령까지 움직이는 국정 농단 사건이 벌어지면서 행정부가 흔들려도, 삼권 분립의 핵심인 의회 권력과 사법 권력이 어떻게 제어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시민들이 끝까지 비판의 눈초리를 비끼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이윱니다.

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2탄에서는 정윤회 씨 부부가 실제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한 <한겨레> 보도와 그 이후 보도들을 정리하는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이어가겠습니다. 2탄도 기대해주세요.

 

정윤회 딸 ‘판정 시비’부터 박 대통령 “나쁜 사람”까지

 

[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윤회 파문’ 총정리 제2탄

‘공무원 인사’ 뒤흔든 희대의 사건은 ‘수첩 인사’에서 비롯

 

 

① ‘정윤회 파문’ 총정리 1탄 - 박 대통령 ‘수첩 인사’부터 전대미문의 ‘암투’까지

② ‘정윤회 파문’ 총정리 2탄 - ‘공무원 인사’ 흔든 희대의 사건은 ‘수첩 인사’서 비롯

지난 <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정윤회 게이트 총정리’ 1탄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를 둘러싼 일련의 보도들을 묶어 맥락을 정리했습니다. 사태의 원인은 윤창중으로 시작해 문창극에 이르기까지 ‘인사 참사’가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상의도 없이 ‘밀봉 인사’를 고집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야의 불만이 커져 간 것이었습니다. 인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책임지는 사람 따로 있느냐는 겁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때는 이남기 전 홍보수석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태를 책임지고 불명예 퇴진했지만, 둘 다 윤창중 기용을 추진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권 지지도까지 떨어뜨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파문’ 때는 여권 중진들이 서로 이런 말도 안되는 인물을 누가 대통령께 추천했는지를 두고 ‘너냐’, ‘아니다’ 지목하는 희극이 벌어졌습니다( ▷ 관련 경향신문 기사 바로가기 ).

인사같이 중차대한 일을 혼자만의 결정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상식적인 일은 아닙니다. 여권 중진 의원들도 아니라고 하니, 혹시 따로 대통령이 상의하는 어떤 ‘비선’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쉬쉬하던 ‘정윤회’란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두 차례에 걸친 국무총리 인선 실패 전후입니다. 특히 지난 6월 25일은 밀린 포문이 일제히 터져나왔습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식 채널 아닌 소규모 비선 라인”이 공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지원 새정치연합의원은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사를 청와대) 비선 라인이 하고 있다는 의혹을 모든 언론, 국민, 정치권이 하고 있다. 만만회가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인사 책임론’ 속에서, 정윤회씨 외에도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오랜 박 대통령 보좌진 진영과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간의 알력 다툼의 결과가 보고서 유출의 형태로 터져나왔을 가능성을 다뤘습니다.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 보고서’를 둘러싼 복잡한 흐름 중에서도 두 가지 큰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로, 청와대의 ‘공식 문서’가 만들어진 배경입니다. 앞서 설명한 인사참사를 둘러싼 책임공방을 들 수 있겠지요. 둘째로는, 정말로 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 청와대의 인사에 공식 라인이 아닌 ‘외부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서 해당 보고서의 디테일에만 집착해 ‘십상시면 정확히 10명이 맞냐’거나 ‘정말 매달 두 차례 그 중식당에서 모였나’라거나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청와대 문건은 도대체 누가 유출한 거냐’ 등에만 주목하면 큰 줄기를 놓친 채 곁가지만 보는 모양새가 됩니다.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를 시작으로 12월 2일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단독 인터뷰까지에 대해 얘기했던 총정리 1탄은 첫 번째 의문을 풀어주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외부세력(정윤회)이 국정에 개입했느냐, 는 밝히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정윤회 국정개입’ 실제 사례 캐낸 <한겨레> 보도

여기에 ‘반전’을 더하고, 궁극적인 두번째 의문에도 불을 밝힌 것이 <한겨레>의 단독 보도입니다. <한겨레>는 12월 3일자에서 “정윤회 관련 문체부 국 과장, 박 대통령이 직접 교체 지시” 라는 기사(▷ 관련 기사 : “정윤회 관련 문체부 국·과장, 박 대통령 직접 교체 지시”)를 보도했습니다.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일개 과장까지 일일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해 인사 조처를 요구하는 전례 없는 ‘꼼꼼함’을 보였는데, 하필 그 사안이 정윤회 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와 그 전 부인인 최순실 씨 사이에는 딸 정아무개(19)씨가 있습니다. 이 딸은 승마선수로, 국내 선수권 대회에서 다른 선수 한 명과 1, 2위를 번갈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대회에선 이 다른 선수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출전권을 따내려면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판정 시비가 일었습니다.

그런데 판정 논란이 일면 대개 협회 내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던 관행과 달리, 시합 다음날 느닷없이 상주경찰서에서 심판위원장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했습니다. 이어 전례 없는 승마협회 비리 조사 및 감사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대회 다음달인 5월엔 청와대에서 승마협회를 감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문체부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두달 뒤 ‘감사 결과 보고서’를 올렸는데, 문체부의 진아무개 체육정책과장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협회도 문제지만 정씨 편에도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청와대가 원했던 감사 결과가 아니었던 걸까요? 2013년 8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진룡 문체부 장관 등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렀습니다. 수첩을 꺼내 들고 진 과장과 주무책임자인 노아무개 체육국장의 실명을 ‘콕’ 찍어 거론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1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무원들은 인사에 몹시 민감합니다. 정기 인사 시즌도 아닌데 특정 공무원이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발령나면, 발령의 배경을 두고 온갖 설이 난무합니다. 업무에도 지장이 생길 정도입니다. 문체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돌출 인사’가 일으킬 이런 잡음을 우려해 한두달 뒤에 있을 정기 인사 때 자연스럽게 진 과장과 노 국장을 교체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집요했습니다. 이틀 뒤 두 사람에 대한 인사 조처가 이뤄졌는지 재차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열흘만인 9월 2일 전격 경질(‘대기발령’)됐습니다.

이 보도의 의미는 큽니다. 우선 보도가 사실이라면, ‘민간인’ 신분의 정윤회씨 부부가 딸의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대통령 권력까지 동원해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인사를 뒤흔든 희대의 사건이 됩니다.

게다가 청와대는 이 보도 이전까지 내부 공식문서인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를 ‘찌라시’로 격하하면서 문서에 적혀 있는 ‘외부 세력 개입설’을 ‘허위’로 애써 단정지어 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 세력’이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과 사례가 드러난 것입니다. 하필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꼽힌 정윤회씨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과장의 좌천 여부를 깨알같이 확인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는 해명은 상당한 부분에서 진실성이 의심받게 됐습니다.

대통령이 일개 과장급의 인사까지 챙길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기존의 ‘통념’도 깨졌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고유 권한입니다만, 그것도 공직사회의 검증과 같은 절차적 투명성을 갖춘 가운데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장과 같은 고위급 인사에 한정된 얘기였습니다. 부처의 국장과 과장급 인사는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고유 권한입니다.

침묵 지킨 청와대 확인 사살한 <조선일보>의 역습

<한겨레> 보도에 청와대는 애써 침묵을 지켰습니다. 대신 김종덕 현 문체부 장관이 <한겨레> 보도 하루 뒤인 지난 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지시에 의해 그런 문체부 국장과 과장 인사가 이뤄졌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진 과장 등의) 업무 능력이 떨어져서 (유진룡) 전임 장관이 인사했다고 본다”고 변명했습니다.

이번에도 반격은 다시 <조선일보>에서 나옵니다. 12월 5일자 <조선일보> 4면은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게 맞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인터뷰를 실으며 ‘확인 사살’에 나섭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한겨레> 보도가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한 이야기”라며, “정윤회씨 쪽이나 그에 맞섰던 쪽이나 다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올린 건데, 정씨 입장에서는 상대방만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우리 문체부가) 안 들어주고 자신까지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괘씸한 담당자들의 처벌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관련 조선일보 기사 바로가기 ).

또한 유진룡 전 장관은 재임 시절 갈등설이 일었던 김종 문화체육부 차관을 두고, ‘김종 문화체육부 차관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 정확하다”며 “김 차관의 민원을 이재만 비서관이 V(대통령)를 움직여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유 전 장관 자신은 청와대와 인사 청탁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반면 차관은 청와대(3인방) 쪽에 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문체부였을까요. 문체부는 소속·산하 기관이 48개나 됩니다. 대통령을 도운 사람들에게 보은할 자리가 그만큼 많은 셈입니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기관장에 오른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2013년 3월), 정성근 전 아리랑국제방송 사장(지난 2월),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지난 4월),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지난 7월) 등은 모두 대선 전부터 박 대통령을 도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압력’을 넣은 상대가 하필 유진룡 전 장관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입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취임했다가 6개월만에 경질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아리랑TV 부사장직을 두고 사석에서 인사 청탁을 넣었는데, 유진룡 당시 차관이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부사장 직을 없애버리는 ‘배 째라’식 강경 대응을 했다가 경질되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당시 “배신자로 낙인찍혀 ‘조직의 쓴맛’을 보았고(…) 그 대가가 아무리 가혹하고 힘겹더라도, 끊임없이 정의의 호루라기를 불어야 합니다”(김정권 전 의원)라는 글을 당 누리집에 걸어가며 유진룡 전 장관을 ‘노무현 대통령의 부당 인사개입에 맞선 영웅’ 취급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박근혜 대통령이 비슷한 인사개입 사례를 만들자 되레 “배신의 칼날이 무섭고 가벼운 처신이 안타깝다”(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며 유진룡 전 장관을 비난하는 모습도 공교롭습니다.

아무튼 유진룡 전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서도 밉보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석달째를 맞아 ‘내각 쇄신’을 하겠다며 지난 7월17일 유진룡 전 장관을 ‘면직’ 처리 했다는 점에서도 그런 근거를 볼 수 있는데요. 당시 후임자로 지명됐던 정성근 전 후보자가 음주운전 및 사생활 논란으로 청문회 첫날을 넘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한 다음날이었습니다. 후임자도 없이 장관 자리를 공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보통 물러나는 장관도 후임자가 확정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던 정홍원 총리조차 후임자가 확정되지 않아 계속 자리를 이어가던 차였습니다. 유진룡 전 장관이 직언을 했다가 단단히 찍혔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확인된 박근혜 대통령의 문체부 인사개입

유진룡 전 장관이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며 파문이 커지자, 정부 여당과 청와대는 허둥지둥한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전까지 “인사는 (유진룡 당시) 장관 소관”이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7시간 뒤 다시 기자들 앞에 서서는 “(진 과장과 노 국장의 경질은) 박 대통령이 주문한 체육계 적폐 해소에 성과를 내지 못했던 탓”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해명으로 우선 박 대통령이 인사권자인 유진룡 전 장관을 제치고 직접 일개 부처 국과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한겨레>가 보도했던 정윤회 부부 개입 의혹과 달리 ‘진 과장과 노 국장의 미흡한 성과’에 전가한 말이기도 합니다.

권종오 기자의 취재파일로 청와대의 해명에 대해 대답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7월 23일이고 두 사람의 잘못을 지적한 것은 8월 21일입니다. (…) 한 달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되고 이것이 경질의 사유가 된다면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 보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 관련 SBS 보도 바로가기 )

국회에서는 <조선일보>의 유진룡 전 장관 인터뷰가 보도된 5일 오전 김종 차관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질의를 받던 도중 부하 직원인 우상일 체육국장에게 “(이 파문을 둘러싼 구도를) 여야 싸움으로 몰아가야” 한다는 조언이 담긴 쪽지를 받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김종 차관은 또 유진룡 전 장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방침도 밝혔습니다. 현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 개입이 사실무근이라는데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이 개입한 건 맞다고 뒤집으면서 장관의 기자회견을 거짓으로 만들고, 현 문체부 차관이 전 장관을 고소하는 전대미문 사태까지 이르면서 문체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상탭니다. 이 와중에 지난 4월 ‘공주 승마’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윤회 부부의 딸이 2014인천아시안게임국가대표로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점을 인정받아 승마 특기자로 지난 8일 이화여대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됐습니다( ▷ 관련 기사 : 정윤회 딸,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체육특기자전형 합격 ).

다시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강도 높은 검찰 조사가 이어지면서 문제의 보고서에서 삭제됐던 부분들도 속속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르면, 정윤회씨를 필두로 한 모임에서 ‘경질’이 검토된 것은 김기춘 비서실장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12월 6일자에서 정윤회씨가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비리나 문제점을 파헤쳐서 빨리 쫓아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감찰보고서에 실려있다고 보도했고( ▷ 관련 동아일보 기사 바로가기 ), <중앙일보>는 12월 8일자에서 역시 정윤회씨가 ‘김덕중 국세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이 감찰보고서에 실려있다고 보도( ▷ 관련 중앙일보 기사 바로가기) 했습니다.

이 보고서 내용은 사실일까요. 마침 희한하게 맞아떨어진 감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정현 의원과 김덕중 전 국세청장은 각각 6월과 8월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정현 의원은 7.30 보궐선거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자리에서 물러날 때만 해도 사퇴 배경을 놓고 경질성 등의 의혹이 분분했습니다. 김덕중 전 국세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인사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실세니 계파 논란이 달아오르자 박근혜 대통령은 정면승부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7일 일요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여당 지도부 오찬에서 “정윤회는 이미 오래 전에 내 옆을 떠난 사람이고, 동생(박지만 회장)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대통령 입에서 직접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 사이의 권력쟁투와 관련한 해명이 나온 겁니다. 물론 한 마디로 인사참사의 ‘배후’는 없다는 얘기이긴 했습니다.

이 발언은 다음날인 월요일자 신문의 1면을 일제히 장식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지목된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비서관, 안봉근 2부속비서관에 대해서도 “보좌진 했던 사람들도 정확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권력 암투를 벌였다면 내가 옆에 뒀겠나”며 세간에서 제기되던 ‘문고리 권력 3인방 문책설’마저 일축했습니다(▷ 관련 기사 : 박 대통령 “절대 안 흔들려”…문체부 인사 의혹엔 ‘함구’).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김기춘 비서실장도,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외부세력’ 정윤회도, 박지만 EG 회장도 대통령의 인사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되는데요. 정윤회씨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청와대 감찰보고서와 각종 인사들의 관련 증언, 그리고 정윤회 부부와 연관된 일에 직접 부처 인사를 뒤흔든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 ‘외부세력’ 정윤회씨나 박지만 EG 회장의 영향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우연히 이뤄진 일일까요? 그렇다면 문제의 청와대 ‘인사 참사’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청와대의 실세가 이 진돗개다.” 의문을 잔뜩 남긴 ‘강경 발언’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 앞에서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청와대에는 새롬이와 희망이라는 두 마리 진돗개가 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모두 박장대소했답니다. ‘농담’의 때와 정도를 가리는 게 어떨까, 싶지만 박 대통령의 ‘진돗개 사랑’은 유명한 얘깁니다. 지난 2월 5일 “한번 물면 살점이 떨어져도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을 공직자들에게 거듭 강조했습니다. 윗분의 ‘개 사랑’ 에 감화를 받아서인지, 개 비유도 넘쳐납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나는 정권의 와치독(감시견)”(12월2일자 <조선일보>)이라고 주장했고, 정윤회씨는 “(토사구팽) 사냥개였지만 이제 진돗개가 되겠다”(12월1일자 <중앙일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들의 비유는 또 우연일까요?

청와대는 강경한 검찰 수사 드라이브를 거는 동시에 언론사 명예훼손 ‘고소’로 사태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진 8명이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이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8일자에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조응천 전 비서관 검찰 진술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동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거든요. <세계일보>는 사상 초유의 언론사 압수수색까지 각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모로, 참 나쁜 ‘수첩’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