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스크랍

대통령의 자격, 여왕의 자격

아지빠 2014. 8. 24. 08:43

 

 

                                                                     진성여왕

 

<외신들의 시선>

“朴 당선땐 진성여왕 이후 천년만의 첫 女리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외신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AP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당선된다면 1000여 년 전 신라시대 진성여왕 이후 첫 여성 지도자가 될 것이라면서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국담당 선임연구원은 “한국 대선이 이슈보다는 이미지 대결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P는 17일 “한국의 박근혜가 역사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그가 당선된다면 그동안 선진국 중 성차별이 심한 국가인 한국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AP는 박 후보에 대해 “지난 18년간 한국을 통치한 독재자의 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선 시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면서 당선 시 안보 문제와 고용,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AP는 한국의 여성들은 동일근로를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으며 저임금 직종에 여성 노동이 집중돼 있고 높은 교육을 받고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어려움 속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젊고 능력 있는 한국 여성들이 아직도 한국보다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일하기를 선호하고 있다”면서 “박 후보가 승리한다면 한국 여성으로서는 큰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들러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박 후보의 승리는 성차별에 갇힌 한국 여성들에게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결혼과 육아를 겪어 보지 못한 박 후보에게 젊은 여성층이 공감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AP는 이런 면이 반대편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에게서 공격을 받고 있다면서 50∼60대 이상의 지지자들 역시 박근혜 자신보다는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투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스나이더 연구원은 14일자에 CFR 웹사이트에 게재한 한국 대선 관전평에서 “한국의 대선이 이슈에 대한 대립각보다는 박 후보의 경우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문 후보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 등 과거의 이미지, 여성 대통령 논란 등에 집중하면서 이미지 대결로 흐르고 있다”면서 “세대 간의 지지가 갈리는 가운데 학생운동을 겪었지만 지금은 경제 활동의 중추가 된 40대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세영 기자 go@munhwa.com

 

대통령의 자격, 여왕의 자격

세월호 유가족 면담 거부한 대통령 ‘박근혜’와 세월호 정국에 물러난 신하 위로하는 여왕 ‘박근혜’의 ‘스테이트크레프트’

한때 ‘보수의 장자방’이라고 불리던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 윤여준 이사장이 2011년도에 출간한 ‘대통령의 자격’이란 책을 최근에야 보았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한 작은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책 보기를 돌 같이 하는 평소의 습속과는 달리 독서의 욕구가 마구 솟구쳤다. 책의 제목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금 ‘대통령의 자격’을 정말 묻고 싶은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저자인 윤 이사장은 ‘대통령의 자격’을 ‘스테이트크레프트’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어사전에서 ‘스테이트크레프트’는 ‘국정·외교의 기술, 정치적 경륜, 정치적 수완’ 정도로 번역되지만, 윤여준은 '국가법인체의 행위자로 요구되는 각종 능력'으로 정리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최고 정치지도자인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역사 발전이란 구조적 필연성보다는 인물의 선택이라는 역사의 우연성에 더 비중을 두는 보수주의적 관점이 깃든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각 집단과 개인의 이해 관계와 기대 수준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현대 국가에서 최고 통치자의 리더십은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국가 흥망성쇠의 조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목숨을 건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면담요구를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세월호 사고 대응의 콘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는 발언으로 퇴진했던 김장수 전 청와대 안보실장과 세월호의 과적문제 등 국민안전에 필요한 정보수집활동엔 무능했던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 세월호 참사 정국으로 물러난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스테이트크레프트’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식들이라는 생각이다.

300이 넘는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의 기능과 역량 그리고 집행자인 공직자에 대해 광범위하고도 깊은 불신을 우리 사회에 각인한 일대 전환기적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사회에서 이 사건은 마무리 단계다. 이 사건에 대한 국가적인 평가와 과제 수립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벌써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은 듯 하다.

박 대통령은 21일 대변인을 통해 김영오 씨가 요구하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국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면담요청을 거부했다. 다음날인 22일 김영오씨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김 씨는 자신의 아이를 잃은 부모다. 그 아이를 대통령이 대표로 있는 국가는 구해내지 못했다. 면담 요청한 날은 38일째 목숨을 건 단식농성 중이었다. 이런 그의 면담을 대통령이 국회로 공을 떠넘기며 거부한 것이다. 이역만리서 온 교황도 만났던 그다. 이 땅의 대통령이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민들 눈에 대통령은 벼랑 끝에 놓인 국민을 벼랑 바깥으로 밀어내는 행위로 비친다. 아이는 울고 있는 데 씨끄럽다고 입을 틀어 막으려는 못된 계모·계부의 모습으로 비친다.

이런 마당에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의 일처리를 잘못해 물러난 김장수 전 안보실장을 불러 위로했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누구와 어디에 있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해 국민들 사이에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대통령에 관한 풍문을 담은 일본 극우언론의 보도가 사실처럼 굳어져 가는 와 중에 말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 보여주는 ‘스테이트크레프트’는 국민의 상처를 살피고 짖어진 마음을 모아내는 민주공화국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하만 챙기고, 자신의 사생활의 비밀만 지키려는 고대 왕국 ‘여왕’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1세기 현대 민주국가에서 어울리지 않는 박물관급 ‘스테이트 크레프트’다.

이런 종류의 ‘스테이트 크레프트’를 보여준 고대 왕국의 여왕이 진짜 있었다. 한반도에서 존재했던 왕국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신라 진성여왕이 그 주인공이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닦았던 선덕·진덕 등 전임 여왕들과 달리 진성여왕은 자신과 염문을 뿌린 각간 위홍이 죽자 그에게 대왕의 호칭을 내리는 등 자기사람 챙기기와 사생활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그런 여왕으로 인해 신라는 절단이 났다. 서쪽에서는 견훤이, 북쪽에서는 궁예가 반란을 일으켰다. 신라를 망하게 한 ‘스테이트크레프트’를 보여준 여왕이었다.

한반도의 역사를 보자면, 그 진성여왕 다음으로 여성으로서 통치자 반열에 오른 첫 인물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반드시 역사적 인물로 남을 것이 것이다. 선덕·진덕여왕들처럼 비교적 훌륭한 여성 지도자로 역사에 남길 바랄 것이다. ‘진성여왕’ 같은 평가를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생살’같은 자식들 수많은 세월호 유족들이 지금 울부짖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정국은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한 한치 앞을 나가지 못한다. 유족동의 없는 합의로 여야의 ‘스테이트크레프트’가 망가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격을 회복해 ‘스테이트크레프트’를 발휘할 때다. 무조건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만나라. 대통령이 병원에 가라. 그 다음은 역사가 첫 여성대통령을 평가할 것이다.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스테이트크레프트(state craft)는 헌법적 기본원리를 포함한 국가제도의 관리, 국민적 일체감 형성및 통합의 유지, 대내외 각종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의 수립 및 실행, 그리고 여러 정치세력 및 인물관리 등 '국가라는 법인체의 행위자로서 요구되는 각종 능력'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