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1985년 11월 프랑크 푸르니에란 사진가는 화산이 폭발해 이미 8만 명이나 사망한 콜롬비아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소녀는 용암에 떠밀려온 엄청난 양의 오물에 갇혔고 3일 동안 구조대원이 구출하려고 시도했다. 그 사이 전 세계는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이곳을 주시했다. 기중기나 배수펌프 같은 것이 신속히 오질 못했고 소녀는 허리를 다쳐 꼼짝할 수 없었다. 푸르니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국제적인 지원이 살아나길 바라면서 소녀의 고통을 증언하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놀랍게도 씩씩하게 얼마간을 견뎌냈고 사진을 찍는 푸르니에를 향해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심장 발작으로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례 2: 19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기자 케빈 카터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당시 케빈 카터는 아프리카의 내전, 기근사태 등을 오랫동안 사진으로 보도해온 적이 있는 직업사진기자였다. 사진기자들 가운데서 극히 일부만이 분쟁지역에서 취재를 한다.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사진기자들은 누구나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보수가 많아서도 아니고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인류가 빚어낸 최악의 자기혐오인 전쟁(혹은 분쟁)을 취재하는 것은 그 비극과 참상을 지구상의 나머지 인류에게 알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는 숭고한 의지 때문이다.
케빈 카터는 당시 일하고 있던 매체엔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수단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내려 급식센터로 향하던 중에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목격했다. 마침 이 소녀를 발견했고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으려 했다. 독수리 한 마리가 소녀의 뒤쪽에 내려앉았고 케빈 카터는 날갯짓을 하길 기다리다가 그대로 이 사진을 찍었다. 그 후 독수리를 쫓아냈고 소녀는 급식센터로 힘든 발걸음을 옮겼으며 케빈 카터는 1~2킬로미터를 내달린 끝에 한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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