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생존자 24명 “충격” 진술, 폭발보다 많은데도
[항소심] 윤종성 합조단 과학수사분과장 “직접 폭발흔적 없어, 비접촉폭발결론…어뢰 속 가리비 떼내라 지시”
천안함 생존자 가운데 24명이 최초 작성한 진술서에서 ‘충격’이라고 진술했다는 분석이 공개됐다. 그러나 당시 진술서를 직접 검토했던 합조단 관계자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천안함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의 법률대리인 심재환 변호사는 20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윤종성 전 민군합조단 과학수사분과장 겸 군측 조사단장(현 성신여대 교수)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에 나온 윤종성 전 단장은 천안함 생존자들의 진술서 원본을 두고 “당시 제가 진술서를 확인한 것으로 기억한다. 사안의 중대성 비춰 직접 검토했다”고 말했다. 윤 전 단장은 자신의 저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2011)에서 생존자들 대부분이 사고 당시 폭발음을 1~2회 청취했다고 썼다.
그러나 심재환 변호사는 천안함 사건 8년 여 만인 지난 7월 처음 재판부에 제출된 생존자 진술서 원본에 따르면 오히려 ‘충격’이라는 의견이 ‘폭발’이라는 의견 보다 훨씬 많았다고 지적했다. 심 변호사는 이날 법정에서 생존자 진술내용을 분석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생존자 58명 중에서 불확실 20명을 제외하면 ‘폭발’이라는 의견이 14명, ‘충격’이라는 의견이 24명이다. 1~2회 폭발음 청취라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심 변호사가 충격과 폭발을 진술한 생존자 38명 중 충격이라고 진술한 생존자가 더 많은데 왜 생존자 대부분이 폭발음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처럼 책에 썼느냐고 묻자 윤종성 전 단장은 “보고서에 검증한 내용이 실려 있을 것”이라며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많은 인원이 0.3미터 내지 1미터 가량 부상했다가 5초 후 넘어졌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변호인이 공개한 천안함 절단면 부근인 CPO 침실에 있던 생존자인 조타장 원사 김병남은 “폭발 아님. 외부 부딪치는 소리. 외부충격. 파공”이라고 진술했고, 갑판장 상사 김덕수는 “폭발음은 아니었다, 외부충격”이라고 진술했다. 이 두 사람의 진술은 처음 공개됐다. 전탐장 김수길 상사도 “충격. 상선같은 것이 부딪힌 것. 충돌. 충돌음”이라고 진술했다. 잠자고 있던 강봉철 상사는 “수면중이라 충격인지 폭발인지 전혀 모르겠음”이라고 진술했다. 이런 내용은 윤 전 단장 주장과 달리 합조단이 ‘천안함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합조단 보고서)에 요약 기록한 58명의 생존자 진술에도 빠졌다.
‘선체가 절단되는 폭발이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수 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윤 전 단장은 “포괄적으로 답변돼 있는데, 세부적으로 기억 못한다”고 말했다.
‘생존장병 60% 이상이 충돌이라고 한 진술조차 무시한 것 아니냐’고 하자 윤 전 단장은 “60%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는 생존자 분석만 갖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증거를 종합해서 분석했다. 처음엔 ‘좌초’와 다른 사실(침몰원인)로 상황보고가 됐다. 하지만 종합판단해서 어뢰에 의한 비접촉폭발로 결론을 내린 것이지 하나로 몰고 가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최초 언론보도인 YTN의 2010년 3월26일 밤 10시42분 뉴스에서 군 관계자가 ‘뭔가에 충돌한 뒤에 침몰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고, 이투데이가 다음날 새벽 1시에 같은 내용을 보도한 것에도 윤 전 단장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윤 전 단장은 “언론보도라는 게 100% 맞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상황보고 때도 충돌 좌초 얘기 나왔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각도가 다 틀리다. 종합한 결과 비접촉 폭발로 결론 내렸다”고 답했다. 당시 언론사 기자에게 충돌이라고 얘기한 군 관계자를 조사했는지 묻자 윤 전 단장은 “조사한 적 없다”며 “우리 합조단은 3월31일부터 시작됐고, 초기엔(그 이전엔) 검열실에서 상황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어뢰구멍에 붙은 가리비 직접 내가 떼라고 했을 것”
어뢰 구멍에 붙어 있던 가리비 조각을 두고 윤 전 단장은 자신이 직접 떼라고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2010년 11월4일 전쟁기념관에 보관중이던 이른바 천안함 1번어뢰의 프로펠러 구멍에 붙어있던 가리비 보도가 잇따르자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 3~4명이 이를 뜯어낸 것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에 (실체가 뭔지) 의뢰하기 위해 채취했다”고 해명했다.
윤 전 단장은 ‘어뢰에 붙어있는 증거 훼손 아니냐, 없애라고 지시한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묻자 ”우리 조사본부가 했는데, 했다면 제가 했겠죠. 없애라 한 게 아니라 정확히 채취해서 언론보도가 맞는지, (조사) 의뢰하기 위함이지, 없앴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뢰 구멍 크기가 2cm에 불과한데 국방부가 발표한 가리비 껍질의 크기는 ‘2.5×2.5cm’라고 한 것과 관련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윤 전 단장은 “어뢰 뒤쪽 구멍의 지름이 1.8cm에서 2.0cm으로 기억한다. 당시 가로세로 해서 가로는 좀 큰데, 세로는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더라. 생물 조개가 아닌 조개껍질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진술취지를 정리하면 이 가리비가 어뢰 폭발 전에 들어갔거나 폭발과 동시에 들어갔다가 사체가 됐거나 폭발후 들어가 붙었다는 뜻이냐고 하자 윤 전 단장은 “모르겠다”고 했다.
”직접 폭발흔적 없어 비접촉 폭발” 공방
폭발의 흔적이 있었는지 증인과 피고측 변호인의 공방이 있었다.
특히 어뢰폭발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타격을 입었다는 가스터빈실을 인양하고 충분한 조사없이 하룻만에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스터빈실 인양은 2010년 5월19일이었고,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는 20일이었다. 윤 전 단장은 “그 부분은 판단의 문제”라며 “폭발원점에서 어뢰 추진체를 건져올렸더니 폭약성분이 나왔고, 선체 생존자 진술, 사망자 상태를 조사해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계획대로 발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가스터빈실 인양사실을 조사결과 발표 당일에 공개하지 않아 ‘숨기려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윤 전 단장은 “숨긴다거나 은폐한다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결과가 그 정도 나왔기 때문에, 발표해도 되겠다 싶어서 발표한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천안함 내에 폭발로 인한 손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느냐’는 김형두 재판장의 신문에 윤 전 단장은 “직접 폭발(내부폭발 또는 접촉폭발)로 인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천안함 함수 절단면 천정에 붙어있는 형광등이 어뢰폭발에도 깨지지 않은 이유를 두고 윤 전 단장은 “모르겠다. 버블제트에 의해 직접 충격이 (형광등까지) 없을 수도 있다. 내진 (형광등) 얘기도 나왔던 것 같다. 다른 형광등보다 특수한 형광등이라는 얘기”라고 답했다.
폭발했는데도 시신과 생존자 상태가 어떻게 깨끗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윤 전 단장은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격실에 닿으면, 충격파가 짧은 시간 안에 소멸되고, 그 충격으로 내부인원이 (얻을 수 있는 손상은) 타박상 골절 열상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천안함 선체에 길이방향의 찢김이 없었다는 합조단 보고서 내용을 두고도 변호인과 증인은 공방을 벌였다. 합조단 보고서에 실린 천안함 함미 선저의 손상 모습을 두고 윤 전 단장은 “좌초를 염두에 둔 그런 긁힘으로 보이지 않는다. 부유물이라든지, 여러 긁힘은 될 수 있을지언정 좌초를 염두에 둔 스크래치는 아니다.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그러나 프로펠러 손상 여부 없음이라고 기록한 보고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변호인이 “천안함 프로펠러가 휘어진 것은 온 세상이 아는데 ‘손상여부 없음’이라고 기록한 것은 무슨 이유이냐”고 하자 윤 전 단장은 “안쪽으로 오그라들었다. 정확히 검토는 안했는데, 소관부서에서 손상이라는 것이 파손을 염두에 두고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라고 증언했다.
”어뢰 폭발 결론내는데 미국 도움 받아”
소나돔의 상태가 멀쩡한 것을 두고 재판장이 ‘1200톤급 초계함이 바닥에 미끄러져 침몰했다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윤 전 단장은 “상당히 파손됐으리라 추정한다. (하지만 소나돔 상태는) 원 상태였다”고 답했다.
한편, 어뢰 폭발로 결론을 내는데에 자체조사 보다 미국조사팀의 도움이 컸다는 증언도 나왔다.
윤 전 단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미 미국 측에서는 천안함 함미 선체를 보고 어뢰공격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한 것을 두고 “당시 우리들은 어뢰로 침몰한 모습을 본적이 없다. 침몰원인 분석은 상당히 진행한 상태였다. 주로 폭발분과에서 했다. 그 상태에서 함미를 보고, 우리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저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에클스 제독은 선체 보고 이거는 어뢰 공격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고 증언했다. ‘우리 경험이 없다는 건 미국 의견에 의존했다는 것 아니냐’는 신문에 윤 전 단장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천안함 사망자 46명 화상 없는 익사"
최문순 의원, 국과수 자료 공개··· "물기둥은 없었다"
2010년 06월 24일 (목) 17:47:41 조현호 기자
천안함 사고 당시 생존장병들이 물기둥, 섬광, 화염을 보지 못했으며, 사고직후 기름냄새를 맡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일부 생존자는 선체가 뜯겨져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희생자들의 사인은 대부분 익사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소견도 나왔다.
24일 국방부가 최근 최문순 국회 천안함침몰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생존장병 58명의 주요진술 내용' '사체검안 결과 보고서' '외국조사단 명단'에 따르면 생존장병 58명 가운데 물기둥이나 섬광 화염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가운데 31명은 한결같이 기름냄새를 맡았다고 진술했다.
타수 임무를 수행중이던 최아무개 병장은 "큰 굉음이 충격음인지 폭발음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선체가 뜯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세탁기로 세탁 후 탈수기쪽으로 이동하던 전아무개 이병은 "'땅'과 '쿵'의 중간 소리를 내며 철판에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을 받은 뒤 배가 떠오르는 느낌도 받았다"고 진술했다.
CPO 침실에서 책을 읽으며 잠을 청하던 김아무개 상사는 "충격 후(2∼5초) 폭발음이 들렸으며, 외부에서 충격에 의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고, 당직 근무중이던 서아무개 하사는 "내부 소행 같지는 않으며 외부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침실에서 취침중이던 김아무개 상사는 "사고원인은 북한 잠수정이나 반잠수정 소행으로 본다"고 주장했고, 홍아무개 중사는 "개인적으로 어뢰 사고가 발생됐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포술부 침실에서 음악을 듣던 김아무개 하사는 "사고원인은 어뢰 또는 기뢰로 생각된다"고 했고, 당직근무중이던 이아무개 하사와 허아무개 하사도 각각 "어뢰로 생각된다" "기뢰보다는 잠수함 어뢰라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왜 어뢰나 기뢰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이와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4월15일 함미, 23일 연돌, 24일 자이로실에서 수습된 시신 40구에 대한 사체검안 결과 '외상 또는 질식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희박하며, 익사로 추정된다'는 종합소견을 최근 최 의원에게 제출했다.
국방부는 외국인 조사단 24명의 명단도 제출했다. 이 자료를 보면 조사팀장은 각각 미국(미해군준장 토마스 J. 에클스) 호주(파웰 중령) 스웨덴(에그니 중령) 영국(데이비드 맨리 대령급)만 실명의 기재돼있고 나머지 조사단원은 직위와 인원수만 포함돼있었다.
과학수사분과에 미국인 6명(중령 1·대위 1, 민간인 4), 호주 2명(중령 1-조사팀장·소령), 스웨덴 2명(중령 1-조사팀장, 민간인 1), 영국 1명(민간인 1) 등 모두 11명(군 4, 민간인 7)으로 구성됐다. 함정구조/관리분과는 미국인 2명(민간인 2), 호주인 1명(대위), 스웨덴인 1명(중령), 영국인 1명(민간인) 등 모두 5명(군 2, 민 3)이었다. 폭발유형분과엔 미국인 3명(대위 1, 민간인 2), 스웨덴 1명(민간인)으로 짜여졌고, 정보분석 분과는 미국인 3명(대위 1, 민간인 2)로 구성됐다.
천안함은 미국잠수함과 충돌 - 일본언론이 보도하네요 [81]
Ken (k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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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ia Pacific Journal: Japan Focus
http://www.japanfocus.org/-Tanaka-Sakai/3361
A US Submarine that sank by the Number 3 Buoy
The sinking of the Cheonan remains unsolved. But around the time of this incident another sinking occurred that has hardly been reported in Japan. Near the site of the sinking of the Cheonan, a colossal object, which appears to be a US submarine, was found to have sunk. An ROK underwater team searched for, and on April 7 South Korea’s KBS TV showed, a US helicopter carrying what seems to be the body of a US soldier. KBS is a public broadcasting station with the highest credibility in South Korea.
제3의 장소에서 침몰한 미국 잠수함
천안함 침몰은 아직 미궁이다. 그러나 그 사고 시각에 또 발생한 다른 침몰은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천안함이 침몰한 그 근처에 미국 잠수함으로 보이는 거대한 물체가 침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 수중팀은 수색을 하였고 남한의 KBS TV 는 미군 헬리콥터가 미군시체로 보이는 것을 운반하는 것을 보도하였다.
A Suppressed KBS TV Scoop
ROK and US authorities did their best to hide the fact that a US submarine sank at about the same time as the Cheonan. The ROK authorities did not announce the sinking of the US submarine, nor did they call Warrant Officer Han’s death an accident which occurred while searching inside a US submarine. Instead, they announced that he died while searching for Cheonan survivors’ bodies. Warrant Officer Han was honored as a national hero.
South Korean honor guard bearing the coffin of Han Joo-ho
통제된 KBS TV 특보
한국과 미국 당국은 천안함과 동시에 미국 잠수함이 침몰한 사실을 숨기기에 최선을 다하였다. 한국 당국은 미국 잠수함의 침몰은 보도하지 않았고 한준위의 사망은 잠수함 내부를 수색하다가 발생한 사고라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천안함 생존자들을 수색하다가 죽었다고 발표하였다. 한준위는 국가 영웅으로 추대 되었다.However, the memorial for Warrant Officer Han was performed not at the site of the Cheonan, but at the site of the sunk US submarine. US Ambassador Kathleen Stevens and Commander-in-Chief Walter Sharp of US forces in Korea attended. They praised Han and offered solatium to the bereaved family. The attendance by high US officials and monetary payments probably were for the purpose of suppressing anti-American sentiment that might blame the delayed search for Cheonan survivors caused by the precipitous US search for its own victims, resulting in Han falling victim.
그러나 한준위의 장례식은 천안함이 아니라 미군 잠수함 침몰장소에서 거행 되었다. 주한 미국대사 Kathleen Stevens 과 주한 미군사령관 Walter Sharp가 참석하였다. 그들은 한준위를 칭송하였고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였다. 미국 관료들의 참석과 위로금의 목적은 미군희생자들의 황급한 수색이 한준위 희생의 원인이 되었고 천안함 생존자들의 수색이 지연되었다는 비난으로 생기는 반미정서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길고 자세한 내용은 직접 JAPANFOCUS 사이트에서
http://www.japanfocus.org/-Tanaka-Sakai/3361
[영상] 천안함 TOD 반파직후 ‘미상의 점(물체)’ 존재 확인
동영상 입수, 함미-함수 사이에 있다 조류 거슬러 올라가…사고와 관련성 주목
천안함이 두동강 난 이후 함수와 함미 사이에 정체불명의 ‘제3의 점(물체)’이 TOD(열상감시장치) 화면상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 물체의 정체가 천안함에서 떨어져 나온 부품이나 장비의 일종인지, 천안함과 무관한 다른 무엇이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안함 TOD 동영상은 국방부가 당시 사고직후 영상은 없다고 했다가 뒤늦게 존재사실이 밝혀지는 등 공개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이 영상은 천안함 국정조사특위 위원과 일부 언론사, 검찰, 법정 등에 제출됐으나 일반에 전면적으로 공개한 적은 없었다.
TOD 상에 등장한 이 미상의 점은 조류의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한동안 함수 주변에 남아있다가 화면상에서 사라졌다. 이 물체의 실체에 대해 당시 TOD를 운용하던 초병은 모른다고 진술했다.
16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천안함 사고 전후로 백령도 초소에서 촬영된 TOD 동영상을 보면, 백령도 연화리 서방 2.5km 지점(추정)에서 TOD에 적힌 시각으로 2010년 3월 26일 21시22분40초부터 천안함이 두동강 난 장면이 등장한다. TOD시각은 실제시각 보다 1분40초 늦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이 영상에는 왼쪽에 함미가 보이다 곧 완전히 침몰(21시23분40초)하고, 오른쪽에는 함수가 떠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함수와 함미 사이에 작은 ‘검은 점’(물체)이 수면 위로 보인다. 이 TOD의 경우 열이 감지되면 검은 색으로 나타난다. 함수와 함미가 모두 좌측으로 조류에 떠내려가고 있는데도 유독 이 물체는 함수 쪽으로 조류를 거슬러 이동하는가 하면, 함수가 한참 멀어져도 조류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떠 있다.
특히 이 물체가 TOD 시각 21시23분23초쯤부터 함수쪽 방향으로 가까이 ‘이동’하면서 함수는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해 약 3분 뒤인 21시25분53초쯤엔 180도 돌아간 것으로 영상에 잡힌다. 21시26분대부터는 함수가 계속 화면의 왼쪽으로 조류를 따라 흘러가는데 반해 이 물체는 조류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비슷한 자리에 머물러있다. 이에 따라 이 물체와 함수는 계속 멀어지는 것이 영상에 나타난다. 이 물체는 TOD 시각으로 21시31분 정도까지 화면상에 보이다 사라진다.
이와 관련해 당시 TOD 동영상 촬영을 했던 백령도 초병 이재홍씨(당시 일병)는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천안함 명예훼손 공판에 출석해 이 검은 점(물체)의 실체에 대해 “당시엔 몰랐다”며 “지금 처음 봤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초병이 멀어져가고 있는 검은 점(물체)을 계속 화면에 넣기 위해 초점을 이동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과거 천안함에서 떨어져나간 부유물 또는 부속품의 일부라고 밝힌 적이 있다.
신상철 대표는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화면을 보면, 조류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함수가 떠내려가는데, 미상의 점(물체)은 그 반대로 이동하는 것이 발견된다”며 “자세히 보면 그 점이 함수 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함수가 시계방향으로 갑자기 돌아가는 모습도 잡힌다”고 분석했다.
신 대표는 “그 점과 관련성이 있는 무언가가 함수와 물리적 접촉이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혹시라도 이것이 천안함을 반파시킨 잠수함의 일부가 드러난 영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주장했다.
[0호] 2014년 09월 17일 (수)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천안함 전탐장 “‘쿵~쾅’ 다른 함정과 부딪힌 소리로 알았다”
공판 증언, 폭발음 ‘선저 좌측’이라던 합조단과 달리 “오른쪽서 청취” “1.1초 주기 아니다”
천안함 침몰 당시 국방부가 발표한 어뢰 폭발지점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던 생존자가 ‘폭발음’(충격음)에 대해 다른 함정과 부딪히는 소리로 알았으며, 폭뢰와 같은 폭발소리와는 달랐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 소리를 청취한 위치도 선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들었다고 이 생존자는 전했다.
천안함 사고 당시 전탐장(수상 접촉물 탐지 책임자)이었던 김수길 상사는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합조단 민간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출석해 이 같이 증언했다.
2010년 3월 26일 당시상황에 대해 김 상사는 “당직시간인 그날 16~20시 근무후 교대한 뒤 취침하러 ‘CPO실(수면하침실)’로 내려와 21시20분쯤 스탠드를 켜고 눈감고 있을 때 ‘쿵’소리가 들렸다”며 “다른 선임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다른 함정하고 부딪혔나 하고 있었는데, 몇십초 만에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넘어졌다. 쪼그리고 있다가 눈 떠보니 함정이 거꾸로 서있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전탐장 업무에 따라 소리에 예민해 쿵~쾅 하는 두차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순간 들었던 소리에 대해 김 상사는 “뭐에 부딪히는 소리인 줄 알았다”며 “(천안함보다) 큰 함정이거나 동급함정에 부딪힌 줄 알았다”고 전했다.
김 상사는 “쿵소리(를 들은 뒤) 반동에 의해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고 튀어 나와 나가려고 하고 있었으며, 그 후 들었던 ‘쾅’ 소리는 처음 ‘쿵’ 소리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두번째 쾅 할 때도) 물체(함정)와 배(천안함)가 부딪힌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다른 함정과 충돌한 경험은 없지만, 수중폭뢰실험을 통해 폭발소리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수중폭뢰실험(훈련)을 했던 경험에 대해 김 상사는 “함정(의 함미 쪽에서) 폭뢰에 있는 핀셋을 뽑으면 자동으로 폭뢰가 배 아래로 굴러내려가면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폭발하면 물기둥이 엄청나게 크게 솟아오른다”며 “폭발시 함정이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함미쪽이 털린다(흔들린다는 뜻-기자 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처음 쿵소리 났을 때는 폭뢰와 다른 소리였으며, 뭔가의 물체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는 것인가’, ‘부딪히는 소리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평소 해왔던 수중폭뢰 실험에서의 소리와 달랐다는 것인가’ 등 거듭된 김형태 변호인의 신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폭뢰실험, 사격훈련 했을 때 터지는 소리와 쿵 쾅 소리가 유사하다고 봤느냐’는 피고인 신상철 대표의 신문에도 김 상사는 “폭뢰는 터질 때 팡 소리가 나는데, (천안함 때는) 퉁하고 부딪히는 소리였다”고 밝혔다.
그 폭발음(충격음)의 강도에 대해 김 상사는 “(쿵 소리에)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배가) 외부에서 부딪히면 ‘쿵’ 하는 느낌이었다”며 “(쿵 소리 직후 나가 떨어질)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쿵’ 소리가 났을 때 보고서의 천안함 승조원 위치 표 상 13번 격실(수면하침실-CPO)에 있었으며, 절단면 바로 옆이었다고 김 상사는 전했다.
또한 당시 침실에 누워있는 것을 기준으로 ‘폭발음’(충격음)의 위치에 대해 김 상사는 “머리를 함수방향으로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내가 누워 있을 때 방향으로) 내 왼쪽 방향에서 처음 쿵 소리가 났다”며 “함수 우현 쪽에서 쿵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이는 국방부 합조단이 보고서에서 어뢰가 천안함 선저 중앙 ‘좌현’에서 폭발했다는 것과 상이한 증언이다.
두차례 연달아 청취했다는 폭발음(충격음)의 주기에 대해 김 상사는 재판 초기엔 “수십초” 또는 “20~30초”라고 진술했다가 사고 직후 자신이 3~5초라고 인터뷰했던 기사내용을 제시하자 “그 정도였던 것 같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김 상사는 국방부 합조단이 제시한 공중음파 감지 주기인 ‘1.1초’에 대해서는 “1.1초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합조단이 자신을 조사한 경위를 두고 김 상사는 “사고 직후 처음엔 쿵~쾅 소리에 (합조단 등이)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어뢰 발견 이후 어뢰와 기뢰가 추정된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고 난 이후에 조사하러 왔다”고 전했다.
전탐 업무 수행 중 이상징후와 관련해 김 상사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음탐사와 전탐장이 이상징후를 놓고 협의한 것이 있는지에 대해 “접촉물이 있으면 분석에 의해 (의견교환)할 수 있으나 접촉물이 없었다”고 밝혔다.
‘잠수함이 와서 어뢰를 쏘는데 모를 수 있느냐’는 김형태 변호사의 신문에도 그는 “(모를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언론접촉 제한과 관련해 김 상사는 수도병원에서 가족면회만 허용했으며, 언론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개별적으로 언론을 접촉하지 말라는 얘기는 있었는지’에 대해 그렇다고 답했으며, 검찰 신문에도 “함장이 아닌 수도병원 쪽에서 자꾸 언론에 나오면 안되니 가족이 있거나 결혼한 사람은 면회가 가능하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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