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미과
앵두나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고, 과수로 뜰에 심거나 인가 주변의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는 3m에 달하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나무 껍질이 검은빛을 띤 갈색이고, 어린 가지에 털이 빽빽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7cm의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 표면에 잔털이 있고 뒷면에 털이 빽빽이 있으며, 잎자루는 길이가 2∼4mm이고 털이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또는 같이 피고 흰빛 또는 연한 붉은빛이며 지름이 1.5∼2cm이고 1∼2개씩 달린다. 꽃받침은 원통 모양이고 5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타원 모양이고 잔톱니와 털이 있다. 꽃잎은 5개이고 넓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며 끝이 둥글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꽃잎보다 짧으며, 씨방에 털이 빽빽이 있다.
열매는 핵과이고 둥글며 지름이 1cm이고 6월에 붉은빛으로 익는다. 성숙한 열매는 날것으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상용으로도 가치가 있다. 번식은 씨뿌리기·꺾꽂이·포기나누기 등으로 한다. 한방에서는 열매와 가지를 약재로 쓰는데, 열매는 이질과 설사에 효과가 있고 기운을 증강시키며, 불에 탄 가지의 재를 술에 타서 마시면 복통과 전신통에 효과가 있다.
2)
이명/지방명/한약명: 앵두낭, 앵주낭, 에영지낭, 외영뒤낭, 앵두나무 |
꽃은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이며 잎보다 먼저 또는 같이 피고 지름 1.5~2cm로 둥글며 1~2개씩 달리고 소화경은 길이 2mm 정도로서 털이 빽빽히 난다. |
6월에 열매가 성숙되며 핵과는 잔털이 있고 둥글며 지름 1cm 정도로서 붉은색으로 익고 소화경은 긴 것은 길이 4m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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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앵도(櫻桃)나무 혹은 앵두나무 양쪽을 다 쓴다. 그러나 한자 이름에서 온 앵도가 맞는 이름으로 생각된다. 앵도의 열매를 보면 티없이 맑고 붉어 윤기가 흐르며 약간 반질반질하다. 옛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입술을 앵도 같은 입술, 즉 앵순(櫻脣)이라 하여 빨갛고 예쁜 것의 대표로 앵도 열매와 비유하였다.
고려사 지(志)의 길례대사에서 제사의식을 기록한 것을 보면 <보름 제사 때에 제수의 가짓수는 같으나 다만 고기를 쓰지 않고 주고(奏告-임시 종묘에 고하는 일)에는 일률로 술을 사용한다. 2월 보름에는 이름을 드리는바 만일 춘분 날짜가 보름이 지나서 있을 때에는 따로 날을 받아서 드린다. 4월 보름에는 보리와 앵두를 드리고 7월 보름에는 피와 기장쌀을, 8월 보름에는 깨를, 9월 보름에는 벼와 쌀을, 12월 보름에는 생선을 드린다>하여 제물로 올린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제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 태종11년(1411) 5월11일 임금이 말할기를 <종묘에 앵도(櫻桃)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의궤(儀軌)에 실려 있는데, 반드시 5월 초하루와 보름 제사에 같이하게 되어 있다. 만약 초하루 제사에 미쳐 익지 못한다면 보름 제사를 기다려서 겸행하게 되어 있으니, 진실로 융통성이 없어 인정에 합하지 못한다. 앵도가 잘 익는 때는 바로 단오 때이니, 이제부터는 앵도가 잘 익는 날을 따라 제물로 바치게 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구애하지 말라.>하였고 12년(1412) 8월8일에는 시물(時物)을 종묘에 제물로 바치는 내용 중에<2월에는 얼음, 3월에는 고사리, 4월에는 송어, 5월에는 보리·죽순·앵도·외·살구, 6월에는 능금·가지·동과 (東瓜), 7월에는 기장과 피·조, 8월에는 연어·벼·밤, 9월에는 기러기·대추·배, 10월에는 감귤, 11월에는 고니, 12월에는 물고기·토끼이었다>하여 조선조 초기까지는 앵도가 필수 제물이었던 것 같다.
앵도나무 열매는 임금님이 꽤 좋아하였던 과일로서 몇 기록이 있다. 성종5년(1453) 6월3일에는 행사직 정척이 앵도 1합을 바치니, 명하여 나누어 먹게 하고 모편선자(毛鞭扇子)와 종모자를 내려 주게 하였다. 19년(1487) 5월2일 장원서에서 진상한 앵도 두 소반을 승정원에 내려 주면서 전교하기를, <“하나는 장원서에서 올린 것이고, 하나는 사처에서 진상한 것이다. 무릇 유사들은 마땅히 맡은 직무를 다하도록 하라. 지금 장원서에서 올린 앵도는 살이 찌고 윤택하지도 않은데다 늦게 진상하여 도리어 사처에서 진상한 것만 못하다. 이렇게 제물을 올리는 것이 어찌 마음에 편안하겠는가? 승정원에서 그것을 함께 맛을 보고 해당 관원의 책임을 물어 아뢰라>하였고 25년(1492) 5월13일에도 설성부수 철정이 앵도를 바치자, 전교하기를, <“성의가 가상할 만하니, 그에게 활 1장을 내려 주도록 하라.”>하였다. 연산3년(1496) 5월16일 조에도 설성수 철정이 앵도를 드렸는데, 승지 송일이 아뢰기를, <“신하가 사사로이 바치는 것은 불가하오니 받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철정은 전년에도 바쳤다. 이것이 심히 의(義)에 해롭지 않으므로 받는다.”하고, 각궁(角弓) 한 개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앵도나무는 자라면서 수분이 많은 곳을 좋아하므로 동네의 우물가에 흔히 심었다.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린 한많은 옛 여인네들은 앵두나무가 심겨진 우물가에서 시어머니로부터 지나가는 강아지까지 온동네 흉을 입방아 찧는 것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유행가 가사처럼 공업화가 진행된 70 년대초 소문으로만 듣던 서울로 도망칠 모의(?)를 한 용감한 시골처녀들의 모임방 구실을 한 것도 역시 앵두나무 우물가이었다.
중국 화북 지방 원산으로 정원에 심는 낙엽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3m까지 자란다. 어린 가지에는 털이 촘촘하며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기로 달린다. 잎 양면에 털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꽃이 1∼2개씩 모여 핀다. 열매는 둥글며 6월에 빨갛게 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