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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축제 새들은 죽어간다

아지빠 2022. 10. 12. 08:32

이러다 다 죽어!”…3년만의 불꽃축제, 새들은 어땠을까요?

등록 :2022-10-12 07:00/수정 :2022-10-12 07:46

김지숙 기자

불꽃놀이 소음과 빛, 한강 서식 동물들에 악영향

“생태보전지역 인근에서 대형 행사 과연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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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22’에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새들이 얼마나 빛과 소음에 예민한 동물인데… 이러다 다 죽어!”

지난 토요일(8일) 서울 한강에선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세계불꽃축제는 한화그룹이 2000년부터 사회공헌 사업으로 진행해온 축제로 매년 100만 명이상의 인파가 몰린다. 올해도 지난 8일 저녁 105만 명의 시민이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각 한강의 또 다른 생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퍼지고 있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누리꾼들이 지난 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열린 뒤 수백 마리의 새들이 사체로 발견된 기사를 공유하며 우려를 표했다. 비건클럽 기획단 헤루 활동가는 “폭죽놀이는 하늘의 새는 물론 육지의 동물에게도 큰 위협이 된다. 매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새들이 죽어가고 있다. 대기오염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최근 불꽃놀이의 악영향에 대한 글을 읽고 정말 충격 먹었다. 다시는 모르던 때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적었다.

이날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정한 세계 철새의 날(World Migratory Bird Day)이었다. 유엔환경계획은 매년 5월, 10월 둘째주 토요일을 세계 철새의 날로 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세계 철새의 날 슬로건은 ‘새들을 위해 불을 꺼주세요’였다. 매해 최소 2%씩 증가하는 인공 조명은 조류의 이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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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9시께 이촌 한강공원. 세계불꽃축제를 보려는 시민들이 앉았던 곳에 강아지풀이 꺾여있다. 이승욱기자

올해 불꽃축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펼쳐진 것으로 기존 원효대교와 한강철교 구간에서 진행되던 것이 마포대교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이날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는 오후 7시20분부터 8시30분까지 70여분간 폭죽 10만발이 발사됐다.

이날 불꽃축제가 벌어진 한강공원은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 큰기러기, 황조롱이 등 약 56종의 겨울철새가 매년 찾는 월동지다. 멸종위기 2급 큰기러기는 이미 지난 9월23일 한강하구에 도착한 것으로 포착됐다. 큰기러기는 이렇게 한강을 거쳐 천수만, 금강, 영산강, 우포 등으로 이동해 겨울을 나게 된다.

마포대교 인근 밤섬 또한 서울시가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람사르습지로 지정될 정도로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원앙, 황조롱이, 솔부엉이 등 천연기념물 9종뿐 아니라 왜가리, 가마우지 등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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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겨울 철새인 큰기러기 무리가 지난달 23일 한강하구에 내려앉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보호동물이다.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미국에서는 9·11사태 이후 매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거대한 빛을 상공으로 발사하는데, 이 조명에 갇혀 이동하던 철새가 탈진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 이 벌어진다. 때문에 2005년부터 조류학자, 생태 자원봉사자들은 추모일이 되면 인근에 대기하면서 빛에 갇힌 새의 수를 센다 . 빛에 갇힌 새들이 1000마리가 넘으면 새들이 길을 찾을 수 있게 20분 동안 불을 끄는 것이다 . 미국 비영리 조류보호단체 ‘오듀본 협회’(National Audubon Society)는 이렇게 ‘추모의 빛’에 갇혀 희생되는 새의 수가 한해 16만 마리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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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팔당호를 찾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흰꼬리수리의 늠름한 모습.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염형철 대표는 “한강 밤섬, 여의샛강생태공원에는 희귀조류뿐 아니라 수달, 너구리 등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불꽃놀이의 소음과 대기오염, 인공 조명이 안 그래도 다양성이 줄고 있는 한강 도심구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서울시가 밤섬 인근 대규모 행사를 허가하면서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따져봤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불꽃놀이가 조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국내 연구는 아직 없다. 그러나 2020년 체코 자연보호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물새, 맹금류, 까마귀 등은 불꽃놀이의 음향 및 시각에 모두 반응하며 특히 폭발 당시 음향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들은 폭발 당시 압력파를 감지해 심박수 증가, 불안, 탈출 반응 등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은 물새에서 더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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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직원들이 2019년 3월22일 오전 서울 한강 밤섬에서 조류 산란기를 맞아 민물가마우지 등이 겨울 동안 남긴 배설물을 고압 살수기로 씻어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네덜란드에서 2008년~2010년 3년 간 새해 전야 불꽃놀이에 새들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잠잠하던 새들도 폭죽이 발사되면 갑자기 500미터 상공으로 빠르게 비행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전문가들은 새들이 공포에 질려 어둠 속에 솟구치면 방향 감각을 잃고 자동차, 건물, 나무 심지어 서로에게 부딪혀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이 같은 부작용 때문에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는 2018년부터 불꽃놀이 물품 판매를 중지하고 사용을 금지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