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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왜 국방비 수천억원을 깎았나

아지빠 2021. 11. 20. 17:54

국회는 왜 국방비 수천억원을 깎았나 박수찬 2021.1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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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지난달 18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프레스데이 행사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계룡대가 뒤집어졌다.”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내년도 방위사업청 예산안을 접한 군 관계자는 이같은 말을 남겼다. 예산안에 대한 군 내부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날 국회 국방위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국방예산안 중 방위사업청이 관리하는 방위력개선비 6529억 원을 감액하고 407억 원을 증액했다. 감액 규모가 6122억 원에 달한다.

방위력개선비는 전력증강과 직결되는 비용이다. 60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 삭감된 국방위 의결 내용에 계룡대와 일선 부대를 중심으로 “무기도입 전문가라고 해서 맡겨놨더니, 결과가 이게 뭐냐”며 ‘방사청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이유다.

지난 2012년 국회가 2013년도 국방예산안을 심의하면서 방사청 소관 예산 4009억 원을 깎았을 때보다 더 큰 삭감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안보태세가 흔들린다” “재난지원금 마련하려는 의도”라고 치부하기에는 삭감 이유가 명확하다. 방사청을 중심으로 한 국방획득체계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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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병들이 무인정찰기를 띄우기에 앞서 설정 등을 입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육해공군 모두 삭감 대상 됐다

큰 폭의 예산 삭감이 이뤄질 것이라는 징후는 예전부터 포착되고 있었다.

지난달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는 방위사업청이 관리하는 방위력개선사업에 대한 문제점들이 잇따라 지적됐다. 예산 심사를 앞두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제출한 예산안에 비판적인 견해가 여야에서 계속 나왔다.

국방위 예산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된 내년도 방위력개선사업은 33개. 일부 금액만 깎인 사업이 많지만, 전액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사업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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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AH-64E 공격헬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동부전선에서 쓰일 수직이착륙정찰무인기는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이 확보되지 않아 추진계획 보완 후 사업 추진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예산 31억3500만 원이 모두 삭감됐다.

군 지휘통신의 핵심 장비인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블록1 성능개량은 사업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로 내년 예산 47억 8400만 원이 깎였다.

신경작용제 예방 패치 개발(14억1900만 원), 화생방보호의Ⅱ(약 7억 원),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성능개량(52억여 원)도 전액 삭감됐다.

육군이 운용중인 AH-64E와 유사한 수준의 공격헬기 36대를 도입하는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비 154억여 원, 공군 C-130H 수송기 성능개량비 30억여 원도 내년 국방예산안에서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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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청해부대 36진 소속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최영함이 12일 해군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파병 임무를 위해 출항하고 있다. 해군 제공© 제공: 세계일보

‘산소호흡기’ 수준의 예산만 남은 사업도 적지 않다. 신형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비는 2600만 원만 남긴 채 3283억 원이 삭감됐다.

개발업체 대표와 사업책임자가 사법처리 대상에 오른 특수작전용 기관단총은 사업추진이 불투명해지면서 11억6800만 원이 깎여 1300만 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특전사 요원들에게 물자를 공수하는데 필요한 위성항법체계(GPS)화물낙하산(3100만 원), 소화기음향탐지기(4200만 원), 특수전지원함(6600만 원), 경항공모함(5억 원)도 실제 사업추진에 필요한 비용보다 훨씬 낮은 예산이 책정됐다.

이동형 장거리레이더는 180억 원, 지상전술C4I 2차 성능개량은 300억 원, 해상작전위성통신체계Ⅱ는 100억 원, 대포병탐지레이더Ⅲ 연구개발은 30억여 원, K1E1 전차 성능개량 연구개발은 8억8000만원, 신형 고속함을 만드는 검독수리B 배치Ⅱ는 120억 원이 삭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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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인천시 서구 경인항 인천터미널에서 열린 2021 국가 대테러 종합훈련에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대원들이 육상 테러 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제공:

내년도 예산이 절반으로 줄어든 사업도 있다. 패트리엇 성능개량 2차 사업은 201억여 원, 대형수송기 2차 사업은 158억여 원, 대형기동헬기Ⅱ는 353억여 원, F-35A 성능개량은 200억여 원이 깎였다.

◆구멍투성이 예산안…삭감은 예고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국방비에 ‘메스’를 들이대면 “안보태세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생긴다.

하지만 내년도 국방예산안은 사정이 다르다. 급하지 않은 사업, 문제점이 지적됐는데도 예산안에 포함된 사업,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국방위 여당 간사이자 예산소위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9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국방부 예산이 시대에 맞는 최첨단 무기 확보를 위한 예산편성인지, 장병 사기를 위한 편성인지, 육해공 개념을 뛰어넘는 다양한 노력과 방책이 제시돼야 하는데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예산편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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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HH-47 대형기동헬기가 코로나19 백신을 싣고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세계일보

내년 사업비 14억1900만 원이 전액 삭감된 신경작용제 예방 패치 개발 사업은 2007년 소요결정 이후 14년이 지났음에도 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해당 패치는 의약품적 성격이 강해 제약·바이오 업체가 개발에 참여해야 했는데, 화생방 제품을 납품하던 중소업체가 개발을 수년간 진행했다. ADD 조사 결과 해외에서도 개발에 성공한 나라가 없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내년도 예산안에 관련 사업비를 포함했다. 이에 국방위는 “과거 기준미달 등으로 사업이 두 차례 중단되어 소요 삭제 가능성이 높고, 핵심기술 개발 후 17년이 지나 신규 소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비를 삭감했다.

특수침투정 사업은 감사원으로부터 사업관리와 기본설계 시험평가 업무 등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아 선행연구를 새롭게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13억원이 편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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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C-130J 수송기가 성능점검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이 예산은 국방위 심의에서 지적을 받아 대부분 삭감됐고, 특수침투정과 패키지로 진행되는 특수전지원함 사업비도 대부분 깎였다.

적지에 침투한 특전팀에게 물자를 공중 보급하기 위한 GPS 화물낙하산 사업은 전력화 일정 지연으로 올해 사업비 46억여 원이 이월되는데도 내년 사업비가 별도로 잡혔다. 국방위의 ‘메스’를 피하지 못한 이유다.

군과 방사청의 사업추진 방식을 지적한 대목도 있다. 소요제기 및 소요결정과 통합, 사업추진 선행연구, 연부액(매년 사업추진단계별로 지급하는 금액) 과다 책정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의 경우 “비대칭 전력을 늘려야 할 시점에 헬기 증강이 바람직한지 재판단할 필요가 있고, 대형공격헬기는 항공작전사령부가 36대, 주한미군이 48대를 갖고 있어 추가로 36대를 획득할 필요성이 낮다”며 154억여 원 전액을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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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다만 부대의견에 “합참 등은 북한군 기갑전력 외에 갱도 파괴 등을 망라해 공격헬기를 공세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군의 공격헬기와 기동헬기 전력 소요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거쳐 국회 보고 후 사업을 추진하라”고 명시했다.

패트리엇 성능개량 2차 사업도 국산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 개발과의 중복 문제가 지적돼 내년 사업비 중 50%가 깎였다. 국방위는 “L-SAM과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M-SAM) 추가 투자를 통한 국내 방위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형수송기 2차 사업과 대형기동헬기Ⅱ는 “진행중인 선행조치를 반영해 예산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50% 삭감됐다. F-35A 성능개량은 과도한 연부액 설정으로 내년 사업비가 반토막났다.

신형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은 기존 2대 외에 최근 소요가 제기된 2대 추가 도입을 통합해 4대를 일괄 획득하자는 의견이 국회에서 나온 것이 반영됐다. 4대를 한 번에 도입하면 총사업비는 10% 줄어들지만, 사업절차는 1년 지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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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지난해 11월 18일 열린 2020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서 바이어들이 총기를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이에 국방위는 내년 사업비 3283억 원을 삭감하면서 “현재 결정된 소요 2대와 추가 소요 2대를 포함한 총 4대에 대한 소요를 신속히 확정, 국회 보고 후 사업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된 E-737 성능개량 사업을 비롯한 항공통제기 소요를 종합해 내년 상반기 중으로 재검토하여 국회 보고 후 그 결과를 반영해 사업을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성능개량까지 포괄한 패키지를 통해 비용 절감을 주문한 셈이다.

◆예산 신뢰성·전문성 높여야 ‘삭감 태풍’ 재발 막아

비용을 절감하면서 전력증강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은 국회라는 외부기관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기 전에 군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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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장병들이 전투기술을 시연하면서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방사청이 육해공군, 국방부, 합참 등과 면밀하게 조율하고, 이를 방사청 내부에서 또다시 논의해 정리하는 ‘필터링’이 이뤄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급하지 않은 사업,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이 내년 예산안에 또다시 포함됐다. 방위력 개선사업 시스템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구심을 낳는 대목이다.

국회와 시민사회단체 등 민간 영역의 예산 분석이 더욱 날카로워졌고, 국방비에 대한 문제의식도 강해졌다. 그만큼 국방비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방위력개선비 집행 부서인 방사청의 수장 강은호 청장은 12일 자카르타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KF-21 인도네시아 분담금 협상 결과에 대해 “120% 만족한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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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왼쪽) 국방부 장관과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이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제공: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18일 입장문에서 “이번 예산안 심사의 주요 대상은 신규사업이었다. 무기체계는 계약이 체결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체계개발 또는 구매 비용 외에도 운영유지, 성능개량까지 고려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 과거 각 군별 나눠먹기 관행도 여전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꼼꼼한 심사를 통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했다”고 밝힌 것과비교되는 대목이다.

국회와 시민단체 등이 국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전문성도 조금씩 축적되는 상황에서 국방부와 방사청, 각 군이 과거의 관성과 사고방식에만 얽매인다면 전력증강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방위력개선비를 담당하는 방사청이 예산안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자구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방사청과 군 당국이 스스로 국방획득 분야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이번 대규모 삭감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국방예산은 이제 ‘성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