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이 감시 눈치챌까봐 함구… 유사시 타격 준비도 끝내”
(이미지)
[北 미사일 기지 파장]정보당국 “비밀기지 13곳 이미 파악”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을 비롯해 미공개 북한 미사일 기지 13곳을 확인했다고 밝힌 이후 이 13곳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겉으로는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서 뒤로는 ‘비밀 기지’를 만들어 한미를 초토화할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등 국제사회를 기만했다는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일반에는 비밀 사항이지만 한미 정보당국은 문제의 기지 13곳을 4, 5년 전에 식별을 마친 뒤 정찰위성 등 한미 연합 감시자산을 동원해 집중 감시하고 있다. 군 관계자들이 “13곳의 기지는 새로울 게 없는 곳”이라고 하거나 일부 한미 전문가가 “북한이 기만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기지 13곳, 4, 5년 전 식별 완료
한미 정보당국은 오래전부터 삭간몰을 포함해 총 9곳의 미사일 기지를 식별한 뒤 기지 내 이동식발사대(TEL) 이동 등 이상 징후를 밀착 추적하며 감시해 왔다. 9곳은 남한 공격용인 스커드 등 단거리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는 삭간몰, 토골, 금천리 등 3곳과 괌을 겨냥한 무수단 등 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는 양덕, 중흥리, 상남리 등 3곳, 주일미군 기지를 비롯한 일본 공격용인 노동 및 스커드-ER 등 준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는 신오리, 용림, 영저리 등 3곳이다.
특히 CSIS가 위성사진을 공개한 삭간몰은 1980년대부터 한미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는 기지로 알려졌다. 북한은 2016년 9월 개성∼황주 고속도로에서 스커드-ER 3발을 발사한 것을 비롯해 같은 해 3월, 7월, 8월 황주 일대에서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바 있다. 삭간몰 기지에 보관돼 있던 이동식발사대와 미사일을 인근 지역으로 기습 이동시켜 도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 정보당국은 미군 정찰위성과 정찰기를 통해 얻은 영상 및 신호 정보, 대북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등을 토대로 9곳의 미사일 기지를 표적화하는 조치도 이미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표적화 조치를 마쳤다는 건 기지 위치는 물론이고 미사일 발사대 보관 갱도, 연료 저장소 위치 등 각종 시설물의 정보를 파악해 유사시 한미 연합자산으로 타격할 준비를 끝냈다는 의미다.
한미는 북한이 KN-08 등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2012년 처음 공개한 뒤로는 ICBM 기지 위치 파악도 끝냈다. 한미가 집중 추적을 통해 4, 5년 전 파악한 ICBM 기지는 평안남도 은산군 밀전리, 평안북도 구성시 신풍리 등 4곳이다.
한미 감시자산을 따돌릴 수 있으면서도 이동식발사대를 보관할 깊숙한 갱도를 만들 만한 산악지대가 흔치 않은 만큼 북한이 13곳 외에 또 다른 미사일 기지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한미, 13곳 정보 오랫동안 함구해와
하지만 한미 정보당국은 보안 차원에서 그동안 이들 기지에 대해 함구해 왔다. 군 관계자는 “13곳을 집중 감시 중인 사실이 공개되면 북한이 미군 정찰위성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위장막으로 기지 주요 시설을 가리는 등 각종 교란 작전을 쓸 수 있다”며 “(13곳 기지에 대해) ‘전략적 침묵’을 지키는 건 이 때문”이라고 했다. “감시자산으로 어렵사리 파악한 적국 표적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 38노스가 오랫동안 북한을 위성사진으로 분석해 왔고 CSIS가 이번 분석에 사용한 ‘비욘드 패러렐(Beyond Parallel)’이란 위성 분석 프로그램을 2016년부터 운용하면서 민간의 위성 분석 기법도 크게 발달했다. 이번에 13곳 미사일 기지 위치 중 일부가 일반에 공개된 것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논란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기만 행위에 나섰다는 주장 못지않게 그간 정보당국과 민간 사이에 누적돼 온 ‘군사정보 격차’로 인해 불거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시에 CSIS가 ‘새로운 발견’인 것처럼 삭간몰 등 미사일 기지 존재를 발표한 진짜 이유를 놓고서도 여전히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CSIS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첫 방미 때 연설 장소로 택했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외교안보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일각에선 미국 내 강경파가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군사 압박을 재개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여론전’에 나섰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시에 북한이 별다른 비핵화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자 북한을 궁지로 몰아 압박하기 위해 미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정보를 흘렸다는 관측도 있다. CSIS가 전통적으로 여당인 공화당과 가깝고 대북정책에 대해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측에 힘을 싣고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北, 6·12이후에도 核 소형화 활동”
국정원, 미사일기지 관련 국회보고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등에서 최소 13곳의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와 관련해 “북한에서 핵·미사일 관련 활동이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진행되는 정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유지시켰음을 한국 정보당국이 사실상 인정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국정원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북한 미사일 기지 관련 사항’ 간담회에서 “이미 삭간몰 기지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통상적 수준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이 전했다. 국정원은 특히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외에) 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기 위한 소형화 경량화 준비를 계속 진행 중이지 않느냐’는 정보위원들의 질문에 “(그런 활동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복수의 정보위원이 전했다.
국정원은 삭간몰 기지는 스커드나 ICBM을 쏠 수 있는 이동식 발사차량(TEL) 18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보고했다. 이어 스커드, 노동, 무수단, ICBM 등 북한 보유 미사일 현황을 보고하면서 “한미는 (삭간몰 외) 여타 미사일 기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는 서훈 국정원장 대신 김상균 국정원 2차장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해 한미 정보당국은 그동안 인공위성 등 감시자산을 통해 북한 미사일 기지 13곳을 은밀히 집중 감시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삭간몰 기지를 포함한 기지 9곳은 북한이 실제 도발할 경우 공격할 수 있는 ‘표적화’ 조치까지 완료했다. 북한의 ICBM 기지 4곳도 별도로 최종 확인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원 보고와 관련해 “(북한의) 그런 핵 활동을 중단시키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지금 협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석 jks@donga.com·손효주 기자
美정보당국 “북한 땅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들여다본 곳”
[北 미사일기지 파장]美, CSIS보고서-NYT보도 시끌
데이비드 생어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13일(현지 시간) “북한 내 16곳에 미사일 운용 기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북한의 큰 기만(great deception) 행위가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이 상당히 고단수 사기게임(sophisticated shell game)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NYT에서 오랫동안 국가안보 분야를 취재해온 생어 기자는 이날 NYT 팟캐스트 프로그램 ‘더 데일리’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기만과 사기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근거로는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을 지키겠다고 공언해놓고 오래된 몇몇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더 많은 핵시설을 증강하고 신축해왔다”는 점을 들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상업위성을 통해 확인한 북한의 미사일 기지 운용에 관한 보고서를 전날 공개했고, 같은 날 생어 기자도 CSIS 보고서에 담긴 위성사진과 함께 북한 미사일 기지 운용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면서 ‘북한의 큰 기만’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미사일 기지 사진을 들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직접 방문한 사실도 공개했다. 생어 기자는 “그들로부터 ‘이 미사일 기지들 중에서 우리(미국 정부)가 모르는 기지들은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부동산 지역이다” “북한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개된) 지도”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 생어 기자는 “그들은 미사일 기지 사진들을 보고 놀라지 않았고 단지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 뿐”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북한의 기만과 함께 미국의 자기기만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자신이 ‘위대한 협상가’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미국의 의지대로 조금씩 비핵화를 항해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다는 것. 생어 기자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로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진단했다.
북한 미사일 기지 운용에 대한 CSIS 보고서와 NYT 보도가 워싱턴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키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수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트위터에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한 NYT 보도는 부정확하다”며 “우리는 논의된 그 기지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으며, 새로울 것이 없고, 비정상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가짜뉴스일 뿐”이라며 “일이 잘 안 풀리면 내가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CSIS 보고서와 NYT 보도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 북한의 미사일 기지 운용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북한이 약속을 깬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미사일 기지들과 관련해서는 아직 북-미 간에 어떤 합의도 이뤄진 게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리언 시걸 미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국장도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 기고문에서 “미국과 북한은 아직 북한의 미사일 배치를 억제할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반면 CSIS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빅터 차 한국석좌는 자신의 트위터에 “어떻게 한국 정부는 북한의 미신고 미사일 운용 기지들을 두둔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을 보라. 북한의 모든 종류의 탄도 미사일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현실을 왜곡하는 자기합리화를 하려고 하는가”라고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CSIS 보고서에 대해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며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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