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스크랍

민주당 잔치는 끝났다

아지빠 2018. 8. 27. 08:04






[아침을 열며]민주당 잔치는 끝났다

 

소문난 잔치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음식은 맵고 짰으며, 싸움까지 벌어졌다. 잔치에 초대됐던 손님 일부는 현기증과 배탈을 호소했다. 동네방네 소문났던 잔치가 망한 것이어서 흉흉한 소문은 더 빨리, 더 멀리 번졌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그랬다. 중반기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할 집권여당 리더를 뽑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다른 행사와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하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음식은 맵고 짰다

잔치는 끝났다.

잔치의 메인 셰프 격인 세 후보들이 내놓은 음식은 간이 엉망이었다. 왜 자신이 대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수긍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각자 ‘강한 정당’(이해찬 후보) ‘경제대표’(김진표 후보) ‘세대교체’(송영길 후보)를 내세웠지만 뚜렷한 비전과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보수정부 10년의 적폐를 씻어내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촛불민심’의 염원을 실행해야 한다는 책임의식과 역사인식도 절실하지 않은 듯했다.

후보들이 고작 ‘내가 진짜 친문이다’를 놓고 싸웠다.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 격의 없는 사이”라고 했고, 송 후보는 “셋 중에 (제가) 가장 친문”이라고 했다. 김 후보는 이른바 ‘3철’ 중 한 사람인 전해철 의원을 포함한 친문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며 ‘문심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유명 셰프와 친하니, 무조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긴밀한 당·청 관계는 중요하지만 ‘내가 대통령과 더 친하니 뽑아달라’는 식은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지하느라, 그간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여당의 현실만 부각시킬 뿐이다. 게다가 고용상황 등 경제지표 악화로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닥쳤고, 이제는 당이 청와대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앞으로도 청와대에 잘 업혀가겠다고, 내가 더 잘 업힐 수 있다고 경쟁을 벌인 것이다.

#싸움판이 된 잔칫집

세 후보들이 서로를 ‘몹쓸 사람’으로 만들면서, 잔칫집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 이 후보는 경쟁자들로부터 ‘독선적’ ‘불통’이라는 집중공격을 받았다. 김 후보는 ‘자유한국당에나 어울릴 정체성’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송영길 후보에게는 ‘거만하다’는 딱지가 붙었다. 심지어 이 후보가 유세 도중 연단에서 내려오다 휘청거리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상대 후보 측에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유포했다는 논란까지 빚어졌다. 아무리 경쟁이지만, 정치적 동지라는 사람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행동인가 의문이 들었다. 쟁반 깨지는 소리가 잔칫집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간 꼴이다.

분위기가 흉흉한데 잔치에 흥이 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맵고 짠 음식들은 더 맛없게 느껴졌다. 당 지지율이 전대 이후 계속 하락한 것이 그 증거다. 경제지표 악화도 잔칫집 마당에 그늘을 드리웠겠지만, 비호감 경쟁을 벌인 세 후보의 책임도 크다. 이런 상황을 그저 목도하거나, 물밑에서 유력 후보에게 줄대기에 바빴던 의원들도 크게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맛으로 증명하라

이 글을 마무리하던 25일 밤 이해찬 후보가 대표로 선출됐다. 집권여당 대표는 영광된 자리지만, 그는 상처만 잔뜩 입고 링에 오르게 됐다. 싸움꾼 이미지는 덧씌워졌고, 건강 문제는 언제든지 쟁점화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반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당 관계자는 “적폐청산, 보수궤멸을 내세운 이 대표 등장으로 보수들이 결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당으로선 생큐”라고 했다.

이 대표 측은 억울해할 수도 있다. 경쟁자들의 집중공격으로 이미지가 지나치게 왜곡됐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아니라, 같은 당에서 나온 비판인 만큼 ‘근거 없는 음모’ ‘헐뜯기’라는 간단한 말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후보 등록 때부터 예견됐던 상황 아니냐. 이 대표가 유능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성격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있다”고 했다.

결국 경쟁자들의 비판이나, 야당의 은근한 환영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할 사람은 이 대표 자신이다. 독선·불통 등 성격 논란이 더 불거져서는 곤란하다. 전대로 찢어진 당 수습은 물론 야당과의 협치도 어려워질 것이다. 청와대 국정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대 과정에서 불거졌던 여러 논란들을 곱씹어 볼 것을 권한다. 그래야 이 대표가 내놓는 음식들이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취임 일성인 ‘민주 정부 20년 집권’도 가능해진다.

이용욱 정치부장

입력 : 2018.08.26 20:59:01 수정 : 2018.08.26 22:51:37

 

신임 여당 대표 이해찬과 다시 충돌할 조선·동아

[해설] 총리시절 조선·동아 겨냥 “역사에 반역” 소신… 6년전에도 “수구언론이 가장 기피하는 정치인” 자평

지난 25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의 전당대회 정견발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저 이해찬,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당대표가 되면, 당이 안 보인다는 말은 사라질 것입니다. 당의 존재감이 커지고 보수의 정치공세를 단호히 막아낼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역시 이날 이해찬 대표 당선에 “‘수구세력이 경제위기론 편다’, ‘최근 악화된 고용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이라고 하는 등 보수를 향한 날선 인식은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25일 당대표 수락 연설문에서 “주제와 형식에 상관없이 5당 대표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면 좋겠다”며 ‘협치’를 강조했지만 과거에 비춰보면 보수언론 공세는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광고시장’ 언급에 발끈 조중동

이 대표가 과거 보수언론과 크게 충돌했던 때는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시절이었다. 거침없는 발언은 연일 보수언론 지면에 오르내렸다.

 

2004년 9월16일 당시 이해찬 총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조찬간담회 초청강연에서 “언론들이 계속 경기 부양을 하지 않느냐고 볶아대는데 경기 부양을 시켜야 광고시장도 돌아가겠지만 우리 경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 뒤 “외국인 투자가 줄고 노사 분규도 심각한 것처럼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부 언론에서 경제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도하면서 말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지만 실제로는 사실을 오도하고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이 경제 위기를 과도하게 부풀린다는 지적이었다.

다음날 보수언론의 공세가 이어졌다. “‘언론이 경기부양 볶아대는데 그러면 광고는 돌아가겠지만…’”(동아일보), “‘언론이 경기부양 볶아대는데 그래야 광고시장 돌아가겠지’”(조선일보), “‘언론이 경기부양 볶아대는데 그래야 광고시장 돌아가겠지만…’”(중앙일보)등의 제목이 달렸다.

이들 신문의 보도는 “‘좌파적 이념갖고 정책집행 안한다’”(국민일보), “이총리 ‘참여정부는 좌파아니다’”(서울신문) 등 정책 방향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타 신문과 차이를 보였다. 특히 조선일보는 ‘총리는 대통령의 악역 보조에 나섰는가’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짝을 맞춰 국민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만 골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밤의 대통령’ 시대 끝났다”

이 대표는 조중동 가운데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반감을 드러냈다. 유신 시절 기자들을 강제 해직했던 ‘언론 탄압’ 역사와 관련 있다. 이 대표는 2004년 10월18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은 용서해도 지금도 계속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역사에 대한 반역죄는 용서 못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나라를 흔들던 시대는 지나갔다. 조선과 동아가 심지어 나라 인사를 좌지우지한 일도 있으며 박정희 시대엔 안기부 정보로 특종하기도 했으나 한 번도 역사 발전에 기여한 일 없다”며 “그러나 이젠 ‘밤의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조선·동아는 맹공을 가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총리의 발언이 과연 ‘말씀’ 대접을 받는 국무총리의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총리의 말이 아니라 노사모의 발언이라면 그런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겠지만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 총리의 조선·동아를 향한 적개심은 이 총리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포함한 정권 전체의 정서라는 이야기”라며 당시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언론개혁법과 이 대표 발언을 한데 묶어 비판했다.

당시 이종원 조선일보 정치부장대우는 칼럼에 “조선·동아는 총리가 태어나기 32년 전에 창간돼 지금까지 온갖 풍상을 겪어 왔습니다. 이민족의 압제를 견디고, 우리도 잘 살아보자고, 우리도 민주주의 해보자고, 나름대로 싸워온 것이 두 신문의 역사”라며 “조선·동아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세태에 영합하며 정권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는 언론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조선·동아가 무슨 힘이 있고, 까불어서가 아닙니다. 그 순간 독자들의 외면으로 두 신문의 84년 역사는 그날로 막을 내릴 것”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민주화 세력’을 내세워 집권하고 ‘개혁’을 빌미로 자유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정부여당이야말로 역사에 반역하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10월21일자에서 “동아일보 84년 역사에 권력자를 비롯해 그 어느 특정인에게서도 이런 폭언을 들은 적이 없다”면서 ‘공개 질의’ 형식을 빌려 이 대표 발언을 반박하고 해명을 요구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도대체 여권이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가.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없고 무조건적인 맹종만 있는 ‘동물농장’과 같은 사회를 바라는가”라며 “노동신문·민주조선·평양신문 등이 입을 모아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찬양하는 북한의 언론체제를 닮기를 원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논란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04년 10월2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대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30년 전 1974년 유신 긴급 조치 때 자유 언론을 주장한 수많은 기자들을 집단 해고하고 다시 복직시키지 않았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볼 때 시대에 반하는 행위이자 역사의 반역”이라며 보수신문을 두고 나온 발언이 “평소의 소회”라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보수언론과 총리시절의 이 대표 사이에 갈등과 불화는 계속됐다. 이 대표는 2006년 3월 ‘3·1절 골프 파문’으로 취임 21개월 만에 국무총리에서 물러났다. 언론은 연일 ‘골프 로비’ 의혹을 제기했고 이 대표는 대국민사과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6년 전에도 “거친 발언으로 국민과 멀어져”

향후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어떠할까. 이 대표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달린 것이지만 그가 2012년 6월9일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언론 보도로 짐작해볼 수 있다. 그때도 이 대표는 선거 공보물에 “수구언론과 새누리당이 가장 기피하는 정치인”이라는 문구로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보수언론이 개입한다는 비판은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당대표 당선 이튿날 사설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대표 당선 후 민주당 지지도가 올랐다는 자료는 없다. 당 밖 분위기는 그 반대라는 게 정확할 듯하다. 설사 이 대표의 그런 판단이 옳다 하더라도 이 대표의 거친 발언으로 일반 국민과 민주당의 거리는 더 멀어졌고, 어두운 대선 전망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대선 승패를 좌우할 중도층 유권자는 민주당과의 거리를 더 실감할 것이다.”(조선일보 6월11일자 사설 ‘이해찬의 민주당, 집권에서 더 멀어지나 가까워지나’)

문재인 정부는 야당 협조가 뒷받침된 개혁 입법 통과가 절실하다. 이해찬 신임 대표가 25일 당선 직후 “5당 대표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면 좋겠다”고 말한 까닭이다.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인 그도 ‘협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반면 이 대표를 바라보는 보수언론 시각은 좋을리 없다. 불과 2년 전 “친노좌장 이해찬 잘라낸 더민주 공천이 새누리당보다 낫다”(동아일보 2016년 3월15일자 사설)던 그들이다. 이 대표가 보수언론의 공세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