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재용 → 안종범·장충기 → 김종·박상진 ‘수직 분업’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을 재소환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지원을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61) 측을 지원한 과정에서 삼성과 청와대 간 ‘수직적 분업 체제’가 구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은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 시점도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와 관련, ‘방해 변수’가 등장할 때마다 최씨 모녀에게 ‘분할 송금’한 정황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박 대통령과 삼성과의 관계가 ‘박 대통령-이 부회장’이 큰 틀에서는 교감하고, 그 밑으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경영권 승계를 담당하고,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최씨 모녀 지원을 담당하는 식으로 구성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총 3번 독대하며 교감했다. 첫 만남은 2014년 9월15일이다. 이날 열린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이 부회장과의 독대 자리를 마련해 ‘한화가 맡는 대한승마협회를 삼성이 맡아 주고, 유망주들에게 좋은 말도 사주는 등 적극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2015년 7월25일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두 번째 독대에서 박 대통령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21) 지원을 이 부회장에게 채근했다. 세 번째는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이후인 2016년 2월15일로, 장소는 청와대 안가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재단 출연은 물론 정유라씨를 지원해줘 고맙다’고 말한 뒤 최씨와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도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직접 받았다.
특검은 이 같은 윗선의 교감과 지시를 바탕으로 안 전 수석과 장 사장이 수시로 연락하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업무를 맡았다고 보고 있다. 장 사장은 2015년 6월17일 메르스 사태로 삼성서울병원이 위기에 몰리자 안 전 수석에게 의견을 구했고, 그 직후인 6월23일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같은 해 7월17일에는 장 사장이 안 전 수석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 직후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특검이 확보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이 같은 정황이 상세히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 모녀에 대한 실무 지원 창구는 김 전 차관과 박 사장이었다. 2015년 3월 대한승마협회장이 된 박 사장은 3개월 뒤인 6월24일 김 전 차관을 만나 정씨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사장이 독일로 건너간 2015년 7월 이후부터는 독일과 국내 등지에서 최씨를 직접 만나 지원을 결정하고, 협의했다.
삼성이 2015년 9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최씨 모녀가 거주하던 독일에 77억여원을 직접 지원한 내역을 보면 삼성이 이 부회장 승계 체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협조가 필요할 때마다 송금이 이뤄졌다. 삼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생겨난 삼성SDI의 신규순환출자 고리 해소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가이드라인 마련이 논의되던 2015년 10~12월 최소 일주일, 늦어도 3주 간격으로 독일에 돈을 보냈다.
공정위가 2015년 12월 삼성물산 주식 처분이 당초 1000만주가 아닌 500만주로 해석한 뒤인 지난해 2~3월 삼성은 정씨의 말 두 마리 구입비와 보험료 등으로 37억여원을 독일에 보냈다. 이후 한동안 지원이 없다 지난해 7월 다시 삼성전자 승마단 해외전지 용역비라며 7억2500여만원을 코어스포츠 계좌로 보냈다. 그 사이에는 삼성 측이 금융위원회에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관련 비공식 문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학·윤승민 기자 gomgom@kyunghyang.com
삼성 ‘플랜B’ 협의 3일 전 스웨덴 명마 인수협상 착수
ㆍ전 소유주 증언…‘실행 안 했다’는 삼성 주장 설득력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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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박상진 사장과 최순실씨가 지난해 9월 독일에서 만나 정유라씨(21)를 보다 은밀한 방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협의하기 3일 전, 스웨덴 명마 블라디미르 인수 협상이 시작된 사실이 확인됐다. 블라디미르 인수는 삼성을 위해 비타나V 등 앞서 명마를 중개했던 정씨의 덴마크 승마코치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과 그의 25년 지기가 주도했다. 정씨를 새로운 방법으로 우회지원하기 위한 ‘플랜B’가 협의만 되고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는 지금까지 삼성 주장과 달리 치밀한 사전계획하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13일 블라디미르 전 소유주이자 스웨덴 승마 국가대표 퍼닐라 호크펠트(사진)는 경향신문에 보낸 e메일에서 블라디미르 인수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9월24일임을 확인해 줬다. 블라미디르 공동소유주인 요안 이퍼슨이 25년 지기 헬그스트란으로부터 말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날은 박 사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최씨와 비밀리에 만나 정씨에 대한 우회지원 계획(플랜B)을 협의하기 3일 전이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후 정씨를 우회지원하기 위한 플랜B가 그 이전부터 체계적으로 진행돼 왔음을 보여준다.
호크펠트에 따르면 최초 인수 얘기가 나오고, 3일 뒤인 9월27일에 이퍼슨으로부터 블라디미르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어 10월1일 시험기승을 위해 블라디미르가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보내졌고, 10월3일 최종계약이 체결됐다. 호크펠트는 “9월24일에는 일본인, 동영상 보낼 때는 미국인, 시험기승 때는 남아공인, 최종적으로는 한국인(정유라)이 블라디미르의 구매자가 될 것으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보통은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승마장에 와서 말을 보는데, 그때는 이퍼슨이 직접 말을 트럭에 실은 후 국경을 넘어 이상했다”고 덧붙였다. 고객의 국적이 전해 들은 것만 4번 바뀌고, 계약이 확정되기도 전에 민감한 동물인 말을 시험기승을 위해 외국으로 이송시킬 만큼 모든 과정이 특별한 고객에게 맞춰 진행됐다는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3일 박 사장과 삼성전자 황성수 전무를 소환한 것도 블라디미르 인수과정에서 삼성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보인다. 호크펠트는 “삼성 돈이 흘러들어갔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특검이 문의를 해오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수사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이재용, 2015·2016년 박 대통령 독대 때 구체적 대가 요구
ㆍ영장 발부 ‘결정타’ 된 안종범의 또 다른 수첩 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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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는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추가로 확보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구속 기소)의 수첩 39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검은 이 수첩에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할 때마다 구체적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한 정황을 확인했다. 법원은 “박 대통령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는 삼성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61·구속 기소)를 지원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특검이 설 연휴 직전 안 전 수석 측근인 김모 보좌관을 통해 확보한 안 전 수석 수첩에는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한 박 대통령의 지시가 담겨 있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처음으로 독대했는데, 당시 박 대통령은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직후이자 박 대통령이 승마훈련 지원을 신경 써달라고 했던 2015년 7월25일, 미르(2015년 10월)와 K스포츠(2016년 1월) 재단이 출범한 이후이자 박 대통령이 장시호씨(38·구속 기소)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계획안을 전달한 2016년 2월15일에는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독대가 있었다.
특검은 두 번째 독대부터 이 부회장이 구체적 요구사항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단서를 안 전 수석 수첩에서 찾아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삼성SDI가 처분해야 하는 삼성물산 주식 규모를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변경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 삼성그룹 지주회사 전환에 유리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시기별로 이 부회장에게 필요했던 정부 특혜가 단어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삼성은 당시 각 사안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은 해당 제도나 정책의 위법성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나 안 전 수석 지시로 공무원에게 주어진 자율적 정책 판단 권한이 침해된 점을 토대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 범죄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고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안 전 수석의 수첩이 상당히 중요한 증거자료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특검은 삼성그룹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204억원도 이 부회장을 위해 지출됐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삼성그룹의 두 재단 출연금을 이 부회장 횡령 혐의에 새로 포함시키면서 “이 부회장이 순환출자를 통해 소수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계열사가 아닌 본인 이익을 위해 법인 자금을 임의로 지출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모녀를 지원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본 특검 주장도 받아들였다. 이날 영장심사를 한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 부회장과 함께 청구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단 사장(63·대한승마협회장)의 구속영장을 “피의자의 지위와 권한 범위, 실질적 역할 등에 비추어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박 사장은 실무역할을 했을 뿐 이 부회장이 주범이라고 본 것이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입력 : 2017.02.18 06:00:00
이재용 구속 결정타는 ‘김재열 문건’과 ‘박상진 휴대전화’
ㆍ박 대통령 독대 후 받은 영재지원센터 서류 엇갈린 진술
ㆍ박 사장 휴대전화선 ‘정유라 독일훈련 지원’ 문자 쏟아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을 구속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물증은 ‘김재열 문건’과 ‘박상진 휴대전화’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문건과 휴대전화에는 이 부회장이 2015~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당시 어떤 청탁을 주고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뇌물죄를 입증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19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매제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49)은 지난해 12월29일 특검에 출석해 이 부회장이 2016년 2월15일 박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직접 전달받은 문건을 제출했다. 이 문건 제목은 ‘(사)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종합형 스포츠클럽 꿈나무 드림팀 육성계획안’으로 최순실씨(61)가 조카 장시호씨(38)를 시켜 설립한 영재센터에 삼성이 같은 해 3월3일 10억7800만원을 지급하는 데 근거자료로 활용됐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66·부회장)과 장충기 차장(63·사장)도 특검 조사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대통령에게 받은 게 맞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도 지난달 13일 첫번째 특검 조사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최 실장이나 장 차장이 거짓말할 리 없기 때문에 문건을 받은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다가 지난 16일 영장심사에서 이 부회장 측이 “받은 바 없다”고 하자, 특검은 “재판부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와 더불어 이 부회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풀려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64·대한승마협회장)의 휴대전화에서는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21)의 독일 승마훈련 지원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증거가 쏟아졌다. 박 사장은 지난해 11월12일 검찰에 처음 출석했을 때만 해도 “아시아승마협회 회장 선거 지원을 부탁하기 위해 2015년 7월29일 독일에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만나 처음 정씨에 대한 지원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닷새 뒤 두번째 검찰 조사에서 복구된 휴대전화에서 나온 문자메시지를 본 뒤 얼굴색이 변하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었다고 한다. 2015년 7월25일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이 독대한 뒤 다음날 박 사장에게 “미래전략실 인사지원그룹 ○○○ 부장이 명일(7월27일) 오전 10시 40층 실장님실에서 (이 부회장 주재로) 약 30분간 회의에 참석해 주십사 연락이 왔습니다. 안건은 승마협회 관련”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이보다 앞서 7월22일 독대 일정이 잡히자 이 부회장이 제주도에 출장 중이던 박 사장을 서울로 호출해 장충기 차장과 대책회의를 연 기록도 남아 있었다. 결국 박 사장은 “왜 그런 문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석증을 앓고 있는데 어지럽다”면서 건강 이상을 호소해 조사 도중 귀가했다.
한편 지난 17일 새벽 구속된 이 부회장을 가장 먼저 면회한 사람은 최지성 실장이다. 최 실장은 당일 오전 10시30분 서울구치소를 찾아 약 10분간 면회했다. 18일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60·사장)이 면회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 조사는 18일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구속 당시 입었던 정장 차림으로 특검에 나타났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구교형·김경학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입력 : 2017.02.20 06:00:03 수정 : 2017.02.20 06: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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