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보수단체, 미국을 신처럼 숭배… 종북몰이에 한국 양분”
ㆍ“박근혜 정부, 정치 이용… 정신나간 폭력에 의미 부여”
ㆍ미 국무부는 “범행동기 추측 아직 일러” 여전히 신중
뉴욕타임스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이 ‘종북몰이’ ‘미국 숭배 논란’ 등으로 비화하면서 한국 사회를 양분시키는 정치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한국 정부 정치적 이용”
뉴욕타임스는 사건 초기만 해도 단순히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죄의식과 사죄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한국 사회 주류인 보수적 이념은 미국을 6·25전쟁의 ‘구원자’로 가르치고 있다면서 많은 한국인들, 특히 노년층은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55)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弟夫)인 신동욱씨가 리퍼트 대사 병실 맞은편에서 봉건시대 죄인이 용서를 구하던 ‘석고대죄’를 벌이고, 대사관 앞에서 퇴역 군인들이 “미국의 은혜를 잊어선 안된다”고 외치며 집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소개했다.
신문은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곧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블로거는 “이건 너무 지나치다. 그들은 미국을 마치 신처럼 ‘숭배’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미현씨(36)는 “나도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범인을 증오하고 미국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만, 기독교 단체의 부채춤 공연이나 미 대사관 앞의 석고대죄 집회를 보면서 역겨움을 느꼈다”며 “이러한 행동이 오히려 한국과 미국의 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신문은 또한 이 사건을 즉시 ‘종북세력’과 연관시킨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발이 일면서 한국 사회가 양분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의 미국인 교수인 존 델러리는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에 온 손님이 잔인한 공격을 당했다는 데 깊은 충격을 받고 안타까워했다”면서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은 이 단발적인 사건을 ‘종북 척결’ 캠페인과 연결시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정부가 지체 없이 이를 ‘테러’로 규명하며, 종북세력의 짓일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한국 경찰이 살인미수 혐의로 김씨를 구속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정신나간 사람의 폭력적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꼴”이라면서 “미국 정부는 한국이 보안법을 매카시즘의 도구로 사용해 온 것을 수십년 동안 비판해 왔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 “범행동기 추측 아직 일러”
미 국무부는 이날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아직 범행동기를 추측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현재 한국 경찰이 사건 조사를 진행 중이며 우리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만약 북한과의 연관성이 밝혀질 경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너무 앞서가는 질문”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범행동기를 추측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대사 쾌유 빌며 부채춤 공연한 기독교인은?
예장합동한성 "단순한 예배였을 뿐"... 교계,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눈살'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3월 5일 김기종 씨에게 피습된 후 대한민국은 또다시 국론 분열의 기로에 섰다.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봉사단 같은 극우 단체들은 김기종 씨를 종북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한미 동맹은 영원하다며 시위를 벌였다. 한편에서는 김 씨가 단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이상자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국론 분열을 부채질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3월 7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부채춤을 추었다. 리퍼트 대사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고, 그가 트위터에 남긴 "같이 갑시다"라는 말을 구호로 외쳤다. 부채춤뿐 아니라 난타에 발레 공연까지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 총회(이희준 총회장)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연 예배였다.
광화문에서 벌어진 진풍경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미 대사가 피습당한 사건에 기독교가 앞장서서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미국님을 섬기는 것 같다"며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뉴스앤조이>는 합동한성 이희준 총회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연 경위에 대해 이 총회장은 "교단 차원이 아니라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라며, 더 이상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리퍼트 대사가 무방비 상태에서 가격당했다. 이것은 약자를 폭행한 것이다. 여전도회 교인들이 모성의 입장에서 리퍼트 대사를 위로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서 위로하자고 건의하기에, 내가 '그것은 교회 차원에서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막았다. 그러자 교인들이 예배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예배가 안 된다고 하는 주의 종이 어디 있겠느냐'고 답했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예배를 한 것이다"라고 했다.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 묻자 이 총회장은 "성령의 감동으로 간 것이지 절대 정치적인 목적이나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는 "여론이라는 것이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 1~2년 지나 봐야 그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부채춤이나 발레, 난타까지 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게 예배다. 구약 시편에 보면 예배가 그렇게 요란스러웠다"고 말했다.
합동한성 총회의 이 같은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설 연휴 때는 서울역광장과 명동에서 국가 안보와 관련한 집회를, 3월 1일에는 김포에서 3.1운동 정신을 계승하자는 찬양 예배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교계 인사들 "하나님께 보이려고 했나,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나"
합동한성 총회 관계자들의 예배에 대해 교계 인사들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비판 의견을 내놨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도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경솔, 경박했다는 것이다. 또 근본적으로 친미 경향을 보였던 한국교회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뉴스앤조이>는 여러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UCLA 한국기독교학 옥성득 교수는 합동한성 교인들의 집회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는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면서 '신'을 기쁘게 해 소원을 푸는 한판 놀이를 굿이라 한다. 따라서 대사의 회복을 비는 치유 기도 판은 치병굿에 가깝다. 저 화려한 색깔과 시끄러운 소리를 보라. 누가 아픈 자를 위한 경건한 기독교인의 기도라고 할 것인가. (중략) 전통 무용(부채춤)과 현대 무용(발레)과 전통 음악(난타)과 기도와 사이비 애국주의와 친미 사대주의를 신학적 성찰 없이 섞으면 '경배와 찬양'이 아니라 혼합된 '굿판 공연'이 된다. 누구를 향한 기도이며 깃발이며 춤이며 외침이며 절인가"라고 비판했다.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샬롬나비) 김영한 상임대표도 표현이 지나쳤다고 평했다. 김 대표는 "애국심을 가지는 것이나 미 대사가 공격당해 다친 것은 불행한 일이므로 위로하거나 기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를 표현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춤추고 공연하며 기도하는 것은 무속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이는 기독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신앙은 정치·사회 문제와 구분해 표현해야 한다. 신앙과 정치가 섞인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겠지만, 밖에서 표현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 이건영 대표회장도 이벤트성으로 예배를 여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집회를 하는 것은 교회와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바리새인과 같이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목에서 기도회나 집회를 열 것이 아니라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교회 내에서 중보 기도회 정도로만 해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언론회 이억주 대변인은 과연 누구를 위한 예배였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이런 행동을 잘한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나무랄 수도 없지만 잘했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보이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누구한테 보이려고 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런 몇 사람의 행동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가 욕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절대 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알아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신대학교 강원돈 교수(기독교윤리)는 일부 한국교회가 보이는 친미 성향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일부지만 한국 기독교는 아주 오랫동안 친미 경향을 보이지 않았나. 그들은 한국이 미국의 우산 아래 있지 않으면 북한이라든지 내부 과격 세력에 의해 안보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미 대사 피습 사건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김진호 실장은 합동한성 총회뿐 아니라 다른 극우 단체들의 모습 속에서 '과잉 민족주의'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채춤과 발레, 난타는 아마 서양 사람이 좋아할 것 같으니까 사과의 의미로 보여 준 것 아니겠는가. 피해자가 미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미국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하는 한국교회의 신앙 관습과 과잉된 민족의식이 결합돼 나타난 행동으로 본다. 민족주의가 과하다. 사과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칼로 미 대사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도 과잉 민족주의자고, 사과하는 쪽도 과잉 민족주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 강남순 교수는 "일개 교단, 교회가 했다고 해도 사회에서 볼 때는 그냥 한국교회가 한 일이다. 이런 쾌유 기원 공연을 했다는 것은 목회자들의 사회참여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약자를 돌보라 하셨는데, 이번 일은 강자에게 잘 보이려고 한 일이 아니겠나. 목회자들이 세월호 사건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이러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sogun77@kyunghynag.com>
석고대죄’했더니…뉴욕타임스 “한미동맹 외려 훼손”
리퍼트 대사 피습에 대한 한국 ‘과잉반응’ 꼬집어
“국가보안법은 미국이 비판해 온 매카시즘 도구”
“한국인으로서 마크 리퍼트 대사를 칼로 찌른 미친 사람을 미워합니다. 미국인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역겹네요. 오버하고 있어요. 한국인들 사이에서 미국인과 한미동맹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겁니다.”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지난 7일 일부 기독교인들이 부채춤을 추고 무릎을 꿇는 모습을 지켜본 김미현(36)씨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9일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으로 한국에서 그의 쾌유와 한미동맹 유지를 바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으나, 보수세력의 일부 행동으로 인해 이제는 ‘역풍’이 불고 있고 박근혜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미국을 “숭배”하면서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경찰이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는 것을 두고, 국가보안법은 미국 정부가 수십년 동안 비판해온 ‘악법’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언론들이 피를 뚝뚝 흘리는 리퍼트 대사의 모습을 처음 보도했을 때 “한국인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후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리퍼트 대사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찾았으며, 보수단체 활동가들이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주장했던 내용 등을 메시지로 실어날랐다고 했다. 하지만 메시지의 톤은 곧바로 일종의 죄책감과 사과문으로 돌변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주류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미국을 한국전쟁 때 남한을 지키기 위해 수만명의 자국인을 희생시킨 ‘구세주’로 여기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나이 든 많은 한국인들은 김기종씨를 ‘몰지각한 범죄자’라기보다는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리퍼트 대사가 입원 치료를 받은 병원 앞에서 홀로 ‘석고대죄’를 한 신동욱씨의 얘기를 전하며, 그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라고 지적했다. 또 군복을 입은 한국인들이 미국 대사관 근처에 모여 “전쟁 때 미국인의 도움을 잊지 말자” “종북 척결” 등의 구호를 외쳤다면서, 이번 사건이 한미동맹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곧 반발에 부닥쳤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한 블로거는 “해도 너무한다. 그들의 행태는 신을 숭배하는 것 같다”고 했으며, 다른 블로거는 ‘사랑해요, 미국’ 정서를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했을 때 군대를 보낸 중국을 숭배하기 위해 지은 사당에 비유했다고 했다.
존 델러리 연세대 교수는 “한국인들은 충격을 받고 개인적 차원에서 리퍼트 대사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심지어 자국의 손님을 잔인하게 공격했다는 데 죄책감도 느꼈다”며 “그러나 지금은 정부 관리들과 정치권이 ‘고립된 사건’인 이번 사건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종북몰이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이 신문은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정당의 지도자들이 사건 발생 직후 김씨의 ‘종북 관련성’을 넌지시 내비쳤다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 직후 곧바로 김씨의 행위를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 공격”이라고 규정하면서 “배후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또 한국 경찰이 살인 미수 혐의로 김씨를 구속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어리석게도 한 정신나간 사람의 폭력적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우호적으로 여겨지는 사상을 억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매카시즘의 도구로 사용해 온 것을 수십년 동안이나 비판해 왔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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