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5월18일부터19일(2일간)강화 조상(祖上)의 유적지(遺跡地) 참배(參拜)
석능(碩陵)
인천광역시 강화군 야도면 길정리 산182번지
이능은 고려 제21대 희종(熙宗,1181~1237,재위 1204~1211)이다
휘는 영(韺),자는 불피(不陂),시호는 희종인목성효대왕(熙宗仁穆成孝大王),신종과 선정왕후의
맏아들이다.
1200년 태자로 책봉되고 1204년에 신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1205년 최충헌을 진강군개국후(晉康郡開國侯)에 봉하였으며 1206년에 다시 진강후에 봉하
고 흥녕부(興寧府)를 세우게 하였고 1207년 최충원의 청으로 유배자 300여명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 방면하였다.
1208년 개성 대시(大市)좌우의 긴 행랑(行廊)1,080영(楹)을 다시 짓게 하였는데 오부방리(五部坊里)와 양반의집에서 미속(米粟)을 내게 하여 그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1211년 내시 왕준명(王濬明)등과 함께 당시 정권을 휘두르던 최충원을 죽이려다 실패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도리어 최충헌에게 폐위를 당하여 강화로 쫓겨났다가 뒤이어 자란도로 옮겨졌다. 1215년 다시 교동으로 옮겨졌다가 1219년 서울에 봉영(奉迎)되었다, 이렇게 서울에 돌아와서 딸 덕창궁주를 최충헌의 아들 성(珹 )과 혼인시켰다.1227년 복위의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최우(崔瑀)에 의하여 다시 강화로 쫓겨났다가 교동으로 옮겨져 1237년에 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승하하였다. 시효는 성효(誠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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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능(坤陵)
문화제 제371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75
이능은 고려 강종(고려제 22대왕)의 비 원덕태후유씨(元德太后柳氏)의 묘이다 가능(嘉陵).홍능(洪陵),석능(碩陵)과 더불어 강화의 4대 고려 왕릉이다, 이 능은 고려 22대 강종(재위1211년~1213년)의 비(妃) 원덕태후의 능이다 원덕태후는 언제 사망하였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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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능(洪陵)
사적 제224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180
이 능은 고려 제23대 고종(高宗1192~1259)의 능으로 강종(康宗)의 맏아들로 이름은 철이다. 1212년(강종康宗1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어머니는 원덕태후유씨(元德太后柳氏)이고 비는 제21대 희종(熙宗)의딸인 안혜태후(安惠太后)이다.
1213년 즉위하여 1259년 69세로 사망할 때까지 46년 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재위하였다.
왕이 즉위할 당시에는 최충헌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고종6년(1219)에 그가 죽자 아들 최이(崔怡),우(瑀)가, 그 후에는 그의 자손인 최항(崔抗)과 최의(崔誼)가 잇달아 권력을 계승하였다.고종45년(1258)에 유경(柳璥),김준(金俊)등이 최씨 정권의 마지막 실력자인 최의를 죽임으로써 정권을 일단 국왕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실권은 여전히 무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왕의 재위 기간은 대외적으로도 북방민족이 침입하여 어려움이 계속되었는데 고종13년(1216)에는 거란족이 침입하자 김취려(金就礪),조충(趙沖)등이 이를 격퇴하였다. 고종18년(1231)에 몽고족이 쳐들어오자 당시의 실력자 최의는 이듬해 서울을 강화로 옮겨 강도(江都)라 부르면서 몽고와의 전면 장기전을 채택하여 이후 28년간 항쟁하였다, 몽고는 이 기간 동안 6차례나 고려에 침입하면서 국토를 황폐화시키고 인구와 재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귀중한 문화재도 많이 손실되었는데 특히 경주 황용사 구층탑과 현종 때에 간행한 대구 부인사 소장의 대장 경판이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고려는 부처의 도움으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고종 24년(1236)부터 고종38년(1251)사이에 대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고 강화도에서 대장경을 조판하였다. 이것이 현재 합천 해인사 에 남아 있는 정교하기로 유명한 이른바 고려 대장경(高麗大藏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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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嘉陵)
사적제370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6-2
이곳은 고려 원종(元宗 1259~1274 재위)의 비(妃)순경태후(順敬太后)의 능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딸로서 고종22년(1235)원종이 태자로 책봉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그다음해에 충렬왕(忠烈王)을 SKgDKt다,그리고 고종 31년(1244)경에 사망하여 이곳에 안장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원종3년(1262)에 정순왕후(靜順王后)에 추봉되고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순경태후(靜順太后)추존되었다,
양도면 길정리에 있는 고려조22대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능인 곤능과 함께 남한지역에 있는 단2기의 고려 왕비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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