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은 기억으로 핀다/陳 弼
- 꽃 한 송이가
그리 곱게 피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 얼마나 모진 고통이었으랴,
허나, 무심코 눈길이 끌리면
향기 한 번 맡아보고 그만이거나,
꽃의 역사가 사라질 때까지 아끼어 볼 듯
뚝,뚝 마음 송두리째 꺾어 병에 꽂아두었다가는
그 마음 채 시들기도 전,
서둘러 쓰레기로 버리는 사람들,
외면하는 그 눈길,
버려지는 그 슬픔,
꽃을 피우기까지의 그 고통 너무 귀하여
못내 쓸쓸하고 허무한 마음,
혼자 시드는 가슴앓이,
사람들은 꽃의 아픔을 모르기에
한 번 버린 꽃은 다시 꽃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실에서 곱게 가꾸어진
흔하디 흔한 꽃이야 사방에 지천이어서
사시사철 아무데서나 본다지만,
들에서 홀로 피는 꽃은 기억으로 피어난다.
볕 한 줌에도 발돋움하고
들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그 바람 한 자락을 잡고
쓰러졌다가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
땡볕에 피를 말려가며
희망을 키우고 초록 꿈 소록소록 키우던
모질어서 더 아름다운 그 많은 날들,
처절하여 더 푸른 그 사랑을 기억하여
졌다가도 홀로 다시 꽃을 피운다.
그 것은 들꽃의 한 생애이며,
들꽃이 무서리 하얀 늦가을까지
그 고통, 그 아픔
깊어 은은한 향기로 간직한 채
눈 시리게 파란 하늘 우러르는 자태
소박하나 기품 있게 홀로 그 빛을 잃지 않으며
아무 눈길에나 띄지 않는 것은
피(血)를 뽑아 물들인 선홍빛 마음,
고통스럽게 풀어낸 영혼의 타래
한 올, 한 올
흰 뿌리로 키우던 오랜 기다림의 날들
소중하게 간직하여
생애를 깊게 한 크나큰 사랑
그 기억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