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원광문화(圓光文化)》에 발표된 작품이다. 고결한 기품과 향(香)을 지닌 난초의 속성을 이야기하며, 정신적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관조적·체험적·예찬적 성격을 지닌 경수필이다. 이 글에서 작가는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난초의 이미지를 통해 간결한 문체로 명료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난을 길러온 작가는 몸소 체득한 난의 일반적인 생태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난은 모래와 물, 거름과 햇빛이 모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만 잘 자란다며, 적어도 10년 이상 길러본 후에야 난의 생태와 속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원고를 쓰느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을수록 난으로부터 받는 위안이 더욱 컸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난의 아름다움과 방향(芳香)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을 무아무상(無我無想)의 별유세계라고 기술하며 자신의 생활과 난과의 밀접한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또 작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이 난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시기의 역사적 사건들ㅡ조선어학회사건, 8·15광복, 6·25전쟁ㅡ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개인적 시련과 고통을 난의 시련과 일치시켜 전개하고 있다. 그후 다시 난을 기르게 된 작가는 바닷게를 먹고 탈이 나 병석에 누워 고생할 때 곁에 둔 풍란이 하얗게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난의 아름다움과 향에 크게 감화되어 밤잠도 잊고 그 품과 향을 시로 노래했음을 고백한다.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한묵연(翰墨緣)이 있다면 자신은 난연(蘭緣)과 난복(蘭福)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난으로부터 받는 정신적 위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수필은 난이 단순한 화초가 아니라 정신을 기르는 식물임을 이야기하는 글로써, 난을 닮은 작가 이병기의 인간적 면모를 잘 느끼게 해준다. 꿋꿋한 생명력과 기품을 지닌 난초의 이미지는 작가의 삶과도 일치함으로써, 작가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광복 전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 후의 궁핍을 난과 더불어 겪은 작가는 난을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어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지극히 맑고 고상한 관조의 세계를 노래한 시조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수필이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일반적인 삶의 의미를 전달하는 글이라고 할 때, 이 작품은 작가 자신과 난초와의 인연을 차분하게 기술함으로써, 삶의 향기를 잃지 않고 속세를 살아가는 고결한 기품과 정신의 깊이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명문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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