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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마지막 친서에 등장한 두번의 ‘바보’

아지빠 2022. 10. 8. 11:06

김정은의 마지막 친서에 등장한 두번의 ‘바보

등록 :2022-10-08 09:00/수정 :2022-10-08 09:14

(이미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두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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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클럽이 공개한 친서 27통 가운데 마지막 편지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8월5일자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다. 이 친서에 ‘바보’라는 표현이 두번 등장한다. 한번은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저를 주기만 하고 아무런 반대급부도 받지 못하는 바보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문장에서 등장한다. 또 한번은 편지 말미에 “우리는 남쪽의 바보들을 약간 놀라게 했고 이는 퍽 재밌었다”라는 부분이다.

‘바보’를 핵심어로 뽑은 이유는 국가수반의 친서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김정은의 당시 심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의 낙담은 이후 안보는 핵무력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결심의 바탕이 되고 말았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

2019년 2월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나면서 120시간 넘게 열차를 타고 평양~하노이를 오갔던 김 위원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트럼프는 3월22일자 친서를 보내 달래기에 나섰다. “위대한 국가를 세운 김일성 주석의 탄신 기념일을 앞두고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하고자 편지를 쓴다”며 “위원장님과 제가 공통된 목표를 계속 견지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수개월, 수년 동안 무엇인가 함께 성취할 수 있다는 큰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적었다.

아마도 이 편지를 받은 김정은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80일 후에 보낸 답장에서 “우리 사이의 심오하고 특별한 우정은 (중략) 북미관계의 진전을 이끌 마법과도 같은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며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고” “마주 앉을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고 썼다. 이틀 후 트럼프도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화답했다. 다만 묘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을 선호한 반면에 트럼프는 “수주 이내 우리 협상팀이 다시 만나도록 하자”며 실무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수차례에 걸쳐 실무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반전은 6월말에 찾아왔다. 당시 트럼프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 오사카를 거쳐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인 6월29일 오전에 “김 위원장이 이것을 본다면, 나는 비무장지대(DMZ)에서 그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트위트를 날렸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앞서 실무회담부터 하자고 했고, 미국 국무부는 바로 직전까지 북-미 정상이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왜 갑자기 비무장지대 회동을 제안한 것일까? 트럼프는 G20 정상회의에서 자신의 활약상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가 많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미국 언론의 관심은 민주당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깜짝 제안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트위트를 계기로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이 바뀐 것이다.

트럼프의 제안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헷갈린 김정은은 정식 외교문서를 요청했다. 그러자 트럼프도 바로 친서를 썼다. “저는 (6월30일) 오후에 디엠제트 근처에 있을 것인데, 군사분계선 남쪽 편에 있는 평화의집에서 오후 3시30분에 만날 것을 제안”한 것이다. 김정은이 이 제안을 수락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 동행하면서 판문점 번개팅이 성사되었다. 애초 트럼프는 “특별한 의제도 없고” “2분간 인사만 나눠도 좋다”고 했지만, 북-미 정상의 만남은 40여분의 회담으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겠다고 약속했고 김정은은 북-미 실무회담에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북한은 8월에 실무회담을 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아무리 기다려도 8월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겠다는 발표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존 볼턴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따르면, 볼턴은 7월24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회동을 하고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은의 ‘권언’은 이 와중에 나왔다. 그는 7월25일 실시된 단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시위 사격 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권언보다는 단거리미사일 발사에 주목했다. 정경두 당시 국방장관은 이를 “도발”과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이 계속 도발하면 김정은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또 국방부는 8월초에 11일부터 연합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8월5일에 트럼프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나는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실무회담에 앞서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이 훈련은 누구를 겨냥한 것이냐”고 물었다. 문재인 정부를 바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이러한 환경에선 실무회담에 나설 뜻이 없다고 밝혔다.

틀리지 않은 슬픈 예감 ‘노딜’

이처럼 김정은이 한·미에 대해 실망감과 배신감을 품고 있을 때, 트럼프는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각하께서 해주신 것이 무엇이며, 나는 우리가 만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따졌다. ‘바보 취급하지 말라’는 자괴감 섞인 문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그리고 조바심을 드러냈던 이전 친서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때와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썼다.

실제로 10월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회담도 ‘노딜’로 끝났다. 결정적인 이유는 제재 문제에 있었다. 회담에 앞서 트럼프는 “제재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미국 협상팀도 “동시적·병행적 이행”에 제재는 예외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북한은 “생존권과 발전권”, 즉 제재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노딜’을 선언했다. 김정은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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