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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0주기 몰래 치르고…포격전을 포격전이라 못 부르고

아지빠 2020. 3. 27. 10:52




천안함 10주기 몰래 치르고…포격전을 포격전이라 못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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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백령도 천안함 위령탑 인근 해상에서 황도현함 장병들이 천안함 용사들을 추모하며 해상 헌화하고 있다.

오늘(26일)은 천안함 피격 1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우리 해군의 초계함 PCC 772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했습니다. 천안함 용사 46명이 희생됐고 한주호 준위가 구조 작전 중 순직했습니다.

10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행사는 오늘 오후 2시 평택 2함대에서 엄수됩니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주재합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10주기 행사의 촬영 영상을 언론에 제공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가 비난이 일자 마지못해 영상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또 내일은 서해 수호의 날입니다. 매년 3월 4번째 금요일, 서해를 지키다 산화한 젊은 군인들의 넋을 기리는 날입니다. 의미를 둘 수 있는 5회 기념식이 열립니다. 이참에 오는 11월 23일이면 10주년을 맞는 연평도 포격도발의 명칭도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국방부는 꿈쩍 않습니다.

● 천안함 10주기 감추고픈 국방부

8주기, 9주기도 아니고 명색이 꺾어지는 해, 정주년(整週年)인 10주기에는 조금은 거창하게 그때의 희생과 의미를 되새겨도 괜찮습니다. 당시에 많은 이들은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10주기가 지나면 슬슬 잊히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10주기에는 여럿이 함께 애써 그때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천안함 피격 10주기 행사에 인파가 몰리면 아무래도 코로나19가 걱정입니다. 이런 우려를 감안해 국방장관 외에는 해군 예비역, 현역들과 유가족 위주로 조촐하게 10주기를 준비했습니다. 기자들의 출입도 금지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수긍할 만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한참을 더 나갔습니다. 국방부는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자체 촬영 영상을 언론에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었습니다. 뜻밖에도 "촬영 중 코로나19가 확산될 수도 있다"는 게 제공 불가의 명시적 이유였습니다. 국방부든 해군이든 행사를 자체 촬영하지 않으면 또 모르겠지만 촬영할 계획은 세워놓고 공개만 않겠다니 변명치고는 참 구차합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10주기 행사가 부각되는 게 싫은가 봅니다.

현장 취재는 불허해도 방송뉴스용 영상은 제공해야 한다는 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어제 저녁 국방부는 영상을 내놓기로 엉거주춤 방침을 바꿨습니다. 천안함 10주기 행사를 남몰래 치르고픈 진짜 이유는 뭘까요? "천안함 10주기가 떠들썩하면 내일 높은 분들 많이 오시는 서해 수호의 날 5회 기념식에 누를 끼칠까봐 이러는 거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국방부의 핵심 당국자는 "그런 점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화염 속에서 K-9 자주포로 북한군을 공격하고 있는 연평부대 포7중대 해병● 연평도 포격전을 포격전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방사포 기습공격에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가 K-9 자주포로 맞서는 남북의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북한의 선제사격에 해병대가 대응사격을 한 명백한 교전입니다. 포도 북한군이 먼저 내렸고 인명피해도 북한 쪽이 훨씬 컸습니다. 승리한 전투입니다.

그래서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벌어진 일은 연평도 포격전입니다. 군사 교리로도 전술적으로도 다른 명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연평도 포격전뿐입니다. 해병대도 연평도 포격전이라고 부르고 대전 현충원은 두 해병 전사자의 묘를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으로 등록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2010년 11월 23일의 일을 연평도 포격도발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듯한 뉘앙스이지만 연평도 포격도발이 정부 공식 명칭입니다. 내일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도 연평도 포격도발이라고 부를 겁니다. "포격도발이 아니라 포격전이지 않느냐"는 기자 질의에 국방부는 "우리영토와 국민에 대한 북한의 무차별 도발을 표현할 수 있는 연평도 포격도발이 공식 명칭"이라고 답했습니다.

2012년, 2015년 해병대와 합참은 각각 연평도 포격전 명명을 추진했습니다. 2015년에는 국방부도 연평도 포격도발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명칭을 바꾸는 쪽으로 잠정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한 고(故) 서정우, 문광욱 해병, 그리고 쏟아지는 방사포탄을 뚫고 13분 만에 반격해 승리한 연평부대 영웅들의 숭고한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날의 전투는 더더욱 북한에 방점을 둔 피동적인 연평도 포격도발이 아니라 연평도 해병들이 사자처럼 맞서 싸운 연평도 포격전입니다. 연평도 포격전 승전 10주년을 맞아 올해는 꼭 이름을 바로잡기를 바랍니다.

SBS김태훈 국방전문기자

 

 

천안함 10년 2심재판서 밝혀진 의혹 8가지

항소심 재판 4년 증거·증언들 “(MB에도) 천안함 좌초 보고” 생존자 24명 진술서 원본서 ‘충격’ 인양책임자 “폭발아니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벌어진지 10년이 흘렀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을 잇는 정부는 북한이 어뢰로 공격한 사건이라 발표하고 끝내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 명예훼손 형사재판을 10년째 벌이며 진실규명 노력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0년 5월부터 시작된 이 재판은 2016년 1월25일 1심 재판 선고로 마무리된 이후 그해 2월부터 현재까지 항소심 재판이 이어져왔다. 지난 4년 여에 걸친 항소심 재판에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추가로 규명되거나 밝혀졌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최초 보고가 좌초였으며 이명박 대통령에도 그렇게 보고했다고 증언했고, 생존자진술서 원본을 보면 58명 가운데 24명이 ‘충격’이었다고 진술했다. 천안함 선체를 인양한 업체 책임자는 폭발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구조하러갔던 UDT대대장은 최초 수색때부터 선체 절단면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부 백서에 나온 함수의 수심와 위치에 오류가 밝혀졌다. 천안함 프로펠러가 저절로 부러졌다는 법정에서의 해군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절단기로 절단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안함 침몰원인이 좌초나 외부물체와 충격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다. 판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초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의 공개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지난 4년 재판 주요 증언을 살펴봤다.

1.김태영 “천안함 사건직후 내게 좌초로 보고했다”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은 지난해 5월16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천안함 침몰사건 직후 처음엔 자신도 어뢰피격이라는 주장을 미심쩍어 했으며, 최초 보고는 좌초였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장관은 “처음엔 좌초로 비슷하게 보고받았다. 해군이 정확한 사고사실을 몰라 저한테 애매하게 보고됐고, 제가 대통령께도 (좌초라고-기자 주) 말씀드렸더니 이 전 대통령이 ‘이거를 북한의 행동이라고 어떻게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니 정확히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조사하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장관은 최원일 천안함장을 만나 물었더니 울면서 어뢰피격이라고 해 그 때부터 어뢰라고 확인(판단)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북한 공격이라고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2.생존자 진술서 원본 24명이 ‘충격’ 14명이 ‘폭발’

이 재판에서는 그동안 일부만 공개됐던 생존자진술서 원본 700여쪽 자리가 증거로 제출됐다. 지난 2018년 12월20일 재판에서는 신상철 피고인의 변호인인 심재환 변호사가 이 진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생존자 가운데 24명이 최초 작성한 진술서에서 ‘충격’이라고, 14명이 ‘폭발’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20명은 불확실한 진술이었다. 윤종성 전 민군합조단 과학수사분과장 겸 군측 조사단장(현 성신여대 교수)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변호인이 공개한 천안함 절단면 부근인 CPO 침실에 있던 생존자인 조타장 원사 김병남은 “폭발 아님. 외부 부딪치는 소리. 외부충격. 파공”이라고 진술했고, 갑판장 상사 김덕수는 “폭발음은 아니었다, 외부충격”이라고 진술했다. 이 두 사람의 진술은 처음 공개됐다. 전탐장 김수길 상사도 “충격. 상선같은 것이 부딪힌 것. 충돌. 충돌음”이라고 진술했다. 이 진술들은 합조단이 ‘천안함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합조단 보고서)에 요약 기록한 58명의 생존자 진술에도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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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에 전시중인 천안함 함수 선제. 사진=이우림 기자

3.인양책임자 “천안함 폭발한배 아니다” 주장

사고 직후 침몰한 천안함 함수와 함미 선체를 인양한 책임자들은 천안함 절단부위가 폭발한 배의 모양과 다르다고 의견을 법정에서 내놓았다. 최초의 증언은 재판 7년 만인 지난 2017년 11월15일 공판에서다. 2010년 4월초부터 4월15일 천안함 함미를 인양할때까지 작업을 했던 88수중개발의 부사장인 정호원씨는 천안함 손상상태와 폭발로 인한 선박의 손상상태가 다르다고 밝혔다. 폭발한 배와 천안함이 어떤 면에서 다르냐고 묻자 정 부사장은 “특히 내부폭발해도 (두라3호와 같은) 저정도인데, (외부에서) 미사일 맞았거나 (어뢰가 폭발했다) 하면 선체 일부가 떨어져나갔다고 봐야한다”며 “유류보급함 폐선 전에 (군에서 폭발) 실험을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저런(두라3호 같은) 형태”라고 증언했다.

이어 8주기였던 지난 2018년 3월28일 KBS 추적60분팀은 함수를 인양한 업체 대표인 전중선씨와 인터뷰 내용을 방송했다. 전씨는 “북한에서 어뢰가 와서 쏴요? 십원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며 “저거는 포맞은 배가 아니다. 폭발한 배가 아니다. 바닥도 스크래치가 있는 것을 선명하게 봤다”고 밝혔다. 그는 “어뢰로 맞았는데 스크래치가 왜 생기냐”며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못하는 그런 일”이라고 주장했다.

4.절단면 첫 수색부터 동영상 촬영

해군은 천안함 침몰직후 구조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도부터 천안함 선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놓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해군특수전 여단 1대대 소속 UDT대대장(당시 해군중령)이었던 권영대 현 인천해역 방어사령부 27전대장(해군대령)은 2017년 2월16일 재판에 출석해 당시 잠수사들에게 수중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보라고 지시했으며, 촬영한 영상을 보고 내부폭발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해 상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구조팀이 사고원인을 알 수 없는데 신상철 피고인이 ‘알고도 은폐했다’고 허위주장했다는 검찰 주장과 거리가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절단부위 상태를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5.어뢰에 엉켜붙은 철사 뭉치 왜 펜치로 제거했나

천안함 사건 원인의 결정적 증거로 지목된 이른바 1번 어뢰에 엉켜붙은 철사뭉치가 항소심 재판에서도 미스터리한 쟁점이었다. 특히 최초 어뢰발견 직후 동영상에 철사뭉치가 보였지만, 이를 국방부 이송한 뒤 촬영한 사진을 보면 조사관들이 철사뭉치를 펜치로 제거하고 있었다. 지난 2018년 7월19일 재판에서 국방부가 법원에 제출한 CD에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해군이 함께 어뢰에 뒤엉켜 인양된 철사뭉치를 그대로 두지 않은채 임의로 제거한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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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5월15일 오전 쌍끌이어선이 수거해 올렸다는 이른바 1번어뢰 수거직후 동영상. 추진후부와 프로펠러 사이의 축에 남아있는 녹의 모양이 무언가에 감겼던 흔적처럼 보인다. 사진=검찰의 법원제출 동영상 갈무리

6.어뢰축의 녹 자국 뭔가, 왜 축 간격을 줄였나

재판부는 지난 2017년 5월18일 재판에서 1번 어뢰 수거직후 촬영 동영상을 상영했다. 이 영상을 보면, 어뢰추진체의 추진후부와 프로펠러 사이의 축에 뚜렷이 남아있는 녹의 형태와 딸려나온 밴드의 형태가 거의 유사했다. 이 영상에서 추진후부와 프로펠러 사이의 축 간격이 이후 사진에서는 크게 좁혀져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이를 좁혀 이 자국을 안보이게 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7.천안함 프로펠러 왜 절단해놓고 부러졌다 거짓말했나

천안함 사고원인과 무관해보이는 해군의 거짓말도 의문을 낳았다. 천안함 함미 우현의 프로펠러의 날개 하나가 잘려 있는 모습을 두고 검찰과 해군측은 2011년 재판에서 늘 부러졌다고 주장해왔다. 해군은 2018년 9월13일에야 플라즈마 절단기로 잘랐다고 실토했다. 천안함 선체 현장검증 과정에서 피고측 심재환 변호사가 “깨진게 아니라 잘라낸 것 아니냐”고 따지자 윤수정 검사는 “보고서 49쪽에 보면 거치대 올라탄 상태에서 바닥에 내려놓다가 잘렸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5시가 넘어 재판부가 함미 프로펠러를 다시 보러 갔더니 해군의 김창호 중령은 “선체를 육상에 올릴 때 안착하다 (프로펠러가) 낮아서 플라즈마 절단기로 절단했다”고 밝혔다. 왜 이 같은 사실을 8년 동안 거짓말 해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낳았다.

8.함수 위치 표시 오류 밝혀져

정부가 천안함 사건 직후 반파된 함수의 위치를 백서에 잘못 표시한 사실도 재판에서 밝혀졌다. 2017년 10월10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국립해양조사원의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제출 사실조회 회신 자료에 따르면, 국립해양조사원은 천안함 함수의 최종 침몰 위치인 백령도 남방 37-54-20N, 124-40-59E 지점의 수심이 24m라고 밝혔다. 국립해양조사원은 이 수심(24m)을 1992년 수로 측량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 1년 뒤 발간한 공식 책자인 ‘천안함 피격사건백서’에는 해당 지점의 수심에 대해 표에는 20m로, 해도상에는 5~10m로 기록돼 있었다. 특히 백서의 해도에 표기된 함수최종 침몰위치는 실제 위치보다도 약 800~900m 남쪽이었다. 윤준 서울고법 형사5부 재판장은 그해 9월26일 공판 시작에 앞서 “백서에 있던 함수의 위치 표시가 잘못된 것 같다”며 “국립해양조사원의 사실조회 회신을 보면, 좌표가 37-54-20N, 124-40-59E인 것은 같은데, 그(것을 표시한) 점이 다른 데에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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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해양조사원이 제출한 함수위치 표시. 사실조회 회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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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 나오는 함수 침몰 위치 표시. 사진=천안함피격사건백서

 

 조현호 기자

| 승인 2020.03.26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