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억제" 8년전 보고서 찾았다…'사람구충제' 갈아타는 암환자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구충제 이제는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구충제이니 드시라고 해도 뭐 아무 문제가 없지요.”
2011년 ‘알벤다졸 항암효과’ 연세대 보고서, 복용 근거로 삼아
연구자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 규명..항암제로 먹으란 뜻 아냐”
지난 13일 한 인터넷 카페 운영자가 필독하라며 회원들에 올린 공지다. 이 운영자는 사람이 먹는 기생충 약 ‘알벤다졸’의 항암효과를 연구했던 8년 전 보고서를 내세웠다. 그는 “강아지 구충제(펜벤다졸을 지칭)라서 본인들 책임 하에 먹어야 한다고 (카페) 입장을 밝혔는데, (이제는)사람이 먹는 구충제의 항암효과가 입증됐다”며 “카페 입장을 변경한다. 연구결과가 있으니 알벤다졸을 메인으로 사용해보시는 걸 추천한다”고 썼다.
여기엔 “늦게나마 알벤다졸의 효능을 알게 됐다” “지금이라도 복용기회가 있는 게 감사하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 카페에는 알벤다졸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알벤다졸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구충제다.
최근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며 강아지 구충제 쏠렸던 관심이 사람 구충제인 알벤다졸로 옮기고 있다. 카페 운영자가 언급한 보고서는 2011년 김영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논문이다. 정부 출연금 1억여원을 지원받아 교육과학기술부 일반연구자지원 사업으로 진행됐다. 실험실용 쥐(누드 마우스)에 난소를 이식한 후 알벤다졸을 복강 내에 투여해 암세포 증식과 복수 형성을 억제하는 등의 항암효능을 검증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벤다졸) 복용을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창원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종양약품과장은 “사람용 구충제라고 해도 용법과 용량대로 투여했을 때 안전하다는 것”이라며 “(항암제로) 고용량을 장기가 투여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논문 저자 김영태 교수도 “이 약을 항암제로 먹으라는 말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의 연구 보고서는 “알벤다졸은 항 기생충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난소암종양세포의 증식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며 “복수방지 효과는 종양 외 염증성 질환, 패혈증, 면역성 혈관질환 등 혈액누수가 많이 일어나는 질환에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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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있는 사람 구충제 알벤다졸의 항암효과 관련한 연세대학교 연구 보고서. [사진 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 .
이 보고서는 현재 유튜브 등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김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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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판매되는 알벤다졸. [사진 대웅제약]
연구 계기는.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메벤다졸(사람용 구충제)을 간암 환자에 치료해 효과를 봤다는 선행연구가 있어 관심 있게 봤다. 기생충 약은 마이크로튜블(microtuble·세포의 분열·활동을 관장하는 기관) 생성을 방해해 세포분열을 막고 결국 사멸하게 한다. 암세포에도 (기생충 약을) 똑같은 방법으로 쓸 수 있어 선행 연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주된 결과는 뭐였나.
알벤다졸이 암세포를 직접 사멸시키는 건 아니었다. 암이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혈액을 공급받아야 한다. 암의 특성 중 하나가 혈관을 만들고 피 공급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대표적 항암제는 혈관의 생성을 막는 약이다. 그와 비슷하게 혈관을 생성하는 인자(VEGF)를 억제해서 복수도 적게 하고 암의 성장을 억제해 암이 더 크지는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보고서를 근거로 알벤다졸을 항암제로 먹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약을 항암제로 먹으란 말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호도되지 않게 바로 잡아달라. 다시 말하지만 알벤다졸이 미세혈관을 만들어내는 인자의 생성을 억제한다는 것까지가 연구에서 규명된 것이다. 알벤다졸은 사람이 먹는 약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항암치료 목적으로 복용할 때) 용량과 용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임상적으로 정해진 다음에 복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같은 계열 약물인 메벤다졸이 미국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서 신약의 유용성을 연구하기 위해 소아 뇌종양 환자 등을 대상으로 메벤다졸 임상시험 1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효과를 보이는 약을 미국에서도 찾고자 하는 것이고 터무니 없는 약을 임상시험 하지 않을 것 아니냐.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펜벤다졸 열풍 위험수위…식약처 "먹지마라"(폐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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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구충제 맹목적 신뢰 "4주 복용후 통증 줄었다"폐암연예인 복용후기 논란
당국 "사람 사용 절대 안돼"오히려 종양 더 키울수도장기투여땐 장기손상 우려
보건당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물용 구충제 성분인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일방적으로 홍보하거나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일각의 분위기가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에서 폐암 말기 환자가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3개월 후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고 복용 후기를 설명한 유튜브 영상은 벌써 조회 수가 220만건을 넘었다. 또 폐암 투병 중인 모 연예인이 "펜벤다졸 복용 4주차에 통증이 줄었다"며 페이스북에 강아지 구충제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을 올리면서 일부 말기 암환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 암 커뮤니티에서는 펜벤다졸에 대한 해외 직구, 구매, 복용 후기 등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이처럼 펜벤다졸에 대한 이상 열풍이 지속되자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개 구충제의 항암 효과에 대한 확신이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는 수위에 도달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암학회는 "동물용 구충제는 동물에게만 허가된 약"이라며 절대 사람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항암제를 포함한 모든 의약품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안전과 효능을 입증해야 하는데, 펜벤다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확산되는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는 사람이 아닌 세포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다. 더욱이 펜벤다졸과 유사한 원리로 사람에게 항암 효과를 보이는 의약품은 이미 허가돼 사용되고 있다. 펜벤다졸은 암세포 골격을 만드는 세포 내 기관을 억제해 항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는데 빈크리스틴, 빈블라스틴, 비노렐빈 등 의약품 성분이 이런 원리로 항암 효과를 낸다. 파클리탁셀, 도세탁셀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항암 작용을 한다.
펜벤다졸이 `항암제로서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식약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는 없었고 오히려 간 종양을 촉진시킨다는 동물실험 결과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종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40년 동안 사용돼 안전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용 대상은 동물이었고 사람이 사용할 때 안전성은 보장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체내 흡수율이 20% 정도로 낮아서 안전하다`는 주장은 흡수율이 낮으면 효과도 작을 가능성이 높고, 고용량을 복용하면 독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식약처는 "항암제는 일부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더라도 최종 임상시험 결과에서 실패할 수 있다"며 "한두 명이 효과를 봤다고 해서 약효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항암 효과를 위해 펜벤다졸을 고용량·장기간 투여하면 혈액,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대한약사회도 "내과 전문의로 알려진 의료전문가가 사람 구충제도 항암 효과가 있다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대한약사회로서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동물 구충제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 측은 "촉망받는 신약들조차 유효성·안전성 입증이라는 의약품 허가 장벽을 넘는 것이 극히 어렵고, 엄청난 시장점유율과 매출액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드러나 퇴출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임상적 검증도 거치지 않고 객관적 근거도 없는 물질을 믿거나 말거나 식의 설(說)에 기대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근거 없이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왜곡된 정보 차단과 이를 조장하는 보건의료인 제재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국민들께는 소중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공인된 보건의료 시스템을 이용하여 검증된 치료법에 따르는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고 했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받은 펜벤다졸 성분 주요 의약품 현황에 따르면 국내 허가 품목은 파나쿠어, 옴니쿠어 등 42개다.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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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구충제 먹지 마라” 만류하는 이유…간손상 11건
2008년부터 학계 보고…전문가 “예방효과도 거의 없다”
동아대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 분석 구충제 ‘알벤다졸’ 복용 20대 환자
피로·황달 증상 나타나 병원 입원 간수치 최대 3배로 상승해 수액치료
2008년에도 20대 환자 간손상 보고
위생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해마다 기생충 양성률(감염률)이 급감하고 있지만 증상이 없는데도 매년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방 효과가 거의 없지만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으로 구충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주의깊게 봐야 할 연구결과가 나왔다.
14일 이성욱·백양현 동아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이 올해 대한소화기학회지에 보고한 ‘알벤다졸의 예방적 투약에 의한 약물 유발 간손상 1예’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최근까지 구충제 ‘알벤다졸’을 복용한 뒤 ‘급성 간손상’을 경험해 국내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11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종류의 구충제를 먹고 간손상 사례가 10건 넘게 발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구충제를 복용했다가 병원을 방문한 20대 여성 1명의 치료사례를 보고했다.
29세 여성인 A씨는 1주일 전부터 구역질, 피로감, 황달(담즙색소가 몸에 과도하게 쌓여 눈 흰자위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증상) 등의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그는 의료진에게 “다른 약은 복용하지 않았고 기생충 예방을 위해 알벤다졸 400㎎ 1알을 1회 복용했다”고 말했다. 담즙색소(빌리루빈)는 정상인 최대치의 2배, 간수치(혈청 ALT)는 3배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이 경우 사망률이 10%에 이른다고 보고돼 있다”고 설명했다.
●“구충제, 예방효과 없어…잘못된 정보 광고”
의료진은 즉시 수액을 투여하는 치료를 시작했고, 환자는 다행히 9일 만에 건강을 되찾았다. 연구팀은 “약물 복용 사실이 명확했고 치료 뒤 빠르게 회복해 다른 원인을 배제할 수 있었다”며 “이런 특이 약물 간독성은 용량과 관계없이 예측 불가능하며 6개월 이상의 긴 시간 이후에도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이하게도 이 환자는 8년 전에도 알벤다졸을 복용한 뒤 전신 피로감, 황달로 병원을 찾은 경험이 있었다. 당시에도 다른 약물을 복용한 경험은 없었다. 연구팀은 “한국에서는 더이상 사람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하지 않아 1995년 기생충 양성률이 0.2%까지 낮아졌다”며 “수십마리에 감염되기 전까지는 증상도 거의 없기 때문에 감염이 의심될 때 검사를 받고 양성 판정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것이 낫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비의료인에 의해 인터넷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지에서 알벤다졸을 연 1회 예방적으로 복용해야 한다고 광고하고 있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적절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알벤다졸 복용으로 인한 급성 간손상 사례는 2008년 대한내과학회지에도 보고됐다. 당시 한림대 의대 연구팀은 25세 남성 B씨의 사례를 분석했다. 그는 병원에 방문하기 20일 전 약국에서 알벤다졸 400㎎ 1알을 구입해 1회 복용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소변 색깔이 진해지고 점차 피로가 심해졌고 황달 증상까지 나타나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B씨는 3년 전 알벤다졸을 먹고 급성 간염을 앓은 경험이 있었다. A씨처럼 수액 등으로 치료하자 증상은 사라졌다.
▲ 과거 50%대에 이르던 기생충 감염률은 1% 미만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구충제를 예방 목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은 1970년 4월 정부가 설치한 기생충 상담소. 서울신문 DB
전문가들은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위생 환경이 개선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허선 한림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가 대한의사협회지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회충란 양성률은 한국건강관리협회 자료 기준 1971년 54.9%에서 1992년 0.3%, 2013년 0.06%, 2012년도 0.025%로 급감했다. 편충은 1971년 64.5%에서 2012년 0.4%로, 요충은 1981년 12.0%에서 2012년 0.0042%로 감소했다.
●위생 개선돼 기생충 위험 낮아…과복용 우려
허 교수는 “회충이나 편충 양성률이 0.5%를 밑도는 시점에서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예방목적으로 복용하는 건 권장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먹으라는 건 잘못된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예방목적으로 복용해도 구충제가 몸속에서 절반 이상 빠져나가는 ‘반감기’가 8~12시간에 불과해 혈액 속에서 농도가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예방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 허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학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항암제로 소문난 개 구충제 ‘펜벤다졸’과 같은 계열약이라는 이유로 알벤다졸을 과복용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펜벤다졸과 알벤다졸은 같은 ‘벤지미다졸 계열’ 약물로, 두 약물 모두 학계에 급성 간손상 위험이 보고됐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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