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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특허권이 완치를거부하다

아지빠 2019. 10. 20. 14:23






'완치=환자 감소'...완치를 거부하는 제약회사

[그 약이 알고 싶다] ⑥ 제약회사, '1억 약가'도 부족하다?

 

10월 20일은 간의 날이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산 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혔던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밤사이 다시 원상태로 자라날 만큼 간은 재생력이 뛰어난 장기이다. 그럼에도 간은 어지간히 고장 나지 않고서는 증상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침묵의 장기'라고도 불린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등 흥행 작품들을 연출하며 한국 영화계의 전설이 되었던 신상옥 감독은 그 스스로 영화 같은 삶을 살았지만 C형 간염이 간경변, 간경화로 진행되어 결국 2006년 사망하였다. C형 간염은 한 번 감염되면 70~80%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하고 이 중에서 30-40% 정도가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한다.

 

C형 간염은 감염 초기에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거의 없어 C형 감염 환자는 감염된 후 20-30년이 지나서 만성간염이나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C형 바이러스는 변이율이 높아 백신 개발도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1억3000만~1억7000만 명이 C형 간염에 전염되었다고 하며 세계보건기구에서도 C형 간염 바이러스로 2015년 약 40만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C형 간염 환자 치료에 인터페론과 리바비린을 사용했다. 하지만 탈모, 독감 증세, 골수 억제로 인한 백혈구 감소증, 우울증 등 부작용이 심하고 효과도 그리 좋지 않아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갈증이 높은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런 와중에 2010년 파마셋이라는 회사가 소발디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내놓았다. 길리어드는 2011년 이 회사를 약 110억 달러에 인수하여 소발디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결국 인류를 C형 간염으로부터 구원할 엄청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소발디는 기존 치료제와 비교할 수 없는 약이다. 단 12주 치료로 완치의 꿈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찾아보기 힘들고 다른 약과의 상호 작용도 거의 없다. 효과 뿐만 아니라 안전성에서도 "유레카~"를 외칠 수준이다. 기약 없이 약을 먹어야 하는 B형 간염 치료제들과도 비교 불가, 절대 우위이다. 세계보건기구조차 소발디에 힘입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C형 간염 멸종을 목표로 삼았다. 이처럼 칭찬을 해도 해도 모자랄 것만 같은 '꿈의 치료제' 소발디가 가진 한 가지 단점은 매우, 매우,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출시 당시부터 한 알 당 100만 원 넘는, 12주 치료기간 약값이 1억 원에 달하는 높은 약가 때문에 미국 등에서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길리어드는 2013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소발디 허가를 받은 후 2014년 곧바로 10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미국 처방약 매출 1위도 단숨에 달성한 길리어드는 돈벼락을 맞은 듯 했으나 축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미 2015년부터 '완치'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난 것이다. C형 감염이 치료될수록 환자 수는 감소하고, 신규 전염되는 환자 수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혁신과 접근성은 의약품의 역할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두 축이다.

그동안은 이 중 주로 접근성에 대한 논란이 첨예했는데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치료제'가 과연 약이 맞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소발디도 애초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였다. 그러나 1억에 육박하는 소발디 약가도 '질병 완치=환자 수 감소'라는 추세 앞에서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지 못했고, 이는 곧 제약자본이 새로운 질문에 봉착했음을 알렸다.

 

초국적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가 나섰다. '환자를 완치시키는 것이 과연 제약산업에도 좋은 것인가?' 단 몇 주 만에 병을 완치시켜 더 이상 약이 필요 없게 만드는 소발디 같은 진짜 치료제는 NO, 혈압, 당뇨, 고지혈증처럼 오래 오래, 두고 두고 필요한 하는 약은 YES.

 

완치약을 만들지 마시오. 환자가 없으면 돈도 없으니까.

 

우리들은 막연하게 믿고 있다. 제약산업이 끊임없이 혁신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결국은 인류를 질병에서 구원시켜줄 것이라고. 약값이 비싸서 개발도상국, 제 3세계 환자들은 접근성이 좀 떨어질 수 있겠지만, 우리 건강보험 재정은 좀 갉아먹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약산업이 원하는 만큼의 이윤을 충분히 보장해주면 그들이 혁신적인 치료제로 보답해 줄 것이라고. 바로 그 믿음이 소발디 1억 약가를 용인해준 것이다.

 

그러나 수천만 원, 수억 원, 10년 전만 해도 상상불가였던 약가를 보장해주어도 과연 그것이 혁신을 약속할까? 환자를 치료해버리면 더 이상 돈벌이가 없어져서 안 된다는 자본이 용납 가능한 혁신은 어느 수준일까? 알약 하나로 암을 치료하고, 주사 한 방으로 치매를 물리칠 수 있는 세상은 과학 기술 발전 여부와는 별개로 지금 사회 시스템 하에서는 몽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왜? 완치된 환자는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조 자체가 '완벽한 혁신'을 허락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떤 약을 개발할 것인지, 무슨 방식으로 생산할 것인지, 누구에게 약을 제공할 것인지 약의 전 생애 주기를 걸쳐 모든 결정권은 자본에게 있다. 수많은 혈세가 연구 지원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제약사에 흘러들어가고, 세금 감면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국내의 경우 건강보험 재정을 헐어가며 약값까지 두둑이 챙겨주고 있어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약이 어떤 약인지를 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이 모든 독식을 가능하게 하는 특허권은 오롯이 제약사에게만 독점된다. 애초 혁신을 독려하겠다고 만들어진 특허가 이제 오히려 혁신을 방해하는 상황이다. 온갖 정보와 기술들이 특허권이라는 담에 둘러싸여 더 나은 발전을 곳곳에서 막아선다.

 

그렇다면, 이제 한 번쯤은 새로운 상상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상상의 시작은 이 모든 것들의 가장 핵심에 자리 잡은 특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개발을 촉진하고자 만들어진 특허, 독점이라는 제도가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는 이 부조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제 사회가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특허를 독점하지 않고 풀(Pool)에 넣어 누구든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특허풀 제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 특허의 확대, 의약품 개발 부담을 사회적으로 공유함으로써 혁신을 추동하고 약가를 제어해보자는 단절(Delinkage) 모델 등 다양한 방안들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우리도 꿈꿔보고 싶다. 4차 산업 혁명과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로 벌어들일 수 조 원 달러에 대한 상상 말고, 꽁꽁 갇혀 있는 특허를 풀어 공공이 함께 그 열매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런 상상 말이다.

최종수정 2019.10.20 12:08:03|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5억짜리 약이 눈 앞에…'독점권'을 어찌할까

[기고] 국민과 환자를 위협하는 의약품 독점권

 

불과 약 15년 전의 일이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한 알에 2만5000원을 요구했던 노바티스를 향한 환자들과 국민들의 분노는 뜨거웠다. 환자들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의약품 특허권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10년 전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 공급을 거부한 로슈를 향해서도 우리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그러나 강산이 변했다. 제약자본의 특허권은 그 어떤 이유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환자와 국민을 우롱하는 특허권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논의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특허권을 적절히 보상해 줄 수 있는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줄다리기만 이어지고 있다. 제약자본, 전문가들과 환자단체는 한 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며 말한다. '재정보다 생명이다!'

이처럼 의약품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주요하게는 제약자본이 신약 개발 전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데 기인한다.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치료제 등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합성 화학 의약품들은 2000년대 들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예전에 제약자본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외면했던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 개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내만 보더라도 식약처에서 2014-2016년 사이에 허가받은 신약 119개 중 22%가 항암제였고 111개가 희귀의약품이었다. 질환별 차이는 있겠으나 희귀의약품이 더 이상 희귀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최근 개발되는 신약은 소수의, 중증질환자를 타깃으로 하면서 환자들에게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제약사에게는 강력한 시장 독점력을 허용함으로써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가 전략이 가능하도록 한다. 글리벡 2만5000원은 지금 신약 가격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착한 가격이 되어버렸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면역항암제들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며 심지어 5억 원을 넘는 신약도 우리 문턱에 놓여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독점권' 바로 그것이다.

 

앰플 당 8400원 하던 리피오돌, 26만 원으로 인상 안해주면 공급 중단 엄포

 

의약품의 독점권과 그로 인한 높은 약가 문제가 불거질 때 제약자본은 어김없이 개발비를 들고 나오지만 그것이 고가의약품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가 최근 등장했다. 간암 경동맥화학색전술에 쓰이는 조영제인 리피오돌은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1954년 미국에서 허가를 받은 약이다. 'Savage Laboratories'가 애초 자궁난관, 림프 조영제로 제조·판매하던 약을 프랑스 게르베가 2010년 판권을 취득하여 간암 조영제 허가 내용을 추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게르베는 미국에서 희귀 의약품(Orphan Drug) 지정을 받아 50% 세금감면, 7년 독점권을 추가하였고, 바로 그 이유로 환갑도 넘은 약에 대해 2021년까지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리피오돌은 국내에서 최초 허가를 받은 1998년 앰플 당 가격이 8470원이었으나, 2012년 5만2560원으로 6배 넘게 가격이 인상되었다. 또 최근 500% 인상을 해주지 않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이처럼 '오래된 약' 리피오돌의 가격 인상은 '개발비 회수'에 있지 않다. 오롯이 독점권이 제약자본의 그 어떤 가격 요구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15년 한 제약사가 임산부와 에이즈 환자가 주로 사용하는 기생충 감염증 치료제로 62년간 사용해온 다라프림의 미국 내 판매권을 1만6000원에 사들인 후 89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이뿐인가. 제약자본은 찔끔찔끔 허가 사항을 늘려가면서 독점 기간을 늘이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20만 명 이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희귀의약품의 경우 7년 독점권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하기 위해 특허가 만료될 즈음 새로운 허가사항을 추가하여 독점 기간을 늘인다. 전 세계 판매 의약품 상위 10에 들어가는 휴미라의 경우 2002년에 류마티스성 관절염에 허가를 받은 이후 소아 류마티스성 관절염, 포도막염 등 희귀의약품 지정이 가능한 형태의 허가 사항을 연속적으로 취득함으로써 특허기간을 2023년까지 연장하였다. 의약품 독점권, 특히 희귀질환치료제의 경우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는 독점권이 이처럼 상식 밖의 일들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의약품 독점권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다. 정부의 협상력을 강화시켜야 함이 일차적인 해결책이나 특허권을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설정해 놓은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과 환자를 위협하는 독점권은 언제라도 해체할 수 있다는 신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제약자본과의 줄다리기에서 정부는 백전백패 할 수 밖에 없다.

애초 특허권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보상으로서 고안된 것이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특허라는 '권리'가 사회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인권, 건강권, 생명권을 해치려 들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독점권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의약품들의 홍수 앞에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최종수정 2018.04.23 09:14:10| 강아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