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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어쩌면

아지빠 2018. 8. 8. 09:50






[서민의 어쩌면]기득권의 권리와 의무.

가정 1. “이건 기생충이 맞습니다.” 내 말에 A는 당황해했다. “선생님, 다시 한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아무리 봐도 이건…” 난 A의 말을 잘랐다. “이것 봐요. 기생충은 제가 님보다 더 잘 알잖아요? 제가 맞다면 맞는 겁니다.” A는 알았다고 하며 내 연구실을 나갔다. 그로부터 5년 뒤, 난 학술지에서 ‘기생충과 구별해야 할 음식물들’이란 기고문을 봤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식물의 줄기가 대변으로 나올 경우 기생충과 헷갈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사진에 나온 콩나물이 A가 내게 가져온 물체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알아본 결과 내 진단이 A에게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회사는 A를 해고했다.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기생충 감염 전력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는 사이 A의 가정은 무너졌고, 그의 자녀들도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서민의 어쩌면]기득권의 권리와 의무.

가정 2. “며칠 정도 걸리겠습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그 사내는 내게 싱싱한 회충알 1만개를 구해달라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리 좋은 목적에 쓰일 것 같진 않았다. 싫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협조하지 않으면 승진에 지장이 있다는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매스컴은 B를 비롯한 몇몇 반정부인사들이 다량의 회충에 감염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더불어 진보인사들의 위생관이 도마에 올랐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B였지만, 그는 몇 달간 격리된 채 치료를 받는다는 후속기사를 마지막으로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물론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다. 회충은 이제 우리 사회에 없다시피 하며, 있다 해도 약 한 알로 치료되니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많은 이들이 나를 비난할 것이다. 나의 실수에서 비롯된 첫 번째 사례라도 욕을 먹어야 마땅하지만, 두 번째 사례라면 욕을 먹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교수 자리에서 잘리고,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에게 기득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자신의 지식을 써달라는 당부의 일환이다. 거기엔 전문가들이 최소한 사적인 이익을 위해 지식을 남용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담겨 있다. 전문가들의 범죄가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법부의 만행을 다룬 팟캐스트 <이이제이>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이제이>에 출연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그 밑에 있는 판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고발한다. 한 사건만 보자. 좌우익 대립이 치열했던 1949년, 대구 10월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경찰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잡아들였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정재식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남편이 걱정된 아내 이외식씨는 첫돌이 막 지난 ‘도곤이’를 등에 업고 20리 길을 걸어 경찰서에 찾아간다. 제발 남편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자 경찰은 수감된 사람들이 골짜기로 끌려갔다고 말해준다. 시쳇더미들 사이에서 아내는 죽어있는 남편을 찾고 망연자실한다. 억울한 죽음이지만, 국가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외식은 빨갱이의 아내라며 가족은 물론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외식이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그녀 등에 업혀있던 정도곤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2009년, 과거사위원회는 절차도 없이 민간인을 살해한 그 사건이 국가의 잘못임을 인정했다. 1심 판결은 아내 이외식에게 3억3000만원, 아들 정도곤에게 2억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돈이 잃어버린 50년을 되돌려주기엔 턱없이 적지만, 어이없게도 국가는 항소했다. 2심을 진행할 당시 사법부의 수장은 양승태였다. 손해배상금은 대폭 삭감돼, 이외식 8800만원, 정도곤 약 5000만원이 됐다. 국가는 이마저도 주지 않겠다고 상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정도곤씨의 배상금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했다.” 소위 재판거래 의혹, 즉 양승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내가 이렇게 국가 돈을 절약해 주고 있으니 내 요구도 좀 들어달라’며 꼬리를 흔든 것이다. 이 파렴치한 행각이 드러난 뒤에도 대법관들은 사죄하기는커녕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양승태는 “법과 양심에 어긋난 재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래도 이들에게 기득권의 대우를 해줘야 할까? 이들에게 보내는 존경심을 이제 거두자. 그리고 최저임금인 시간당 8350원을 주자. 신뢰를 저버린 전문가에겐 그것도 아깝지만 말이다.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 : 2018.08.07 20:57:02 수정 : 2018.08.07 20:58:08




[서민의 어쩌면]사법부 전가의 보도 ‘다만’과 ‘그러나’

1,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2, 그 이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다만’이라는 부사에 대한 설명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고, 뜻을 보니까 무슨 말인지 더 헷갈리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만’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문장을 이어주는 데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서민의 어쩌면]사법부 전가의 보도 ‘다만’과 ‘그러나’.

‘강씨(32·남)는 올해 1월7일 오전 2시20분께 제주 시내 한 마트 맞은편 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피해자 A씨(58·여)에게 다가가 갑자기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피해자의 옷과 머리채를 잡아 길바닥에 넘어뜨린 후에도 얼굴과 몸을 수차례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 코뼈를 부러뜨린 것으로 조사됐다.’

강씨는 피해자인 A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였다. 그런 강씨가 환갑에 가까운 여성에게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질러 코뼈를 부러뜨린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강씨에게는 비슷한 범죄 전력까지 있다. 이런 사람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건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엄격한 처벌이 필요할 터였다. 송 판사 역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징역 3년에 처한다’ 정도는 돼야 문장 흐름이 자연스러울 텐데, 송 판사가 내린 판결은 놀랍게도 집행유예였다. 송 판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했다.” 그러니까 ‘다만’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아찔한 반전을 가능케 하는 단어였다. 제주도에 가면 마트 맞은편에서 택시를 기다리지 말자.

또 다른 사례. 대구의 시내버스에 탄 A군(18·남)은 옆에 선 B씨(62·여)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B씨는 해당 사건으로 얼굴, 머리, 어깨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내 숨졌다. 당시 폭행을 만류하던 C씨(22)도 A군의 구타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는데, 재판부의 판결은 이번에도 집행유예였다. “죄질이 나쁜 데다 유족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여 피고인의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아직 10대에 불과한 피고인이 전과가 없고 초범인 점, 비기질성 정신병적 장애상태에서 범행한 점, 유족이나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 대구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숨을 부드럽게 쉬자. A군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다만’에만 의존하는 집단으로 보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씨(39·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지난해 7월, 집에서 여자친구 ㄱ씨(47)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ㄱ씨는 이씨에게 주먹으로 얼굴 등을 수차례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재판부는 고심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범죄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래서 재판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를 등장시킨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인 ‘그러나’는 전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준다. “피해자의 고통, 유족들의 처참한 심정, 여자친구를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인다. … 고심 끝에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여기서 ‘그러나’를 쓰니까 집행유예란 판결이 좀 더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전처럼 ‘다만’을 썼다면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다음 사례에도 ‘그러나’가 등장한다. 최씨(66·남)는 잠든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안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물론 이 판결에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피고인이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아내를 쫓아가 머리를 계속 때리는 등 범행 방법이 무자비하고, 이 때문에 다친 피해자가 피를 많이 흘려 사망할 위험도 컸다. 그러나 범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가 입은 상처도 치료돼 현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여기서 ‘그러나’는 피해자의 빠른 회복력과 더불어 이 판결을 이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금도 사법부는 많은 범죄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엔 ‘다만’과 ‘그러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글쓰기 책을 냈던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다만’과 ‘그러나’의 올바른 용법을 가르쳐 드린다.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다만 그 국민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사법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국민들을 위한다고 믿는다. 국민 여론과 배치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서민의 어쩌면]사기공화국의 비결.

-A씨는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A씨는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며 양해를 구했다.

-B씨도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B씨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원에 있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C씨 역시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C씨는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며 양해를 구했다.

[서민의 어쩌면]사기공화국의 비결.

위 셋은 중고품 직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에서 자기 물건을 판다고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이들에게 연락이 두절될 사건이 생긴 건 다른 분이 그 물건을 사겠다며 물건값을 지불한 뒤였다. 그리고 이들이 양해를 구하고 다시 연락을 취한 시기는 이들이 물건을 보내지 않자 화가 난 구매자들이 경찰서에 가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다음이었다. 궁금해진다. A, B, C는 정말 연락 못할 사건을 겪은 것일까. 구매자들이 고소 운운하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먼저 연락을 취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으리라. 중고나라에서는 판매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더치트’라는, 사기피해 정보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거기서 조회해 본 결과 위 세 명은 최소 3번 이상의 사기를 저지른 이들이었고, 한 명은 그런 경우가 6번이나 됐다. 사기를 치는 이는 비단 이분들만이 아니어서, 중고나라 사이트에는 ‘사기를 당했어요 흑흑’이란 사연이 매일 몇 건씩 올라온다. 희한한 일이다. 왜 중고나라는 이들을 영구적으로 퇴출시키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경찰은 왜 이 사기꾼들을 그냥 방치하는 것일까?

피해를 입은 이가 사기꾼을 고소하려면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피해를 입증할 자료도 챙겨야 하고, 고소장을 접수하려면 경찰서에서 최소한 하루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생의 수업료로 생각하겠다’며 신고를 안해 버린다. 그래도 끝까지 신고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얼핏 생각하기엔 경찰이 사기꾼을 잡으면 다시는 사기를 칠 생각이 없게 강력한 처벌을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냥 벌금만 조금 내면 끝이다. 사기꾼 자신도 놀랄 정도로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 사기를 쳐봤자 신고될 확률이 극히 낮고, 설령 경찰에 잡혀도 벌금만 내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기를 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이건 다른 사기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이 왜 복마전인지 아는가? 시중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구매자를 유혹해 폐차 직전의 차를 사게 만드는 사기가 판을 치고 있어서다. 중고나라 사기가 그렇듯 중고차 사기범도 그냥 벌금만 좀 내면 바로 풀려난다. 관대한 처벌이 사기공화국을 만든다는 얘기, 현직 검사인 김웅이 쓴 <검사내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는다. 사기꾼이 구속될 확률은 재벌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큼 희박하다. 설사 구속되더라도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쉽게 풀려난다…. 이런 천혜의 환경 조성으로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명 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19~20쪽)”

뜻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기죄의 형량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입법부나 국회의원만의 문제인 것일까. 이 나라에선 중고나라와 비교가 안되는, 스케일 큰 사기가 자주 벌어진다. 자신을 높은 자리로 보내주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놓고선 자신의 재산만 불린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자기 측근의 꿈만 이루려고 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단죄돼야 마땅하다. 국민이 할 수 있는 단죄는 선거를 통해 그를 응징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뒤늦게나마 그들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건 저 중의 한 분이 나라를 완전히 거덜 낸 뒤였지, 그 이전까지 선거에서 제대로 된 심판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왜 그럴까? 우리가 남이 아니라서, 존경하는 분의 딸이어서, 저쪽은 왠지 북한하고 친한 것 같아서 등등의 시답잖은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것만 보면 사기꾼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고 징징댈 일은 아니다.

오늘은 지방선거 날이다. 지방선거의 취지는 지역의 일꾼을 뽑자는 것, 누가 우리 지역을 더 발전시킬지에 대한 판단이 표를 던지는 가장 중요한 선택지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보자를 정당에서 공천하는 제도 탓에 지방선거는 각 정당에 대한 심판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무조건 투표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당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지를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사기공화국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 : 2018.06.12 20:40:02 수정 : 2018.06.12 20:41:05




 

[서민의 어쩌면]투표를 잘해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아주 부잣집이 아닌 이상 집안이 거덜난다. 건강보험이 있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건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비율(이를 보장성이라 한다)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에서 보장성이 80%를 넘지만, 우리나라의 보장성은 60% 남짓이다. 치료비가 총 5000만원이 든다면 2000만원을 본인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높여서 환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면 적극 환영할 일,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작 문재인 케어(문케어)는 이런 취지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돈이 든다는 것. 국민들이 문케어로 혜택을 보는 것이니만큼 이는 건보료를 인상함으로써 해결하는 게 맞다. 도대체 얼마나 올려야 할까?

[서민의 어쩌면]투표를 잘해야 하는 이유.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보장성을 70%로 올리는 데만도 3.2%의 인상이 필요하단다. 게다가 문케어에 포함된 비급여 보장,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 같은 정책들, 그리고 고령인구 증가 같은 환경적 요인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건보료는 2017년에 비해 2.04%, 직장인 기준 월평균 2000원이 올랐을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앞으로도 인상률을 예년 수준을 넘지 않게 관리하겠다는 복지부의 공언이다. 이 정도 인상률로 문케어가 가능할까? 정부는 그간 모아둔 건강보험 적립금 21조원을 사용하면 된다는데, 이건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문케어가 시작되면 적립금은 곧 바닥이 날 테고, 그때가 되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부가 당장의 인상을 꺼리는 까닭은 지지율이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 10명 중 8명은 문케어로 인해 혜택을 보는 건 좋지만, 추가적으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런 식이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왜 비판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건보료 인상의 불가피함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훨씬 더 좋게 바꾸는 일인데, 지지율이 좀 떨어진들 어떠랴.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는 대신 당장의 지지율을 선택함으로써 보험료 인상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로 한 모양이다. 재정불안에 허덕이는 문케어가 제대로 작동할지 의사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용·성형을 제외한 비급여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비급여는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국민건강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다. 환자 개인이 좀 더 편하고자 돈을 더 내고 선택하는 게 비급여란 얘기인데, 6인실 대신 2인실에 입원한다든지, 회복기간을 약간 단축시켜주는 추가적인 약을 부담하는 게 그 예다. 개인의 편의를 위한 선택에 국민이 내는 보험료를 쓰는 게 과연 온당할까? 더 우려스러운 일은 비급여 여부의 판단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한다는 사실이다. 심평원은 의사의 정당한 진료행위에 과도한 개입을 하곤 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을 써도 “왜 이 약을 썼느냐?”며 따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줄 돈을 안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비급여마저 심평원이 관장한다면, 환자들이 돈을 더 내고 좋은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해진다. 또한 의사들이 그동안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를 비급여로 메꿔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 이기심의 극치네요”라는 댓글에서 보듯, 국민들은 의사를 적폐세력처럼 취급한다. 이건 문케어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반대투쟁을 이끄는 최대집 의협회장이 ‘박사모’라는 게 더 큰 이유다. 박근혜가 무죄이며 억울하게 탄핵당했다고 주장하고,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하는 등 그가 했다는 일련의 말들엔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가 회장이 되고 나서 첫 번째로 추진한 ‘문케어 반대 의사파업’을 하필이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로 잡았던 것도 의협의 앞날이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의협회장이 된 것일까? “내가 선거에 무관심했다.” “설마 박사모가 되겠냐고 방심했다.” 얼마 전 만난 동료 의사들은 이런 반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부 측에 의사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이를 문케어에 반영하려면 정부와의 줄다리기가 필요한데, 여론에서 외면받는 의협회장의 말에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여줄지 의문이다.

이건 꼭 의협만의 일일까?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단지 경제전문가라는 이유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가 큰 낭패를 봤다. 거기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다음 선거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분을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다시금 나라를 일으키고 있지만, 잃어버린 9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치솟는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신중하게 투표해 의사들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 : 2018.05.15 21:15:02 수정 : 2018.05.15 21: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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