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 생전 박근혜와 영적 부부라고 말하고 다녀”
▲ 최태민 박근혜
1977년 3월 당시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대신하던 박근혜(왼쪽 네 번째) 대통령이 새마을궐기대회에 참석해 최태민씨의 안내를 받으며 걸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이 생전 “박근혜와 나는 영적 세계의 부부”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끈다.
31일 국민일보는 전기영(78·서산 충성전원교회) 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전 목사는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최씨와 교계 활동 및 교류를 해온 인물이다.
최태민은 중앙정보부가 1979년 작성한 보고서에 각종 비위와 여자관계 추문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전 목사는 당시 ‘최태민·박근혜 연인설’에 대해 “최씨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면서 “그때 최씨는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가 아니다’라고 말한 걸 들었다”고 말했다.
최태민이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전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9일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꿈에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나를 밟고 가라. 그리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최태민 목사와 상의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최씨가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 육 여사의 표정과 음성으로 빙의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태민은 “‘육 여사 빙의에 박근혜가 놀라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육 여사가 내 입을 빌어 딸에게 나(최태민)를 따르면 좋은 대로 인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박근혜는 입신(入神·신들림)한 상태였다’”고 전 목사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순실씨 부녀의 주술에 홀렸다는 주장이 최태민씨를 잘 아는 이에게서 나왔다. 너무나 충격적인 주장이어서 믿기지 않을 정도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최씨와 교계 활동 및 교류를 해온 전기영(78) 목사가 이 같은 주장을 31일자 국민일보를 통해 내놓았다. 전 목사는 최씨와 1970년대 말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의 부총회장과 총회장 신분으로 만나 한동안 인연을 맺었다.
전 목사는 영세교 교주였던 최태민씨에 대해 “주술가이고 무당”이라고 평하고 “차라리 이번 일(‘최순실 게이트’)이 잘 터진 것 같다. 청와대에서 주술의 힘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씨가 박 대통령을 알게 된 동기에 대해선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다. 그 무렵 박근혜에게 최씨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죽은 육영수가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하니 당신이 그녀를 도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가 최씨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까만 승용차들이 최씨가 도를 닦는 곳에 왔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근혜 앞에서 최씨가 육영수의 영혼에 빙의됐다면서 그녀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박근혜가 기절하고 입신(入神)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입신이란 말은 최씨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입신은 교계용어다. 예컨대 환상을 본다거나, 천국이나 지옥을 본다던가, 뜨거운 성령 체험, 신들렸다는 등. 놀란 박근혜가 그때부터 최씨를 신령스런 존재로 보게 됐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가 최순실을 의지했는가’라는 물음엔 “맞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최태민의 주술의 영을 그대로 딸 최순실과 사위 정윤회가 이어받았다. 선무당이 국가를 잡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의 주술에 홀렸다. 주술을 모르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전 목사는 최태민·박근혜 연인설에 대해선 “(최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최씨가 ‘내가 나이가 있는데…’라고 반문하더라. 나이도 많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인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씨가)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추문이 끊이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조사를 지시해 직접 이른바 ‘친국’(예전에 임금이 직접 중죄를 지은 자에게 일일이 따져 묻는 일을 이르던 말)을 했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끝까지 최태민을 변호했다. 이후 재판에서 김재규는 대통령 시해 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을 처벌하지 않는 실망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최씨를 안 시기에 대해선 “1979년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종합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을 때 만났다. 곧바로 부총회장에 임명됐다. 당시 최씨가 총회장이었는데 총회장이 부총회장을 임명하는 구조였다. 이후 간헐적으로 만나다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이 만났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만난 적도 있다. 최씨가 나를 좋아했다. 최씨는 많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94년 사망 직전까지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그는 “최씨는 1975년 우리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신학교육은 받지 않았다. 당시 돈 몇 푼주고 목사안수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최씨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지금도 적지 않은 신학교는 몇 개월이나 1년만에 목사자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했다.
전 목사는 최씨가 교단에서 쫓겨났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씨는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을 주면서 지금 최순실이나 정윤회가 하는(박근혜 대통령을 돕는)일을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최씨는 병을 고치고 점을 치는 등 주술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기독교 신학에 벗어나는 짓을 계속해 교단에서 쫓겨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씨가 주술가이자 무당이라고 단정한 뒤 “현재 대한민국은 성경 민수기 이야기와 흡사하다. 점술가의 계략에 미혹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숭배하는 음행에 빠지게 됐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즉시로 그들에게 염병이 임해 2만4,000명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면 우리 기독교 원로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최태민 같은 사람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나부터 회개기도를 드린다. 입이 백개라도 말 못할 사람이 교계에 참 많다”고 했다.
최씨의 교계 활동을 증언해 달라고 하자 전 목사는 “최씨는 영(靈)이 다른 사람이다.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었다. 목사가 되고 서울 강남에 ‘만남의교회’라는 200평(660㎡)쯤 되는 교회를 세웠다. 신학교도 설립했다. 그의 딸 최순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몬테소리 유치원 큰 것을 차렸다. 나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귀신들린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 거절했다. 하나님이 아닌 신을 찾고 주술적인 말을 하도 많이 하길래 ‘이놈아, 네 정체가 무엇이냐. 누구 앞에서 재주를 부려’라고 소리쳤더니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저리 도망가더라. 그렇게 하고 나가 죽은 것이다. 최씨는 울화병이 생겨 집에서 칩거하다 죽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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