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낙엽활엽수.보리수나무과.보리수나무속
우리나라 산길의 어디에서나 흔히 만나는 나무에 보리수란 이름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갸름하게 생긴 잎의 뒷면에 아주 짧은 은빛 털이 촘촘하여 마치 은박지같은 잎을 달고 있는 자그마한 나무이다. 이 나무는 석가가 득도하였다는 보리수(菩提樹)와 발음이 같아 불교신자들로부터 격에 어울리지 않게 대접을 받는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서 6년간에 이르는 고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때 석가가 도를 깨친 나무는 인도보리수로 서 아열대 지방에 자라는 뽕나무무리의 무화과 종류에 포함되는데 높이 30m, 지름이 2m정도나 되는 큰 상록수이다. 인도가 원산지이며 가지가 넓게 뻗어서 한 포기가 작은 숲을 형성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다. 이 나무를 불교에서는 범어로 마음을 깨쳐준다는 뜻의 Bodhidruama라고 하며 Pippala 혹은 Bo라고도 하였는데,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한자로 번역할 때 그대로 음역하여 보리수(菩提樹)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러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는 진짜 부처님이 도를 깨친 인도보리수는 추워서 자랄 수 없으므로 불교신자들은 대용 나무가 필요하였다. 이에 스님들은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피나무를 보리수란 이름을 붙여 널리 심기 시작하였다. 피나무 무리들은 단단하고 새까만 열매가 흔하게 달려서 염주로 쓸 수 있고 잎이 하트모양으로 인도보리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절에 보리수, 즉 피나무를 심기 시작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사에 보면 명종11년(1141) 2월 '묘통사 남쪽에 있는 보리수가 표범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로 울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적어도 고려 초 이전부터, 아마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산에는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예로부터 '보리수'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연산군 6년(1499) '동백나무 5-6그루를 각기 화분에 담고 흙을 덮어 모두 조운선에 실어보내고, 보리수(甫里樹) 열매는 익은 다음에 봉하여 올려보내라' 하였다.
열매는 손가락 첫마디만 한데 앵두처럼 붉고 하얀 점이 점점이 있다. 간식거리로는 충분히 먹을 만하여 임금님에게 진상하였던 것이다. '보리(甫里)'라는 곳에서 나는 열매나무란 의미로 생각되며 오늘날의 보길도나 노화도가 아닌가 추정해 본다. 남쪽 섬 지방의 보리수는 세월이 지나면서 보리장나무, 보리밥나무로 이름이 변해버리고 육지에 있는 비슷한 나무는 그대로 보리수란 이름으로 남아 절에 있는 보리수와 혼동하게 되었다.
한편 모감주나무, 무환자나무 등 염주를 만들 수 있는 열매를 가진 나무는 한자로는 흔히 보리수라고도 하여 나무이름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절에 심겨진 보리수는 석가모니가 도를 깨친 그때 그나무가 아니라 피나무 무리의 한 종류이다. 박상진교수 2013-5-5